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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커트 쉴링, 명예롭게 은퇴를 선언하길...

by 카이져 김홍석 2008. 2. 13.

보스턴 레드삭스 커트 쉴링이 선수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오른 어깨의 부상으로 인해 최소한 전반기를 뛰지 못할 것으로 보이며, 재활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무엇보다 부상이 드러난 과정과 그 이후의 행보가 그다지 순탄하지 못하다. 일각에서는 ‘쉴링이 800만 달러에 눈이 멀어 양심을 저버렸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런 의심까지 받는 이유는 쉴링의 평소 성격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04년도 리그 챔피언십에서 쉴링이 보여준 핏빛 투혼 때문에 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은 편이지만, 그라운드 밖에서의 쉴링은 그런 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커트 쉴링의 별명은 ‘떠벌이’다. 야구장 안과 바깥에서의 일을 쉴 틈 없이 언론에 흘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항상 그가 지나간 팀과 그 동료들은 나중에 쉴링의 입방정에 의해 뒤통수를 맞곤 했다. 특유의 거만함 때문에 선수들이 배리 본즈를 싫어한다면, 커트 쉴링 역시도 이러한 위선적인 면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선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쉴링은 매우 정치적이며 언론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난해 11월 그와 보스턴의 재계약 과정에서도 매우 잘 드러났다.


쉴링은 2007년을 끝으로 보스턴과의 계약이 종료되는 상황이었다. 이미 2007년 2월에 팀에 연장 계약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던 그는 보스턴과의 재계약이냐 아니면 새로운 팀을 찾느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다시 한 번 언론을 이용한다.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이틀 만에 그는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내가 내년에도 보스턴에 몸담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곧바로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FA를 선언했을 때 가고 싶은 13팀의 명단을 공개했다. FA를 선언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에이전트도 아닌 선수 개인의 이러한 움직임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보스턴의 지역 팬들은 2004년 86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구어냈던 1등 공신 쉴링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있던 상황이었고, 쉴링의 이러한 움직임이 전파를 타고 알려지자마자 당장 보스턴 팬포럼에는 ‘쉴링과 재계약하라’라는 팬들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꼭 그 때문이라고 할 순 없겠으나, 결국 테오 엡스타인 보스턴 단장은 쉴링이 FA를 선언하기 전에 1년간 800만 달러(옵션 600만)의 조건으로 쉴링을 붙잡았다. FA를 선언한다면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팀과 계약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800만 달러만 보장된 금액에 사인을 한 것은 내심 쉴링이 보스턴에 그대로 남고 싶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라디오와 블로그를 통한 그의 말에 담긴 속뜻은 ‘나는 보스턴에 남고 싶다’였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쉴링에게 보장된 800만 불의 금액은 지나치게 헐값이었다. 보스턴은 “2007년만큼 주면(1300만) 재계약하겠다”던 당초 쉴링의 제안을 거절했었지만, FA를 선언하면 그 정도 금액에 2년 계약 정도는 보장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돈을 받고 잔류를 결정한 마당이라 당시에는 ‘역시 쉴링은 의리파라서 돈을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보스턴 팬들의 찬사가 이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음이 지금에 와서 드러난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와 계약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의료진에게 검사를 받게 되어 있다. 이 때 보스턴 의료진은 그와 재계약 하지 않을 것을 권유했지만 결국 계약은 이루어졌다. 그 대신 보장되는 기본 연봉이 800만 달러로 낮아졌고, 무려 600만 달러에 달하는 옵션 조항이 추가된 것이다.


쉴링의 옵션에는 투구이닝과 체중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130이닝부터 매 10이닝 마다 375,000달러를 받게 돼 200이닝을 소화하면 3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게 된다. 그리고 6번의 체중 검사를 해 모두 기준치 이하가 나왔을 때는 각각 33만 달러씩 도합 2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만큼 보스턴은 쉴링의 건강상태를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쉴링은 이미 작년 포스트 시즌부터 등판 여부가 언론을 통해 이슈화 될 정도로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보스턴 구단의 의료진이 만류했을 정도라면, 다른 어떤 팀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그 당시의 쉴링이 타 팀의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렇다면 그 어떠한 계약도 소용이 없다.


이토록 부상의 위험이 큰 쉴링에게 고액 연봉에 대한 보험조차 들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들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들지 못한 것일 가능성도 크다. 매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선수를 위해 어떤 회사가 그 많은 연봉에 대한 보험을 들어주겠는가.


하지만 일각에서 의심을 품는 것처럼 쉴링이 부상 여부를 숨기고 계약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지난 4년간 함께 한 보스턴의 의료진이 이를 모랐을 리가 없다. 지금 드러난 쉴링의 어깨부상은 재계약 후 더욱 심각해 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번 사건은 구단과 선수의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것이 구단과 쉴링이 동시에 하고 있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현재 쉴링은 최소한 전반기를 뛸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지금 구단의 방침에 따라 시작한 재활 치료가 성공했을 경우다. 쉴링의 주치의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어떠한 운동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재활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말이다.


쉴링이 처음부터 돈을 보고 보스턴에 남은 것은 아닐 것으로 본다. 하지만 지금 쉴링이 수술을 하지 않고 재활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800만 불을 받기 위해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수술을 집도한 적이 있는 주치의가 저렇게 말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굳이 재활을 하겠다는 것은 그 외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42살인 쉴링의 재기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며, 당장 올해 그는 ‘먹튀’의 대열에 합류하고 만다. 무엇보다 수술은 계약 파기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재활은 다르다.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팬들에게 줄 수도 있으며 연봉과 재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구단이 감당하게 된다.


주치의의 말이 사실이라면 쉴링은 현재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어쩔 수 없는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구단과 쉴링이 재활 치료를 고집하는 것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취한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프로라면 가능성이 보일 때 최선을 다해 재기를 꿈꾸는 모습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쉴링이 처한 상황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키스 폴크는 지난해에 보장되어 있던 500만 달러를 스스로 포기하고 재활 치료에 전념한 후 올 시즌 70만 달러의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다시 돌아왔다. 쉴링에게도 그러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구장 밖에서는 어땠건 그라운드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믿음직하고 멋있었던 커트 쉴링. 어쩌면 지금이 바로 좋은 기억만을 남긴 채 아름답게 퇴장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인지도 모른다. 이미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그가 800만 달러 때문에 구단과의 법정 분쟁에 돌입하거나, 다른 구설수에 휘말리는 추한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에 앞서 쉴링이 모든 미련을 버리고 깨끗하게 은퇴를 선언하기를 바래본다. 이번 스토브리그를 통해 망가진 영웅은 로저 클레멘스 한 명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