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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800만 달러짜리 시구, 그리고 그 엄청난 효과...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0. 17.


지난해 우승팀 보스턴 레드삭스와 지난해 꼴찌에서 신흥 강호로 떠오른 템파베이 레이스가 맞붙은 2008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레드삭스는 마쓰자카가 선발로 등판했던 1차전에서의 승리 후 내리 3연패 하며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 위기에 놓여있었다. 홈에서 마지막으로 벌어지는 5차전에서의 패배는 곧 올 시즌의 마지막을 의미했다.


1차전에서 7이닝 무실점 완벽투를 선보였던 마쓰자카의 선발 경기이기에 기대를 걸었으나, 1회 B.J. 업튼에게 2점 홈런 허용, 3회에도 카르로스 페냐와 에반 롱고리아에게 각각 2점과 1점짜리 홈런을 내줬다. 5:0으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7회 초 또다시 업튼의 2타점 2루타가 터져 나오자, 이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레드삭스의 탈락을 직감했다.


7:0이라는 절망적인 스코어. 단 3번의 공격 기회만 남은 그 상태에서 레드삭스가 역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하지만 드라마는 7회 말부터 시작된다. 더스틴 페드로이아의 1타점 적시타에 이은 데이빗 오티즈의 3점 홈런, 8회 말 이날 경기의 영웅 J.D. 드류가 2점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7:6 한 점차 상황을 만들더니 결국 ‘계륵’ 코코 크리스프가 동점타를 날렸다. 그리고 9회 말 2사 1,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드류는 우익수를 넘기는 큰 타구로 2루 주자 케빈 유킬리스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대미를 장식했다. 말도 나오지 않는 기적 같은 8:7 역전승!


이로써 2승 3패가 된 레드삭스는 템파베이의 홈에서 펼쳐지는 6,7차전에서 대 역전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1승 3패로 뒤지고 있다가 3연승을 달리며 월드시리즈로 진출했고, 2004년 챔피언십에서는 사상 첫 3연패 후 4연승으로 뉴욕 양키스를 누른 전적이 있다.


5차전의 시구자는 바로 그 2004년 포스트시즌에서 양말에 피가 묻어나오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역투를 펼쳐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이었다.


커트 쉴링... 레드삭스가 2004년과 2007년 두 번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투수. 그리고 올 시즌 부상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8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는 시즌 내내 그 얼굴조차 비취지 않았던 선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받은 연봉 때문에 레드삭스 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 단 한 번의 시구와 기적 같은 역전승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이 용서받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레드삭스 구단 측은 2004년과 2007년의 기적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쉴링을 시구자로 내세웠던 것이다. 마쓰자카가 무너질 때만 하더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듯 보였으나, 이게 웬일... 그 뒤는 이전에 일어났던 기적보다도 더욱 놀라운 대역전극이 펼쳐진 것이다.


8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연봉을 놀고먹으면서 받았던 쉴링이 레드삭스 팬들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이 시구 한 번이 전부다. 하지만 그 효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라면 그 돈을 아까워할 팬들은 없으리라.


우연이라 하더라도, 또한 근거 없는 기대였다 하더라도, 그 우연이 계속해서 겹치거나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게 되면 그것을 우리는 필연 또는 운명이라 부른다. 레드삭스의 우승 뒤에는 항상 이토록 멋진 대역전극이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펼쳐지도록 운명지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월드시리즈에 먼저 진출해 있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관계자와 선수들은 이번 시합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시리즈가 길어져서 상대해야할 선수들의 휴식 기간이 짧아진 것을 내심 기뻐했을까, 아니면 보스턴의 저력을 보고 목에 날이 선 듯 한 서늘함을 느꼈을까? 아무래도 후자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