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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매니 라미레즈 트레이드로 레드삭스가 ‘얻은 것’과 ‘잃은 것‘

by 카이져 김홍석 2008. 8. 2.

결국 트레이드 데드라인인 7월 31일(현지시간)에 매니 라미레즈가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하게도 LA 다저스가 포함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3각 트레이드를 통해서였다.


개인적으로는 매니의 트레이드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었다. 당장 올해의 우승을 노리고 있는 보스턴 레드삭스인지라 유망주 몇 명을 받아들이고 매니를 내보내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매니를 내보내고 받아 온 선수가 제이슨 베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현재의 매니에게 크게 뒤처지지 않는 즉시전력감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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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정하면서도 과감한 GM 테오 엡스타인

2002년 말 레드삭스의 경영진은 예일 대학 출신의 29살짜리 애송이에게 단장(GM)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능력에 대한 의문을 가졌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Manager) 이상으로 중요한 지위인 GM의 역할을 경험이 일천한 애송이가 잘 해낼 가능성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애송이는 세이버매트릭스의 대부인 빌 제임스를 단장 고문역으로 초빙하더니 ‘머니볼’로 유명한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 이상으로 ‘기록의 야구’가 지닌 강력함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취임 2년 만에 보스턴을 86년 만의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끌며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렸고,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일구어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테오 엡스타인을 애송이 취급할 수 없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능한 단장 가운데 한 명으로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유명인사다.


그는 열정적이면서도 냉철하다. 정이 많은 듯 보이지만, 그러한 정에 이끌려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는 일이 없다. 단장 취임 2년째인 2004시즌 중반에는 ‘보스턴의 심장’이라 불렸던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 했다. 그 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에는, 전성기가 끝났다고 판단한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미련 없이 떠나보냈다. 일부 팬들은 분노했지만, ‘우승’이라는 결과가 뒤따르자 테오의 그러한 면은 ‘비정함’이 아닌 ‘카리스마’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매니 라미레즈가 보여준 집중력을 본 사람이라면, 올해도 보스턴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매니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엡스타인은 이번에도 연일 불만을 토해 팀 캐미스트리를 해치는 매니를 가차 없이 트레이드 시장에 내놨다. 매니를 트레이드 한 2008년 7월 31일은 가르시아파라를 떠나보낸 지 정확하게 4년째 되는 날이다.


게다가 그는 또 다른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보스턴은 포스트시즌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팀이다. 그런 팀이 전력이 약화될 것이 뻔한 중심 타자의 트레이드를 시도할 수는 없는 일. 만약 트레이드가 일어난다면 반드시 유망주(설령 그 유망주가 장래 슈퍼스타가 될 만한 특급 유망주라 하더라도)가 아닌 즉시전력감인 선수와 이루어져야만 했다.


때문에 엡스타인은 피츠버그가 매물로 내놓은 제이슨 베이를 눈여겨 보았고, 그를 영입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데드라인 전날까지 3각 트레이드의 한 축을 이룰 것으로 생각되었던 플로리다가 유망주 마이크 스탠튼을 보낼 수 없다는 이유로 발을 뺐음에도 불구하고, 발 빠르게 다저스를 끌어들여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다. 그 덕에 이 트레이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다저스의 네드 콜레티 단장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엡스타인의 능력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번 트레이드에 대한 평가는 의견이 분분하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팀의 기둥이자 한편으로는 골칫덩이였던 매니 라미레즈의 처분. 이제부터 그 결과로 보스턴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 보스턴 레드삭스가 ‘얻은 것’

보스턴은 이번 트레이드로 인해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내용도 일리는 있지만, 트레이드 내용 자체만으로 본다면 엡스타인은 ‘천재’라 불려도 무방하다 싶을 정도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고작(?) 베이 한 명을 얻기 위해 매니와 두 명의 유망주를 내준 것도 모자라 700만 달러의 연봉보조까지 해준 굴욕적인 트레이드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트레이드의 승패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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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베이와 매니의 타격 능력은 차이가 없다. 오히려 매니보다 6살이나 어린 베이의 손을 들어줘도 무방하다. 수비 능력은 말할 것도 없으며, 베이는 팀 단합을 깨뜨리는 언론 플레이를 즐기지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베이는 내년시즌이 종료되어야 FA로 풀린다는 점이다.


