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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WBC 준우승, 패배보다 더욱 서글픈 것은...

by 카이져 김홍석 2009. 3. 24.

본은 강했다.

양 팀이 총력을 쏟아 부은 결승전에서 드러난 일본의 저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끈질긴 우리나라의 투수들과 야수들이 위기를 잘 극복해내며 최소 실점으로 막았을 뿐, 이번 대회를 통해 그 위력이 입증된 우리 투수들을 상대로 10회까지 15안타 5볼넷을 얻어낸 일본은 우승을 차지할 자격이 있었다.


추신수의 홈런과 이범호의 9회말 동점타 등 기회를 잘살려 3점을 얻긴 했지만, 5안타 5볼넷에 그친 한국이 이기기는 어려웠다. 양 팀의 수준차가 드러났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경기에서는 일본이 좀 더 좋은 시합을 했다.(X같은 매너 빼고)

너무나도 아쉬운 패배... 지켜보기만 해도 두 주먹을 불끈 쥐어지는 분한 패배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던 우리 선수들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쉬움의 전부는 아니다. 유독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번 결승전이 큰 무대에서 한국이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서 겨룰 수 있는 마지막 경기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06년 제1회 WBC에서 6승 1패로 3위, 2008년 베이징 올림 9전 전승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에서 6승 3패로 준우승.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지난 3번의 큼지막한 대회에서 21승 4패의 월등한 승률로 1~3위까지를 모두 한 번씩 차지했다.(4패는 모두 일본전)

이와 같은 성적이 바로 대한민국 야구의 현주소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그 혜택을 톡톡히 받은 세대들이 국가 대표의 주역으로 성장하면서 한국 야구는 세계무대에서 유래 없는 막강함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이번 대회를 통해 세대교체에 완벽하게 성공했기 때문에, 2013년의 제3회 대회까지는 지금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에 제외된 야구가 2016년 올림픽에서 다시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제4회 WBC에서는?

3년 전 이치로는 “앞으로 30년 동안 한국이 일본을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을 했다가, 한국 팬들의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조만간 이 말은 현실화될 지도 모른다. 그냥 이길 수 없는 정도가 아니다. 30년 후, 아니 당장 10년 후의 한국 야구는 일본 야구와 붙을 수 있는 기회 자체도 얻기 어려운 수준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세계 정상급에 위치한 한국의 야구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줄 수 있는가는 지난 몇 년간 충분히 입증되었다. 하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우리나라의 어린 꿈나무들은 그 싹이 잘리고 있다. 프로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는 동안 그 뿌리가 되어야 할 유소년 야구의 장은 점점 줄어들고만 있는 것이다.

학원 체육의 기본 정책부터가 다른 일본과의 비교는 무의미하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고교 야구팀이 53-4,163개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문제는 그 53개 팀마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현상은 중학교와 초등학교 야구부로 가면 더더욱 심각해진다. 당장 10~15년이 지나면 한국은 선수가 모자라 8개 구단을 유지할 수 없게 되거나, 아니면 리그의 수준 자체가 확연하게 떨어지는 참담한 현실을 맞이해야만 한다.

이건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의 야구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찾아오게 될 필연적인 결말이다.

이번 WBC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5번이나 맞대결을 펼쳤고, 결승에서도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무척 아쉽고 분한 결과다.

하지만 10년 후의 한국 야구는 이러한 분함을 느낄 자격조차 상실하게 될 지도 모른다. 5번이나 맞대결하게 된 이번 WBC를 두고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이라며 비웃어주었지만, 10년 후에는 그랬던 지금을 추억하며 ‘과거의 영광’만 되새김질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오늘의 패배가 더욱 아쉬웠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번이 ‘유일한 찬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안타까운 현실도 싫었고, 그 기회에서의 패전도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야구가 국민들에게 준 기쁨을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민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원해줘야만 한국 야구는 계속해서 세계 정상급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어제(23일) 국회에서 있었던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원과 파워블로거의 간담회에 참석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허구연 해설위원과 대학동창이며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는 정세균 대표로부터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어떤 지방 자치 단체에서 돔구장 건설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면 당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해왔다.(자세한 내용은 따로 포스팅 할 예정)

다음 주에는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과의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다. 내가 참석해서 할 말은 똑같다.

유소년 야구 활성화와 국민체육으로서의 야구 저변 확대, 그리고 돔 구장 건설 등의 인프라 확충. 이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야구로 감동받은 국민들 모두가 함께해주었으면 한다.

지금 보여지는 한국 야구의 선전이, 목숨을 다하기 전에 활활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10년 후는 물론이고 20년이나 30년 후에도 우리나라 야구가 일본에 결코 밀리지 않으며 그들과 대등하게 자웅을 겨루는 모습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 이 글을 보는 독자분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