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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와 노모, 그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정표

by 카이져 김홍석 2008. 4. 13.

박찬호(LA 다저스)에 이어 노모 히데오(캔자스시티 로열스)까지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한 때는 같은 팀에서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노력했던 사이였고, 국적이라는 틀 속에서 어쩔 수없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던 두 명의 선수. 일각에선 ‘그들은 끝났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둘 모두 어두운 터널을 뚫고 다시금 메이저리그에 당당히 복귀한 것이다.


통산 123승 109패 1975이닝 1916탈삼진 방어율 4.22의 노모와 통산 113승 88패 1754이닝 1512탈삼진 방어율 4.39의 박찬호. 한 명은 자신이 데뷔했던 팀에서 재기에 성공했고, 다른 한 명은 일본 프로야구 출신의 트레이 힐먼 감독이 있는 캔자스시티에서 빅리그로 부름을 받았다.


1) 선구자였던 그들

노모는 1968년생이고 박찬호는 그보다 다섯 살이 어린 1973년생이다. 당연히 노모가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만큼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굳이 데뷔 시간으로 따지자면 박찬호가 노모보다 선배다.


1994년 당시 박찬호는 사상 17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했다. 물론 경험부족으로 2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와 2년 동안 내공을 쌓아야 했지만, 1년 뒤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노모에 비해 한 발 먼저 진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먼저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노모다. 박찬호가 유망주 전문 기관인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100대 유망주 안에 포함되어(41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던 1995년에 노모는 그 특유의 폼과 위력적인 포크볼로 메이저리그에 토네이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3승 6패라는 성적도 훌륭했지만 3번의 완봉승과 2.54의 방어율은 노모를 한층 더 빛나게 해주었다. 특히 191이닝 동안 236개나 되는 탈삼진을 잡아냈고, 그것은 그 해 내셔널리그 1위의 기록이었다. 신인왕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고, 그와 더불어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4위에 올랐다. 당시 노모에게 밀려 신인왕 투표에서 2위에 머물렀던 선수는 다름 아닌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영원한 캡틴 치퍼 존스다.


이 해부터 노모는 3년 동안 다저스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활약하며 3년 연속 230개가 넘는 삼진을 잡아냈고,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 필드에서 노히트 노런을 해내는 등 43승을 거두며 첫 번째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서른이 넘어가면서 부진에 빠져 예전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는 2002년 다저스로 복귀해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다. 2년 연속으로 3점대 초반의 방어율과 16승을 기록한 것. 노모의 123승 가운데 81승이 다저스에서 기록한 성적이다.


박찬호는 노모가 서서히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한 1997년 다저스의 5선발 자리를 꿰찼고 그 해 14승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다저스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한 5년 동안 1067이닝을 던졌고 3점대 방어율로 75승 49패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다저스에서 활약한 그 어떤 투수보다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다.


비록 2001년 FA가 되어 다저스를 떠났고, 그 후 몰락의 길을 걷긴 했지만 전성기 시절의 박찬호는 아시아에서 야구를 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다. 지금 일본 프로야구의 탑클래스 선수들이 계속해서 메이저리그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은 분명 노모와 박찬호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선구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냈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후배들이 과감히 도전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이제는 다시 도전하는 입장에서...

공교롭게도 둘 모두 팀의 12번째 투수로 25인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그 말은 곧 그들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경계에 서있으며, 계속 메이저리그에 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뚜렷한 성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찬호는 1여년만의 메이저리그 복귀전에서 애리조나의 신예 마크 레이놀즈(25)에게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노모도 지난 11일 무려 1000일 만의 메이저리그 복귀전에서 2.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호르헤 포사다에게 백투백 홈런을 허용하며 2실점했다.


이미 둘 다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다. 팀은 그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 그저 12번째 투수로서 잘하면 다행이고 못하면 큰 부담 없이 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조 토레가 로아이자를 선발에서 제외하면서 박찬호가 아닌 궈홍즈를 기용하겠다고 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은 박찬호 쪽이 조금 더 낫다. 우선 첫 경기 이후의 2번의 등판은 모두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냈고, 팀의 선발 투수들이 불안한 터라(특히 채드 빌링슬리) 지금 같은 호투만 이어간다면 선발 등판의 기회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노모의 경우는 다소 불안하다. 일본에서 성공해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감독이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과도 같은 베테랑 투수의 도전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기 위한 마지막 ‘배려’가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준다. 물론 노모가 시범경기에서 녹슬지 않은 구위를 자랑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15이닝 17탈삼진 방어율 4.80)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박찬호만큼 돋보이는 수준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로열스에는 루크 호체바(2006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라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투수 유망주가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노모는 호체바가 메이저리거로 준비될 때까지의 한정된 시간만을 허락받았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노모는 항상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 오뚝이처럼 재기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준 선수다. 98년부터 계속된 3년간의 부진으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가 이전 같지 않았던 보스턴에서의 2001년, 한국 시간으로 식목일에 있었던 시즌 첫 등판에서 그는 역대 4번째로 양대 리그 노히트 노런의 주인공이 됐다. 더불어 그해 개인 통산 두 번째 탈삼진 부문 1위에 올랐다.


박찬호 역시도 2002년 이후의 성적은 메이저리거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많은 연봉이 아니었다면 몇 번이나 방출당하고도 남았을 수준 이하의 성적. 하지만 그는 7년 만에 다시금 메이저리거다운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이 정도 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은퇴하거나 다른 길을 찾기 마련이지만, 오직 한 우물만 팠던 박찬호는 그 조차도 극복해낸 것. 최근 박찬호의 투구에서 느껴지는 구위는 7년 전을 연상케 한다.


3) 그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정표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절반이 넘는 선수들이 30대 초반에 은퇴를 결심한다. 일본의 경우 그보다는 좀 낫지만 역시 30대 후반까지 현역으로 남아있는 선수들은 그리 많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부상이나 개인 신상의 문제가 아닌 기량 저하 때문에 리그에서 밀려났던 30대 후반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복귀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노모는 빅리그 입성과 동시에 팀 내 최고령 선수가 되어버렸고, 박찬호 역시 나이가 아니라 ‘경력’만을 따진다면 팀에서 그를 따라올 선수가 아무도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노모는 8월 31일에 메이저리거로서 40세 생일을 맞이한다. 박찬호도 7월 31일(음력 6월 29일)이 되면 만으로 35세가 된다. 몇 년간이 공백(부진과 부상으로 인한)이 있었지만, 야구선수로서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메이저리거’로 불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아시아계 선수도 몸 관리만 철저히 하면 30대 후반 더 나아가 40대에 들어서도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국적은 달라도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돋보이는 아시아인 투수 왕첸밍과 마쓰자카는 과거의 노모와 박찬호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오프 시즌 중 노모에 대해 인터뷰를 하던 마쓰자카의 목소리는 다소 떨려 보였다. 그만큼 노모라는 선수가 그에게 미친 영향이 컸다는 증거.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가 고시엔을 점령하고 프로에 막 데뷔할 당시에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코리아 특급’ 박찬호도 그에게 적잖은 영향도 미쳤을 것이 틀림없다. 완첸밍도 예외일 수 없다.


메이저리그 개척의 선구자로서 많은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던 노모와 박찬호. 이제 그들은 후배들에게 메이저리그에서 롱런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비록 시행착오가 있었고, 먼 길을 돌아와야 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후배들은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보다 앞선 선구자였기에 계속해서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노모와 박찬호. 각자 일본행과 한국행이라는 편한 길이 보장되어 있지만, 그 길을 버리고 끝없이 도전자와 개척자의 자세를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