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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그라운드를 떠나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2. 6.

누군가 기자에게 “야구라는 스포츠가 생겨난 이후 탄생한 가장 뛰어난 투수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렉 매덕스"라고 답할 것이다. 그 외에 달리 생각나는 이름도 없을뿐더러, 굳이 다른 이름을 떠올리려 애써 고민해야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Greg Maddux - The Greatest Pitching Master in Baseball History’


150년의 야구 역사를 통틀어서 단순한 ‘throwing’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pitching’을 보여준 단 한 사람. 실력과 인격을 동시 겸비했으며, 팬들보다도 동료나 후배들에게 더욱 큰 존경과 찬사를 받아왔던 저 위대한 ‘마스터’ 그렉 매덕스.


그가 23년의 선수 생활을 뒤로한 채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 종료와 더불어 계속해서 떠돌았던 소문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하니 매덕스에 관한 추억들을 떠올렸던 야구팬이 기자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어떤 선수의 은퇴 소식도 이처럼 아쉽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 살아있는 전설, 그렉 매덕스

1966년생으로 올해 42살인 매덕스는 1986년 20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래 통산 744경기에 등판했으며, 그 가운데 4번을 제외한 740번(역대 4위)이 선발등판이었다. 355승(8위) 227패 109완투 35완봉 3.1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5008.1이닝(13위)을 투구하는 동안 3371개의 탈삼진(10위)을 잡아냈다.


17년 연속 15승 이상, 20년 연속 두 자리 승수, 14년 연속 200이닝 투구, 21년 연속 세 자리 수 탈삼진, 1992년부터 4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 8번의 올스타, 그리고 18번의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수상. 그가 이룩해 낸 업적들은 너무나도 화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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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한 야구팬이 “고흐의 작품은 보지 못했지만, 그렉 매덕스의 투구는 본 적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사실의 여부를 떠나서 매덕스가 얼마나 위대한 투수이며, 또한 얼마만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선수인지를 잘 말해준다. 실제로 매덕스의 통산 기록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 편의 예술작품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 시대에 진정한 살아있는 전설 그렉 매덕스.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다. 그와 같은 투수가 앞으로 또 다시 탄생할 수 있을까?


○ 메이저리그 역대 다승 순위        ○ 메이저리그 역대 탈삼진 순위
1위 사이 영             511승    1위 놀란 라이언        5714개
2위 월터 존슨           417승    2위 랜디 존슨          4789개
3위 피트 알렉산더 &              3위 로저 클레멘스      4672개
    크리스티 매튜슨     373승    4위 스티브 칼튼        4136개
5위 퍼드 갤빈           364승    5위 버트 블라일레븐    3701개
6위 워렌 스판           363승    6위 탐 시버            3640개
7위 키드 니콜스         361승    7위 돈 서튼            3574개
8위 그렉 매덕스         355승    8위 게일로드 페리      3534개
9위 로저 클레멘스       354승    9위 월터 존슨          3509개
10위 팀 키프            342승    
10위 그렉 매덕스       3371개

 

▶ 신의 영역에 이른 컨트롤 + 꿈틀거리는 직구

메이저리그 역사상 300승과 5000이닝 이상 투구 그리고 3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선수는 매덕스 외에도 놀란 라이언과 스티브 칼튼, 게일로드 페리, 월터 존슨, 필 니크로까지 모두 6명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통산 볼넷 허용 개수가 1000개 미만인 선수는 매덕스(999개)가 유일하다.


1993년까지 1709이닝에서 507개의 볼넷을 허용했던 매덕스는 컨트롤이 ‘신의 영역’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94년 이후에는 3299.1이닝에서 단 492개의 볼넷만을 허용했다. 더군다나 그 중 100개는 고의볼넷이었으며, 200이닝 기준 30개, 9이닝 당 1.34개에 불과한 엄청난 컨트롤을 자랑했다.


