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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선동렬과 박찬호의 비교?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2. 26.

요즘 다음 블로거 뉴스 스포츠 파트에서 한창 주가를 높이고 계신 윤석구님께서 야구계의 10년 묶은 뜨거운 떡밥을 던지셨군요. 선동렬, 우린 그에게 얼마나 관대했나?라는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선동렬과 박찬호를 비교 대상으로 글을 쓰신 것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이 글이 스포츠 서울 메인화면에 뜨면서 조회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댓글의 양상도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군요. 이왕 거대한 떡밥이 미끼로 던져진 마당이니, 덥석 한번 물어 볼랍니다. 개인적으로 이래도 될만큼 석구님과 충분한 친분이 있는 관계입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갑니다.(참고로 한국 프로야구 전문인 석구님이 선동렬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가신 관계로, 메이저리그 전공인 저는 박찬호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볼랍니다.)


선동렬 vs 박찬호


선동렬이 독보적으로 군림하던 시절을 지난 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끊임없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토론의 쟁점이자 논쟁의 중심이다. 거기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생각도 없고, 100% 확실한 답을 내놓을 자신도 없다. 공감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름대로의 생각을 전개해 보려한다. 다만, ‘이런 쓸데없는 비교는 왜하냐?’라는 말을 하려는 이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윈도우 창을 닫아주기 바란다.



1. 구위


두 선수의 구위에 대한 평가가 참으로 많이 엇갈린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구위의 측면에서는 두 말할 것 없는 박찬호의 압승이다. 로케이션과 커맨드를 제외한 단순한 구위의 측면에서의 비교라면 두 선수 간에는 꽤나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선동렬의 주 무기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그리고 일본시절에 새로이 익힌 반포크볼이다. 손가락이 비교적 짧았기 때문에 완전한 포크가 아닌 반포크볼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가 구사할 수 있는 구질은 이 정도가 전부다.


혹자는 “그것만으로도 한국에서 그의 공을 건드릴 수 있는 타자가 없었는데, 다른 구질이 왜 필요한가?” 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손가락 길이로는 그 외의 구질을 익힐 수 없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손가락 길이는 투수에게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며, 특히 변화구의 경우 마지막에 손가락으로 잡아채주는 것이 공의 위력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흔히들 선동렬의 슬라이더를 존 스몰츠의 그것과 비교해 선동렬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스몰츠급의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도 꽤나 많았다. 하지만 선동렬과 스몰츠는 패스트볼 구속부터 시작해서 슬라이더의 구속이 전혀 다르다. 그 각도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프란시스코 리리아노의 슬라이더를 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수술 전 스몰츠의 슬라이더의 위력이 바로 그와 같았으니까.


그럼 박찬호는 어떠할까? 선동렬 보다 평균 5마일(약 8킬로) 이상 빠른 패스트볼 구속도 그렇지만, 그의 투심의 위력은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었다. 또한 당시 박찬호의 커브를 ‘슬러브’라고 불렀던 기억이 날것이다. 당시 박찬호가 던졌던 것은 커브다. 그 커브가 종적인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횡적인 예리함까지도 겸비하고 있었기에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들 역시도 그 공이 슬라이더인지 커브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래 단락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박찬호는 완성된 투수라 불리기에는 크나큰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성기 5년(97~01)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평균 15승에 3점대 방어율(75승 3.79)을 기록했던 투수다. 결점을 안고도 이 정도 성적이라니, 그 구위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평균 15승에 3점대 방어율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하다고? 올해를 포함해 최근 5년 동안 그와 같은 성적을 거둔 선수는 메이저리그에 단 3명(요한 산타나, 로이 오스왈트, 카를로스 잠브라노)뿐이다.



