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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

프로야구를 빛낸(?) 그라운드의 악동들

by 카이져 김홍석 2011. 2. 26.



지난
16, AC밀란과 토트넘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만행이 펼쳐졌다. AC밀란의 젠나로 가투소(33)가 경기 중에 토트넘의 조던 코치와 언쟁을 벌이다 목을 조르더니, 소속팀이 역전패하자 경기 종료 직후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진 채 토트넘 벤치로 달려가 조던 코치의 이마에 박치기를 했기 때문이다.

 

프로답지 못했던 가투소의 행동에 모든 축구팬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부었고, 결국 그는 징계 위원회를 통하여 4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전사라는 별명이 무색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듯 프로스포츠에서는 가투소와 같이돌발 행동을 일삼는 이들이 한두 명씩 있었다. 그리고 팬들은 이들을 향하여악동혹은기인이라고 불렀다. 이는 야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30년 역사를 바라보는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기행을 일삼던 인물들이 있었다.

 

방망이를 던진 사나이, 펠릭스 호세

 

어지간한 롯데 팬들이라면, 1999년 롯데의 중심 타선을 이끌었던 펠릭스 호세(46)를 기억할 것이다. 평소에도 심판을 향하여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는 등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던 호세는 롯데 팬들을 웃고 울리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이만큼 상반된 평가를 받는 악동도 없을 것이다.

 

1999년 롯데에 입단한 호세는 그 해에 타율 0.327, 36홈런 122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해 열린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상대 투수 임창용으로부터 끝내기 3점포를 쏘아 올리는 등검은 갈매기다운 활약을 선보였다. 한국시리즈 진출 여부를 결정지어야 했던 7차전에서도 홈런포를 가동했다.

 

그러나 바로 이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삼성을 응원하기 위해 대구구장을 찾은 팬들이 홈런포를 쏘아 올린 호세를 향하여 오물을 투척했기 때문이었다. 날아든 오물에 중요한 부위를 맞은 호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야구 방망이를 관중석으로 던져 버리는만행을 저질렀다. 물론 원인을 제공했던 이는성난 야구팬이었지만, 호세의 행동 역시 프로선수답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01년에 다시 한국을 찾은 호세는 녹슬지 않은 방망이 실력을 과시하며 타율 0.335, 36홈런 102타점의 기록으로 승승장구했다. 여기까지는 롯데 팬들을웃게만드는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9 18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또 다시 사단이 났다.

 

당시 상대 투수 배영수가 정면승부를 피하면서 위협구를 던졌고, 호세를 볼넷으로 내보낸 후 타석에 들어선 또 다른 외국인 선수 얀에게도 연거푸 빈볼성 공을 던졌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에 분노한 호세는 갑자기 1루에서 달려와 주먹으로 배영수의 왼쪽 뺨을 강타해 잔여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불도저같은 그의 성격은 나이를 먹어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5년 만에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2006년에도 호세는 문학 SK전에서 신승현의 빈볼에 맞자 뛰쳐나가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롯데팬들에게는 사랑 받는 선수였고, 원인제공도 상대편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프로선수다운 자제력은 부족했던 전형적인 그라운드의 악동이 바로 호세였다.

 

기인이라 불렸던 사나이, 김동엽 감독

 

‘악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에기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있었다. 바로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1938~97)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경복고-성균관대 졸업 이후 해군과 조흥은행에서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1971년부터 건국대학교, 실업 롯데 등의 감독을 맡았다.

 

김 감독은 이른바스파르타 훈련 방식으로 아마추어와 실업야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77년 실업 롯데 감독 시절에 선수들을 부산에서 서울까지 구보로 뛰게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걸출한 입담을 자랑했던 그는 라디오를 포함, 각종 연예 프로그램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다.

 

프로야구가 출발하면서 해태 타이거즈( KIA)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성적 부진 및 코치진과의 불화로 인해 시즌 시작 한 달 만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MBC 청룡( LG)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지만, 아마 시절 강압적인 훈련 방식이 프로 선수들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관중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심판에게 의도적으로 거친 항의를 하는 등 수많은 쇼맨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동엽 감독의 제자이기도 한 박영진 현 대구 상원고 감독은김 감독님은 식사를 하실 때에도 정장을 입고, 홀로 테이블에 앉아 삽겹살을폼 나게드셨다.”라는 말로 그의 범상치 않았던 모습을 회고했다.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SBS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고, 시트콤에도 출연하면서 특유의 쇼맨십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가정 불화로 부인과 별거하던 중 독신자 아파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그의 자사전이라 할 수 있는 <그래, 잘라라 잘라>가 있다.

 

또 다른 악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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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전 롯데)과 서승화(LG)도악동이란 별명으로 달갑지 않은 유명세를 탄 선수들이다. 동국대 재학 중 1999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2중 계약 문제로 스카우트 파동을 겪었던 서승화는 프로 데뷔 이후에도 각종 빈볼 시비와 퇴장으로 수많은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2004년에는 무려 4번이나 퇴장을 당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세웠다.

 

서승화가그라운드 안에서 많은 뉴스거리를 만들어 낸 반면, 정수근은그라운드 밖에서악동이미지를 만든 장본이었다. 그는 FA로 롯데 유니폼을 입으면서부터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었는데, 대부분 음주운전과 관련된 문제였다. 스포츠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건 문제가 있었다. 결국 그는 KBO로부터 무기한 실격 선수 처분을 받았고, 2009시즌 이후에는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한 이후에도 지난해 음주운전 사고를 내는 등 여전히 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 유진 김현희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티스토리 뉴스뱅크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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