보스턴이 매니를 트레이드하지 않고, 내년 시즌에 걸려있는 2000만 달러의 옵션을 이행했다고 가정해보자. 결국 보스턴은 남은 700만 달러의 연봉과 더불어 내년 시즌에도 매니에게 20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즉 매니 정도의 타자에게 2009년까지 2700만 달러의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이는 어떨까? 베이는 2006년부터 내년까지 4년간 1825만 달러라는 헐값에 묶여있다. 올해 남은 연봉은 약 200만 달러가량, 내년 시즌 연봉은 750만 달러다. 즉 매니와 비슷한 수준인 베이를 라인업에 포함시킨 대가로 보스턴이 지불해야 하는 연봉은 합쳐서 950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700만 달러의 연봉보조를 해도 손해볼 것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돈을 지불하고서도 1000만 달러 이상의 돈이 절약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엡스타인에게 이 트레이드는 핸슨과 모스라는 두 명의 유망주를 1000만 달러라는 현금을 받고 판매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돈이 올해 커트 쉴링에게 투자했다가 날린 800만 달러와 합쳐져, 다가올 FA 시장에서 전력보강을 위해 사용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트레이드가 미래 지향적이며, 내년 시즌의 레드삭스가 올해보다 더욱 무서울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크렉 핸슨과 브랜든 모스는 둘 다 83년생의 투타 유망주다. 핸슨은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보스턴이 1라운드 26순위로 지명한 선수이며, 모스는 2002년 8라운더다. 꽤나 앞날이 창창한 선수들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 정착하지 못하고 정체된 선수들이기도 하다. 향후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수는 알 수 없지만, 유망주 전문 사이트인 베이스볼 아메리카(BA)의 시즌 전 선정에서 팀 내 유망주 탑 10에도 들지 못했던 선수 두 명을 넘긴 대가로 1000만 달러를 받아왔다면 이를 두고 손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 보스턴 레드삭스가 ‘잃은 것’

베이는 매니보다 젊다. 특출 난 수비수는 아니지만 매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수비실력을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가끔은 1루까지 뛰어(?) 가는데 5~6초가 걸리곤 하는 매니보다 훨씬 성실하며, 2005년에는 21도루를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주루 플레이에도 일가견이 있다.(통산 50도루 11도루자 성공률 82%의 수준급)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무대에 서본 적이 없다. 위기에 처한 팀을 구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 선수도 아니며, 빅마켓에 소속된 팀의 선수가 감수해야만 하는 언론의 압박도 느껴본 적이 없다.


스몰마켓 팀의 올스타급 선수로 그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받고 있으나, 한 번도 치열한 순위 다툼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위기 상황에서의 능력이 한 번도 검증되지 못한 선수. 그것이 피츠버그 소속으로 뛰어온 베이가 지닌 한계다.


보스턴의 불안 요소는 바로 이것이다. 대도시의 언론에 주눅 들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이용할 줄도 알았던 괴짜. 철체절명의 순간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믿지 못할 괴력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던 슈퍼맨. 그랬던 매니가 팀을 떠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단순한 타격 능력에서 베이와 매니는 차이가 없다.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을 내다본다면 이 트레이드는 분명 득이다.


하지만 당장 올해는? 뉴욕 양키스와 한 경기 차이로 좁혀진 지금의 위기 상황은? 과연 베이가 매니가 그간 해왔던 역할을 100% 대신하며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견인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물음표를 그릴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매니 라미레즈보다 더 뛰어나다고도 평가할 수 있는 선수인 제이슨 베이. 하지만 그에게 매니가 그 동안 해왔던 역할의 전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보스턴은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매니 라미레즈라는 이름이 가진 ‘존재감’을 잃어야만 했다.


능력치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으되, 그 역할에서는 매니의 빈자리를 완전하게 대신할 수 없다는 것.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보스턴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과연 올 시즌이 끝난 후 이 트레이드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일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그 결과가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P.S. 얼떨결에 이번 딜에 낀 대가로 다저스는 그다지 필요 없는 두 명의 유망주를 내보내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중심 타자를 얻었다. 게다가 남은 기간 동안 지불해야 하는 연봉은 100% 보스턴이 지급한다. 덕분에 자리보전이 위태로워 보였던 네드 콜레티 다저스 단장은 이로서 위기를 벗어나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엡스타인의 선물이다. 원하는 것을 얻은 매니가 FA를 앞둔 시점에서 보여줄 집중력이 얼마나 무서울 지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