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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야구 한류, 한국 야구의 높아진 위상과 책임감

by 카이져 김홍석 2011. 2. 27.

국내 프로야구 출신으로 일본무대에 진출한 한국 선수 1호는 선동열이었다. 당시만해도 해외진출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고, 한국 선수들에게 일본야구란 그야말로 꿈의 무대와도 같았다.

 

선동열은 당시 이미 국내무대를 완벽하게 평정하며 국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독보적인 선수였다. 하지만 야심차게 도전한 일본무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니치 유니폼을 입은 선동열은 데뷔 첫해이던 1996시즌 5 1 3세이브 평균자책점 5.50이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쳤고, 한때 2군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호시노 센이치 주니치 감독은 선동열에게 그런 식으로 할거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호된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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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은 이후 이를 악물고 절치부심하여 이듬해 일본무대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4시즌 동안 10 4 98세이브 평균자책 2.70의 화려한 성적을 남기고 주니치에서 명예롭게 은퇴했다. 선동열의 활약은 이후 한국인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일본무대에 진출하는 물꼬를 트여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선동열이 은퇴한지 10년여가 흐른 지금, 일본 프로야구는 한국 선수들의 새로운 활동무대로 자리잡았다. 김태균, 이승엽, 임창용 등 일본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 선수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으며, 올림픽과 WBC 등 국제대회에서의 잇단 선전으로 한국야구를 바라보는 위상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박찬호와 김병현같이 메이저리그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물급 투수들이 일본무대 진출을 선언하며 그야말로 야구판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선동열이나 이종범 같은 선수들이 처음 일본무대에 진출할 때만해도 일본 야구계에서는 알게 모르게 한국야구를 낮게 보는 인상이 강했다. 일본 진출 초창기 한국인 스타들이 혹독한 적응기를 거치자, 한국야구 자체를 폄하하는 시선이나 악의적인 보도가 나온 것도 수없이 많았다. 마치 우리가 지금 대만이나 중국야구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박찬호나 김병현, 임창용 같은 거물급 선수들은 이제 일본무대에서도 현지 스타들 못지않은 관심과 대접을 받으며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처럼 최근 일본 야구계가 한국인 선수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검증된 기량도 기량이지만, 대체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권의 선수들과 달리 같은 동양권으로서 단체생활과 조직문화에 대하여 익숙하고 이타적이며 또한 성실하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한일야구의 수준차가 줄어들면서, 이제 한국에서 최고의 실력을 입증한 선수들은 일본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차례 입증된바 있다. FA 자격을 앞두고 있는 이대호나 류현진같은 한국 특급 선수들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또한 한국 선수들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거물급 선수들의 진출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박찬호는 일본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들 중 가장 화려한 경력과 인지도를 갖춘 선수다. 노장인데다 아직 일본무대에서 실력을 입증하기도 전인 박찬호에게 벌써부터 폭발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같은 기대치라도 해도, 한국프로야구를 평정하고 일본무대에 진출했던 이승엽이나 김태균 같은 선수들이 첫 선을 보였을 때 과연 이들이 일본무대에서 통할까라는 식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보였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쌓은 위대한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박찬호는 미국무대에서만 무려 124승을 거두며 일본 출신인 노모 히데오가 세운 기록을 넘어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에도 빅리그 출신들이 많지만, 박찬호는 역대 일본야구를 거쳐간 그 어떤 백인이나 흑인 빅리거들과 비교해도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선수다.

 

박찬호같은 경력을 지닌 선수가 일본무대에서 뛴다는 것이 오히려 일본야구에 있어서는 명예로운 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처럼 박찬호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야구사에서 빛나는 업적을 세운 특별한 선수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야구 한류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아직까지 일본무대에서 성공보다는 실패한 확률이 더 높은 데서 보듯, 아직 일본 프로야구는 한국인 선수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다.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겪은 시련에서 보듯, 잘나가는 이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약자에게는 끝없이 잔혹해지는 곳 역시 일본이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박찬호나 이승엽 같은 선수들이 일본무대에서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이것은 곧 한국야구에 대한 이미지나 자존심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량도 기량이지만, 경기장에서 보여지는 매너라든가 자기관리의 측면에서도 일본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곧 한국야구의 얼굴이라는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일본팬이나 선수들이 박찬호나 이승엽, 임창용을 보면서 동경하고 한국인 선수들을 본받아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들이 자랑스런 롤모델이 되는 풍경을 기대해본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티스토리 뉴스뱅크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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