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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추신수, 명예를 지키긴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1. 5. 7.

2009년을 끝으로 프로 무대를 떠난 정수근(전 롯데)은 한때 촉망받던 야구스타였다. 타고난 야구천재였던 정수근은 빠른발과 정교한 타격, 재기 넘치는 쇼맨십까지 두루 갖춰 이미 데뷔 전부터 스타로서의 모든 조건을 겸비한 선수였다.

 

그러나 그의 야구인생의 마지막은 시작할 때처럼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당대 최고의 톱타자이자 도루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수근의 야구인생이 어느 순간 갑작스레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본업인 야구 때문이 아니라 야구장 밖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사고 때문이었다.

 

지금도 많은 야구팬들은 정수근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야구보다는 음주폭행같은 단어들을 연관 검색어로 먼저 떠올린다. 그만큼 정수근의 야구인생 이면에는 술과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로 점철되어있다. 어쩌다 한번이라면 혈기왕성한 젊은 선수의 실수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사고는 더 이상 실수가 아닌 인성의 문제로 인식되었고, 정수근이란 선수에게 악동’, ‘양치기 소년’, ‘구제불능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서서히 굳어지게 만들었다.

 

정수근은 2009 9월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하는 과정도 프로야구 사상 가장 황당한 사례로 남을 만했다. 그 해 8월 부산의 모처에서 술을 마시며 난동을 부렸다는 술집 종업원의 신고로 경찰서에서 출동하는 등 또 다시 사회면에 등장한 정수근은 이후 롯데로부터 퇴출당했고, 며칠 뒤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무기한 실격처분을 받았다. 사실상의 강제은퇴였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시즌기간에 정수근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못마땅하게 여긴 롯데팬의 허위신고였음이 밝혀지면서 논란을 빚었다. 이번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쓰고 날벼락을 맞은 정수근으로서는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지만, 정작 정수근을 동정하는 여론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의 덫에 이미 사회적인 낙인이 찍혀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수근의 사례는 프로 선수, 또는 유명인에게 있어서 자기관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평소의 이미지만 아니었다면 술집 난동 파문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수근은 당시 이미 이전의 폭력사건 등으로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가 1년 만에 복귀하는 등, 징계가 해제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일종의 집행유예처분으로 여전히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할 선수가 중요한 시기에 또다시 술집 근처를 기웃거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팬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았다. 최근 드라마의 대사처럼 법적으로는 무죄, 인간적으로는 유죄의 선고를 받은 셈이다.

 

최근 음주운전파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추신수는 정수근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추신수는 야구실력도 실력이지만, 평소 바르고 성실한 모범생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팬들은 느낀 배신감이 더 컸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로 추신수는 자신이 지켰어야 할 명예에 돌이킬 수 없는 흠집을 남겼다는 점이다.

 

추신수만이 아니라 모든 프로선수들이 마찬가지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모여있다는 메이저리거들에게 있어 명예란 곧 자부심이자 또 다른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야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선수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명예란, 자신이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인정과 지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메이저리거라는 신분이 곧 전 세계의 모든 야구선수들이 동경하는 상류층이라고 봤을 때, 그에 걸맞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일이 아니다.

 

추신수는 현재 소위 말하는 성공의 정점에 있었다. 2년 연속 20-20 3할 타율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스타플레이어의 반열에 올랐고, 작년에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금메달까지 차지하며 병역혜택까지 받았다. 몸값은 이미 10배로 수직상승 했고, 향후 FA 자격을 얻으면 돈방석에 앉는 것은 시간문제다. 타지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10년에 걸쳐 고군분투했던 아메리칸 드림이 결실을 앞두고 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무릇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 얻는 것은 어려워도 잃는 것은 쉬운 법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슈퍼스타라도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순식간에 나락까지 추락하는 장면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선수생활의 정점에서 갑작스러운 추락을 경험했던 박찬호나 이승엽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야구 그 자체에 국한된 상황이었지, 결코 야구장 밖에서의 자기관리 실수로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추신수가 병역문제로 세간의 이슈가 됐을 당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못 따더라도 추신수에게만은 병역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팬들이 상당수였을 정도로 끊임없는 지지를 보냈던 팬들은 모든 것을 이루자마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추신수의 행보에 대해 기대했던 만큼이나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야구 경기 속에서 성적이 부진했다거나 하는 경우라면 괜찮았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을 많이 벌거나 성공한다고 내가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추신수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지는 순간, 대중이 느낀 배신감은 그 잘못의 무게 자체보다 더욱 크게 다가왔다.

 

물론 추신수는 잘못을 인정했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신수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한번의 실수로 추신수에게 지나친 선입견이나 사회적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추신수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지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야구장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어떻게든 이해의 소지가 있지만, 야구장 밖에서 벌어진 일은 성인이라면 온전히 스스로 짊어져야 할 스스로의 몫이다. 추신수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비난을 받아서 안 되는 것처럼, 그 반대로 추신수이기 때문에 음주운전 같은 중대한 과실이 미화되거나 동정 받아서도 안될 일이다.

 

오히려 한국 사회는 음주문화에 있어 지나치게 관대한 측면이 있다. “사람이 술을 마시면 그럴 수도 있지라던가 음주운전을 했던 선수가 어디 추신수 뿐인가?”라는 말부터 시작해 심지어 사람을 친 것도 아닌데…”같은 위험천만한 이야기까지 버젓이 나오기도 한다. 범죄 행위에 대한 지나친 미화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는 것은 추신수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추신수이기에 특별히 관대해서도 안되며, 관대할 것이라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잘못실수는 어감에서부터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잘못은 행위의 결과를 평하는 것이지만, 실수는 그 행위가 어떤 의도성을 가졌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추신수에게 음주운전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추신수의 음주운전 사건을 한번의 실수정도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흘러 추신수가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고,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대중에게 다시 심어줄 때쯤, 그때가 되어서야 이번의 사건을 젊은 날 한때의 실수정도로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추신수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과 더불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명예를 잃었다가 다시 되찾는 길은 3할 타율이나 20-20을 기록하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는 것은 추신수가 이번 기회에 깨닫기를 바란다.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홍순국의 순 스포츠, 동영상=Yout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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