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2일 사직구장에서 펼쳐졌던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올 시즌 첫 번째 퇴장 명령이 내려졌다. 한화 투수 이동걸이 5회 말 황재균에게 3구 연속 고의성 짙은 몸 쪽 공을 던지다가 끝내는 몸에 맞췄기 때문이다.
4회에 이어 또 다시 몸에 맞은 황재균은 헬멧을 던지고 마운드 쪽을 행했고, 그 순간 양팀 선수들도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 나왔다. 다행히 더 이상의 불미스런 일이 없이 상황이 정리됐지만, 이동걸은 빈볼을 던졌다는 이유로 퇴장당하고 말았다.
황재균은 왜 빈볼의 표적이 되었을까? 황재균은 이 경기의 1회 말 공격 당시 7-0으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루를 감행했다. 타자일순 하며 대량득점에 성공한 후였고, 한화 야수들 역시 전혀 도루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2회에 2타점 2루타를 때린 황재균은 4회에는 상대 투수 김민우의 몸에 맞는 볼로 출루했다. 그리고 5회에는 빈볼성 공에 또 한 번 얻어맞았다.
점수 차가 큰 상황에서 도루를 시도한 것이 한화 선수단을 자극했던 것일까? 실제로 롯데는 양 팀간의 시즌 1차전인 10일 경기에서도 6점 차로 앞선 상황에서 희생번트를 시도하고 도루를 했었다. 1차전에서 도루를 성공시킨 선수도 바로 황재균이었다. 어쩌면 묵은 앙금이 3차전 경기에서 폭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일련의 과정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건 김성근 한화 감독이다. 일부 팬들은 ‘어떻게 김성근 감독이 지휘하는 팀에서 그런 빈볼을 던질 수 있느냐’며 의아해하고 있다. 저 두 경기에서 롯데가 보여준 야구야말로 평소 김성근 감독의 야구 철학을 잘 대변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과거 SK를 지휘하던 시절 인터뷰를 통해 “5점 차 이상으로 리드하고 있어도 팀 사정에 따라 도루나 번트 같은 전술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다른 감독들도 그런 전술을 구사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런 전술, 즉 큰 점수 차가 났을 때 도루나 번트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 야구계에서 환영 받을 수 없는 방식임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불문율’이라 불리는 그런 관행보다 최선을 다해 팀 승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인물이다.
또한, 김성근 감독은 상대 팀이 그런 작전을 실행했을 때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좀 더 철저하게 승리를 추구하는 방식인 만큼, 상대가 그런 플레이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방심하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 철학이 잘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러한 김성근 감독의 야구관이 부정당했다. 상대 팀인 롯데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야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빈볼까지 던진 건 다름 아닌 김성근 감독이 현재 지휘하고 있는 한화 선수들이었다.
김성근 감독의 말대로라면 점수 차에 관계 없이 한 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번트와 도루를 지시한 이종운 감독은 ‘용기 있는 사령탑’이고, 도루를 시도한 황재균은 ‘용기 있는 선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황재균은 그 용기 있는 플레이로 인해 보복성 빈볼을 맞았다. 그것도 두 타석 연속으로.
6~7점 차 상황에서 이종운 감독이 번트를 지시하고 황재균이 도루를 시도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지휘를 받고 있는 선수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자기네 감독의 야구 철학이 아주 잘 반영된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불쾌함을 느껴 빈볼을 던졌고, 그 결과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졌다. 이보다 더 지독한 역설이 또 어디 있을까?
어쩌면 한화 선수들의 빈볼은 롯데 이종운 감독이나 황재균보다 김성근 감독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자신을 지도하는 감독의 야구를 정면으로 부정한 셈 아닌가.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iSportsKorea, 제공된 사진은 스포츠코리아와 정식계약을 통해 사용 중이며, 무단 전재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