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다소 어이없는 박찬호의 개막 로스터 탈락

by 카이져 김홍석 2008. 3. 31.

루디 시네즈가 방출되면서 거의 확실할 것으로 보였던 박찬호의 25인 로스터 진입이 물거품이 되었다.


현지 시간으로 30일 조 토레 다저스 감독은 박찬호가 트리플A 라스베가스로 보낸다는 뜻을 밝혔고, 일단 박찬호는 이를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토레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지만 야속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2선발이 보인다’느니 했던 것은 죄다 국내 기자들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최근의 정황은 박찬호가 25인 로스터 진입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애당초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박찬호가 좋은 성적을 거두건 말건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조차도, 얼마 전 루디 시네즈의 방출은 박찬호에게 절호의 찬스가 왔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결국 그 당시 소식을 비교적 빨리 접했던 터라, 딴에는 좋은 소식 빨리 전해준다고 썼던 칼럼 ‘다저스 시네즈 방출, 박찬호 메이저리그 잔류 가능성 매우 높아’ 편은 나 혼자 흥분해 헛소리를 지껄인 결과가 되고 말았다. 딴에는 90%이상 확실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그 글을 읽어주셨던 독자분들에게 죄송한 맘뿐이다.


찬호의 로스터 탈락 이유는 크게 2가지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행은 그다지 좋지 않다. 기회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무엇하나 낙관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으니 나쁘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돈... 돈... 돈...

네드 콜레티 다저스 단장은 지난해 8월 29일 큰 실수를 하나 했다. 오클랜드가 웨이버로 공시한 에스테반 로아이자라는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선발투수가 필요했던 콜레티 단장이 급한 김에 저지른 사고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올해 LA 다저스와 박찬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로아이자의 올 시즌 연봉은 700만 달러가 넘는다. 이미 다저스 팬들로부터 욕먹고 있는 콜레티 단장이지만, 이런 선수를 불펜으로 쓴다면 ‘겨우 불펜으로 쓰려고 700만 달러짜리 선수를 데려온 것이냐?’는 비아냥까지 사게 될 판. 콜레티는 찬호의 성적과 관계없이 로아이자가 선발투수가 되길 원했을 테고, 토레는 이런 콜레티의 입장을 배려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돈의 논리, 그리고 어리석은 단장이 감당해야 할 몫을 힘없는 ‘초청선수’ 박찬호가 모조리 덮어쓴 것이다.


○ 가능성

다저스는 이날 박찬호의 마이너리그 행을 발표하면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것은 지난해 5년간 4400만 달러를 주기로 하고 영입한 후안 피에르 대신, 유망주 안드레 이디어를 주전 좌익수로 기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위의 상황과 정반대로 돈의 논리가 뒤집어진 것이다.


이것은 토레가 콜레티의 입장을 외면한 채, 승리를 위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외면하기로 맘먹었다는 뜻이다. 그럼 이디어와 찬호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앞으로의 가능성 문제다.


이디어는 지난 2년 동안 주전과 벤치를 오가면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 다저스에 노장과 신예 선수들이 대립하게 된 것은 이디어의 기용과도 관련이 있었다. 실력은 이디어가 더 좋은 데도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지 못했기 때문.


팬들은 그런 이디어가 앞으로 다저스를 이끌어갈 재목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고, 스프링 캠프(6홈런 16타점 .365/.473/.649)에서 날아다닌 그를 주전으로 기용하길 원했다. 콜레티 단장은 ‘900만 달러짜리 대주자 후안 피에르를 영입한 멍청이’라는 딱지를 달게 되겠지만, 토레는 승리를 위해 그것을 무시했다.


어쩌면 토레 감독은 가능성 면에서 박찬호와 큰 차이가 없는 로아이자를 5선발로 수용하고, 피에르는 내침으로써 콜레티 단장과의 관계를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이래나 저래나 35살의 박찬호에게는 불리할 뿐이다.


박찬호 대신 로스터에 진입한 라몬 트론소코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전혀 없는 유망주다. 시범경기에서 좋은 피칭(9.2이닝 3자책 방어율 2.79)을 선보이긴 했지만, 박찬호(18.2이닝 5자책 2.41)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찬호를 제치고 로스터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애당초 구원투수라는 점과 어린 나이이기에 앞으로의 가능성이 박찬호보다 더 크다는 점이었다.


○ 불안한 마이너행...

박찬호의 마이너리그 행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안한 요소가 많다.


일단 토레가 그를 전력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마이너에 내려 보냈다는 것을 좋게 해석하면, 선발로 기용하기 위해 긴 이닝을 투구시키겠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로아이자도 완전히 믿을 수 없고, 빌링슬리가 워낙에 불안한 모습(시범경기 방어율 6.85)을 보이고 있는 터라, 여차하면 콜업시켜서 대체 선발 요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보장된 것은 없다. 4월 중반이 되면 12명으로 투수진을 구축하겠지만(현재는 11명), 그 남은 한 자리가 반드시 박찬호의 것이 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상의 문제 때문에, 다저스가 조건없이 풀어주지 않는 이상 5월 15일까지는 마이너리그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회가 늦게 오면 늦을수록 박찬호에게 불리하다. 이번 시범경기에는 다저스 최고의 유망주인 20살의 클레이튼 커쇼(위의 사진)도 함께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도 보스턴을 상대로 4이닝 동안 피안타 1개만을 내준 채 5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위력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시범경기에서 6번 등판해 14이닝 동안 허용한 점수는 단 1점, 볼넷은 3개를 내줬고 삼진은 무려 18개를 잡았다. 당장은 더블A로 내려가서 시즌을 시작하겠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봐선 순식간에 마이너리그를 평정할 태세. 5월까지 콜업이 미뤄진다면 커쇼의 존재로 인해 박찬호는 잊혀질 수도 있다.


사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고, 현재로선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예상’이니 ‘전망’이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것은 시즌에 돌입한 후 다저스 투수진의 성적, 그리고 토레 감독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박찬호 선수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혹여나 이번 일로 인한 상심이 마이너리그에 내려간 후의 투구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랄뿐이다. 그러면 정말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