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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6

시대를 거스르는 한국 야구의 투수분업 시스템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평가받고 있는 트레버 호프만이나 마리아노 리베라는 등판 자체만으로 상대팀의 추격의지를 무력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호프만이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그라운드에 울린 그의 테마음악인 ‘Hells bells’은 말 그대로 상대팀에게는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지옥의 종소리와도 같았다. 이러한 대형 마무리투수들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탁월한 구위 못지않게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오는 꾸준함이다. 1993년 프로에 데뷔한 호프만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16시즌 동안 은퇴할 때까지 줄곧 마무리로 활약해오며 개인통산 601세이브로 역대 기록을 수립했다. 만 42세인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마리아노 리베라가 559세이브로 그 뒤를 추격하고 있다. 대개 1이닝 안에 전력투구로 팀의 승리.. 2011. 4. 22.
일본야구 한국인 5인방, 이 만큼만 하면 돼! 대지진으로 인해 개막이 연기되었던 일본 프로야구가 드디어 오늘(12일) 개막을 맞이한다. 올해의 일본 야구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한국인 선수가 5명이나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중에는 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야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전직 메이저리거’ 박찬호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 5명의 올 시즌 성적은 어느 정도일까? 대략적인 기대치로나마 예상을 해보자. 순서는 나이 순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건 ‘기대치’일 뿐이다. 1. 박찬호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24승(98패)을 거둔 ‘코리안 특급’ 박찬호다. 그의 일본 진출은 ‘도전’이라기 보단 ‘정복’이었으면 하는 것이 한국 팬들의 솔직한 바람이다. 오랜만에 ‘선발투수 박찬호’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 개막전 .. 2011. 4. 12.
야구 한류, 한국 야구의 높아진 위상과 책임감 국내 프로야구 출신으로 일본무대에 진출한 한국 선수 1호는 선동열이었다. 당시만해도 해외진출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고, 한국 선수들에게 일본야구란 그야말로 꿈의 무대와도 같았다. 선동열은 당시 이미 국내무대를 완벽하게 평정하며 ‘국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독보적인 선수였다. 하지만 야심차게 도전한 일본무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니치 유니폼을 입은 선동열은 데뷔 첫해이던 1996시즌 5승 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5.50이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쳤고, 한때 2군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호시노 센이치 주니치 감독은 선동열에게 “그런 식으로 할거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호된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선동열은 이후 이를 악물고 절치부심하여 이듬해 일본무대 최고의 마무리투.. 2011. 2. 27.
임창용, 일본야구의 전설을 향해 야쿠르트의 ‘수호신’ 임창용은 일본무대에 진출한 모든 한국인 선수들의 롤모델이라고 할만하다. 국내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이미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평가 받았던 임창용이지만, 사실 일본으로 처음 진출하던 시기에는 하향세를 걷던 시점이었다. 임창용에 앞선 일본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다른 선수들처럼 한창 전성기를 호령하던 시기도 아니었고, 오히려 국내에서는 “한물간 선수가 무슨 해외진출이냐”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임창용은 특유의 오기와 승부근성 하나로 잡초처럼 부활했다. 난다 긴다 하던 선배들도 고전했던 일본무대 첫해 징크스를 보란 듯이 날려버리며 야쿠트르의 수호신으로 거듭났고, 지난 3년 내내 이렇다 할 슬럼프 없이 톱클래스의 활약을 선보이며 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평가 받고 있다. 일.. 2011.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