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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ports

박태환은 대체 왜 수영을 하고 있는 걸까요?

by 카이져 김홍석 2009. 7. 29.

재수 없을지 몰라도 제 자랑을 하면서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돌 던지지 마시길...ㅋ)

중학교에 입학한 후 치른 첫 시험에서 저는 전교 2등을 했습니다(640명 중에).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였기에 스스로도 뿌듯했고, 부모님께서도 엄청 기뻐하셨죠.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앞으로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두 번째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교에서 20등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제가 좀 순진했거든요(ㅋㅋ 씨익...). ‘You are a boy’라는 문장에서 ‘You’가 들어가는 자리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거기에 들어가야 할 단어를 답안지에 적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다 보니 그런 수준의 문제가 10문제는 넘었던 것 같네요.

문장에는 당연히 첫 글자가 대문자인 ‘You’가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답안지에는 그 ‘문장’이 아니라 ‘단어’만 적는 것이었죠. 단어만 적을 때는 소문자로 적어야 한다고 알고 있었던 저는 ‘답안지에 답을 적는다는 이유’ 때문에 답을 ‘you’라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문장 첫 단어에 밑줄 그어진 문제가 6문제더군요.

냉정한 영어 선생님은 그 문제를 전부 틀렸다고 채점을 하셨습니다. 만약 그 6문제가 모두 정답처리 되었다면 전 그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을 겁니다.(자랑이 좀 긴가요?^^;)

하지만... 내심 자기 반에서 1등이 나올 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담임선생님은 저를 야단치시더군요. 그것도 몰랐냐고... 저희 어머니께서도 한 마디 하셨습니다. “병신아... 나가 죽어라”

전 3번째 시험에서 정확하게 63등을 했습니다. 그 후 두 번 다시 제 성적이 최상위권으로 올라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전 항상 적당한 선에서 공부를 마무리 짓고 놀러 다녔으니까요. 열심히 한 결과가 주위로부터 욕을 얻어먹을 뿐이라면, 전 그 딴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박태환이 왜 지금 수영을 하고 있는 지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였다면 작년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마자 당장 수영을 때려치웠을 겁니다.(저였다면 연예인이...ㅋ)

사람들은 냉정하죠. 그리고 용서란 걸 모릅니다. 자신들은 ‘배부른 돼지’가 되길 원하면서, 유명인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강요하죠. 한 번 1등은 영원한 1등이어야 하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칼보다 날카로운 비난의 단어들뿐입니다.

박태환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1등이었죠. 이제는 1등을 해야만 그 위치가 유지됩니다. 그 이하는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죠.

박태환이 예선 탈락이 아닌 3위 정도를 차지했다면 상황이 달랐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3등을 했어도 언론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을 테고,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음을 이유삼아 박태환과 그 주변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렸겠죠.

운동선수가 돈을 벌면 안 되나요? 운동선수는 광고 찍으면 안 돼요?

박태환이나 김연아가 나중에 연예인이 된다고 하면 전 박수쳐줄 겁니다.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고 의지인 이상 그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금메달 대신 돈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쉽긴 하겠지요, 하지만 저의 아쉬움이 그들의 앞날을 책임져줄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당당하게 하루하루를 살 권리가 있는 인격체들입니다.

박태환은 수영을 잘하니까, 계속 수영으로 국민들을 기쁘게 해줘야 한다구요?

대체 그 따위 논리는 어디서 비롯된 거죠? 왜 그가 그래야 하나요? 그런 식이라면 개인의 성향이나 바람 따위는 싸그리 무시한 채, 재능과 적성검사를 통해서 아주 효율적으로 모두의 직업을 정해주면 되겠네요.

적성검사 결과 군인이 적성에 맞다고 나온 사람은 본인이 싫든 말든 무조건 군대에 처박아버리고, 아이큐가 좋으면 아들이 아무리 피아노를 치고 싶다 하더라도 무조건 과학고에 보내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성격이 자선사업에 어울린다면 그는 평생 남을 위해 살다가 굶어죽으면 되겠군요.

참 편리하군요. 그렇죠?

전담팀이 문제라구요? 왜요?

박태환 스스로가 그렇게 선택했다면, 대체 그걸 누가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들이 박태환을 키웠나요? 그에게 천원짜리 한 장 쥐어준 적 있습니까?

그는 세금으로 나오는 연금을 받으니까 당신들은 비난할 자격이 있다구요?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은 작년 올림픽을 보면서 박태환 덕분에 더할 나위 없는 희열을 느끼지 않았던가요? 그럼 쌤쌤이네요.

“스스로 뒤돌아보아 잘못이 없다면, 천만인이 가로막아도 나는 그 길을 가리라!!”

제 좌우명입니다.

박태환이 스스로 돌이켜보아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면 그건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예선 탈락의 아픔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도 자기 자신이고, 거기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가 져야 합니다. 그 책임은 누군가가 억지로 지워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느껴야 합니다.

스스로 그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쉽게도 그는 더 이상 수영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겠지요. 물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가 만인의 지탄을 받고 비난 받아야 할 이유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비난이라는 건 ‘적어도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일에 대해 대신 책임져 줄 수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은 단 1년 만이라도 박태환 만큼 노력한 적 있나요? 수영 금메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을 말하는 겁니다. 그의 훈련 모습이 올림픽을 전후해 계속해서 방송을 통해 비춰졌죠. 그걸 보면서 전 “난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 한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노력해보지도 않은 숱한 군상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던 한 사람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구역질이 날 뿐입니다. 지금은 잠시 그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가 언젠가 다시금 자신의 목표를 직시하기 시작했을 때, 그를 비난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사람들은 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연탄재 함부로 걷어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한 유명한 문학가의 말이죠.

지금 당신들은 한 때 당신들을 뜨겁게 해줬던 연탄이 다 타버려서 재가 되었다는 이유로 걷어차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 시원하신가요? 남는 것은 그 연탄재를 걷어찬 당신들 머리 위로 뒤덮이는 재와 먼지, 그리고 콜록거리는 기침뿐입니다. 정말 꼴 좋군요...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