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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믿을맨’ 박찬호, 양키스의 우승 축포를 저지할 수 있을까?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1. 3.

박찬호가 속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월드시리즈 2연패를 향한 꿈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1차전 승리 이후 2~4차전을 내리 패하며 1승 3패의 궁지에 몰린 것. 필리스가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남은 5~7차전을 모조리 승리해야만 한다.

2일(이하 한국시간) 벌어진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필라델피아는 양키스에게 7-4로 패했다. 처음부터 앞서가던 양키스를 끈질기게 추격하여 8회에 간신히 4-4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9회초에 등판한 주전 마무리 브래드 릿지가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결승 2루타를 허용하는 등 3실점하는 바람에 아쉽게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4-2로 뒤지고 있던 7회초에 등판해 1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냈다. 첫 타자인 투수 C.C. 싸바시아를 외야 플라이로 잡아낸 후, 1번 타자 데릭 지터에게는 볼넷을 허용했지만, 후속 타자인 자니 데이먼과 마크 테세이라를 범타로 돌려세우며 실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터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선수는 스위치히터인 테세이라까지 모두 좌타석에서 박찬호를 공략해 왔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박찬호는 투심-포심 패스트볼과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적절히 섞는 노련한 피칭으로 좌타자들을 침묵시켰다. 특히 데이먼을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은 일품이었다.

필리스는 7회말 채이스 어틀리의 홈런으로 한 점을 따라 붙은 후, 8회말에도 페드로 펠리즈의 솔로 홈런이 터지며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선발투수 조 블랜튼(6이닝 4실점)의 뒤를 이어 7회와 8회를 책임진 박찬호와 라이언 매드슨의 무실점 피칭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마무리 릿지의 ‘대방화’로 이들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양키스는 1차전 이후 4일 만에 등판한 에이스 사바시아(6⅔이닝 3실점)가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제 몫을 해줬고, 경기 내내 침묵하던 로드리게스가 9회에 릿지를 무너뜨리는 결승 적시타를 쳐준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역대 가을잔치 최고의 마무리’인 마리아노 리베라는 9회말을 퍼펙트로 막아내며 포스트시즌 통산 39번째 세이브를 달성했다.

사바시아를 3일만에 등판시킨 4차전에서 양키스의 승부수가 먹혔다면, 5차전에서는 필리스의 ‘필승 카드’가 등장한다. 바로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3승 무패 평균자책 0.54를 기록하고 있는 좌완 에이스 클리프 리가 등판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5차전의 무게 중심은 필리스로 상당히 기울어진 상태다.

맞대결을 펼칠 A.J. 버넷도 2차전에서 좋은 피칭(7이닝 1실점)을 선보이며 승리를 따낸 바 있지만, 4일 만의 등판이라는 점이 부담스럽다. 사바시아야 예전부터 ‘고무팔’로 이름을 날렸지만, 버넷은 반대로 ‘유리팔’로 유명했던 선수다.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필리스의 승리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리가 1차전에서처럼 완투승을 거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5차전에서도 박찬호는 중요한 포인트에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마무리의 역할을 맡게 될 수도 있다.

팀 내에서 가장 신뢰받는 셋업맨인 매드슨은 이미 3~4차전에 연투를 한 상황이고, 4차전에서 드러난 것처럼 올 시즌 내내 불안했던 릿지를 믿고 기용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그 외의 구원투수들도 3차전에서 모두 실점을 기록하면서 신뢰를 주지 못했다.

때문에 5차전에서 필리스가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구원 카드는 우완 박찬호와 좌완 스캇 아이어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발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며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간다 하더라도 끝까지 승리를 지켜야하는 임무가 남을 것이고, 예상 외로 박빙의 승부가 된다면 어떻게든 좋은 피칭을 이어가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야하는 책임이 주어질 것이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박찬호에게 주어진 제1의 과제는 양키스 타선의 우타자 콤비인 데릭 지터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봉쇄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4차전 경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양키스의 좌타자들에게도 자신감이 있는 편이다. 그 동안 상대전적에서 꽤나 강한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

양키스의 주전급 좌타자와 스위치히터들은 박찬호를 상대로 정규시즌 통산 38타수 5안타(.132)의 빈타에 허덕이며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2개의 홈런을 기록 중인 마쓰이는 7타수 무안타로 철저하게 막혔으며, 닉 스위셔(5타수 무안타)와 자니 데이먼(13타수 2안타) 등도 박찬호의 공을 공략하는데 실패했다.

비록 박찬호가 2차전에서 종전까지 7타수 무안타로 강했던 호르헤 포사다에게 적시타를 허용하긴 했지만, 4차전에서는 데이먼과 테세이라를 잡아내며 강한 면모를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이렇듯 지금의 박찬호는 찰리 매뉴얼 감독이 언제든지 믿고 1이닝을 맡길 수 있는 선수다. 5차전 경기에서도 리가 내려간 다음이나, 경기 후반에 지터나 로드리게스의 타석에서 큰 위기가 닥치게 된다면 박찬호라는 카드를 꺼내들 것이 틀림없다. 박찬호의 어깨에 팀의 운명이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맞이하는 운명의 5차전. 에이스가 등판한다는 점에서 부담은 덜하지만, 한편으로 박찬호가 이번 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앞선 그 어떤 경기보다도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연 박찬호는 스스로의 힘으로 팀의 위기를 구해내고 양키스의 27번째 우승 축포를 막아낼 수 있을까. 개인 통산 첫 번째 우승을 향한 박찬호의 16년 염원과 월드시리즈 2연패를 향한 필리스 팬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번 5차전의 결과에 달려 있다.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