매덕스의 투구 철학은 ‘못 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철저히 맞춰 잡는 것을 노렸으며, ‘치기 쉬워 보이지만 중심에는 맞출 수 없는 공’을 던지려고 노력했던 선수다. 굳이 마음을 먹는다면 삼진을 잡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의 목표는 언제나 ‘27구 완봉승’이었다.


2008년 매덕스의 직구 평균 구속은 83.7마일(135km)이었다. 메이저리그의 선발 투수 가운데 그보다 느린공을 던지는 투수는 너클볼러인 팀 웨이크필드(72.9)와 46세의 제이미 모이어(81.2)뿐이다. 전성기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90마일(145km)을 넘어가는 매덕스의 포심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속만 놓고 본다면 시속 100마일(161km)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지는 랜디 존슨이나 페드로 마르티네즈, 로저 클레멘스 등의 직구가 훨씬 빠르고 위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높은 직구 구사비율(70%안팎)을 보여주는 선수가 바로 그렉 매덕스다.


앞의 투수들이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고 변화구로 헛스윙 삼진을 노릴 때, 매덕스는 볼 끝이 살아 있는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고 꿈틀거리는 현란한 투심으로 스탠딩 삼진을 잡았다. 9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말까지 ‘매덕스의 투심 패스트볼’은 ‘현존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구’ 랭킹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슬라이더와 커브 등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지만, 정작 경기에 들어가면 직구 계열인 포심과 투심 그리고 체인지업만 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프시즌이 되면 훈련은커녕 탐 글래빈, 존 스몰츠 등과 어울려서 골프 치러 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소모품’이라고 할 수 있는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구질과 철저한 휴식.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다.


▶ 언제나 기록에 초연했던 교수님의 은퇴

[상황 1] 2001년 8월 12일 매덕스는 4:0으로 뒤지고 있던 3회 1사 2루 상황에서 스티브 핀리에게 고의볼넷을 허용했다. 더 이상의 실점을 막기 위한 바비 칵스 애틀란타 감독의 지시에 고개 한 번 흔들지 않고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터너필드의 관중들과 TV를 시청하던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 볼넷이 매덕스의 연속이닝 무볼넷 기록을 72.1이닝에서 멈추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황 2] 2002년 9월 27일 시즌 마지막 등판을 맞이한 매덕스는 ‘15년 연속 200이닝 투구’라는 대기록에 단 5.2이닝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매덕스는 53개의 공을 사용해 5회까지 1실점으로 막은 후, 기록 달성까지 아웃 카운트 2개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디비즌 시리즈를 대비한다는 이유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팬들은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19년 연속이 될 수도 있었던 위대한 기록은 14년 연속에서 멈추고 말았다.(당시 필자는 들고 있던 리모콘을 던져서 박살냈던 기억이 있다.)


[상황 3]은 미국시간으로 2008년 12월 8일(월)에 벌어질 예정이다. 이 날 매덕스는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워렌 스판의 라이브볼 시대(1920년 이후) 최다승 기록에 단 8승만을 남겨둔 채, 유니폼을 벗게 되는 것이다. 올해 8승 13패 4.22로 다소 부진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은퇴를 결정할 정도로 나쁜 기록은 아니기에 팬들은 한숨을 쉰다.


매덕스와 가장 비슷한 스타일의 투수이며 4살 연상인 제이미 모이어는 지난 4년 동안 54승을 거뒀다. 그 이상으로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해온 매덕스가 선수생활을 이어간다면, 스판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역대 3번째 400승 투수로 등극하지 말란 법도 없다는 뜻이다. 9승만 추가하면 ‘역대 최고의 투수’라는 호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의 은퇴 결정. 역시나 매덕스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다.


23년간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수많은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Professor(교수님)’ 그렉 매덕스가 마운드를 떠난다. 팬이나 동료, 심지어 기자들에게까지 존경과 찬사를 받아왔던 전설의 퇴장은 단순한 아쉬움 이상의 아련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은 모든 야구인의 존경을 받을 만한 진정한 영웅입니다.”


// 김홍석(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