2. 투수로서의 완성도


이 부분은 역시나 선동렬의 완승이다. 선동렬은 모든 면을 겸비한 완성된 투수였다. 단지 구위와 제구력, 경기를 이끌어가는 능력만이 아니라, 숨 막히는 접전 속에서도 자신의 공을 믿고 포수 미트 한 가운데로 패스트볼을 찔러 넣을 수 있는 대범함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박찬호가 감히 따라갈 수 없었던, 아니 근접조차 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만약 박찬호가 선동렬의 이러한 면까지 갖추고 있었더라면 아마도 랜디 존슨의 사이영상 4연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2스트라이크가 되면 포수는 타자 바깥쪽으로 포수 미트를 쭉 뻗으면 된다. 그럼 박찬호의 공은 그곳으로 들어온다.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십분 활용하기에는 2% 부족했던 박찬호였다. 그것이 많은 팬들을 아쉽게 만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힐만한 투수로 꼽혔던 그의 전성기가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구위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반증하는 것일테니까.


얼마전 kini님의 글 주형광 그리고 투수들의 전성기라는 글을 보면서 투수라는 보직의 전성기가 얼마나 짧은 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한국 프로야구를 토대로 한 것이지만, 박찬호 역시 한국인. 전성기 외의 기간이 너무 초라하긴 했어도, 화려하게 불탔던 그 몇 년 동안 박찬호는 확실히 대단했다.



3. 양 리그의 비교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선동렬이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성적 자체가 ‘태양’에 비견될 만큼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한국 언론에서는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와 자주 비교 하기는 했지만, 둘의 성적은 꽤나 큰 차이를 보인다. 세이브 개수부터 방어율에 이르기까지 사사키는 모든 면에서 선동렬을 능가했었다. 그것도 가볍게. 선동렬이 일본에서 5.50-1.28-1.48-2.61의 방어율을 기록하는 동안 사사키는 2.90-0.90-0.64-1.93을 기록했다.


물론 선동렬이 일본에 진출한 것은 33살이 된 후였다. 조금 더 일찍 일본 리그에 진출했다면 그 양상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사키는 이후 32살이 되던 2000년에 시애틀 매리너스로 진출해 4년간 129세이브 3.14의 방어율을 남겼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의 마무리로 활약했던 것이다. 같은 나이대의 선동렬과 사사키를 거의 동급이라고 가정한다면 선동렬이 30대 초반에 메이져리그에 진출했다면 이와 비슷한 활약을 펼쳤을 것이라는 예상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이러한 간접비교로는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가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적어도 류현진이나 오승환 정도의 투수들이 20대 중반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면 그 후에야 어느 정도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막연하게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 리그의 비교는 리그 전체를 두고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개개인의 능력과 그 성향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치로가 일본출신 최고의 선수인 듯이 알려져 있지만,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이치로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선수는 다름 아닌 마쓰이 가즈오다. 정확도, 파워, 스피드 모든 면을 갖춘 가즈오는 이치로보다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치로는 최고의 교타자로서 입지를 굳힌 반면, 가즈오는 이제야 자기 자리를 찾았다.


사람은 제각각 특색과 성향이 다르다. 시험을 칠 때도 난이도에 관계없이 항상 7~80점을 받는 학생이 있는 반면, 난이도에 따라서 100점과 50점을 넘나드는 학생도 있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박찬호는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심리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박찬호는 아마 일본이나 한국 리그에서 뛰었다고 하더라도 선동렬처럼 20승에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할 정도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선동렬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100점 만점에 150점을 받은 선수다. 일본에서도 사사키에 미치지 못했을 뿐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그런 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몇 점을 얻을 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50점이 될지, 아니면 90점이 될 지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결론)

굳이 결론을 내려 보자면 선동렬이 대학 진학 당시에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더라면 정말로 존 스몰츠 급의 투수가 되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토록 혹사를 당하고 난 후라면 힘들지 않았을까. 특히 주니치 드래곤즈에 진출할 그 시기에 미국에 진출했다면 선동렬은 쓴맛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서는 반포크볼의 개발로 극복해 냈지만, 미국에서는 그 정도 종적인 변화로는 타자들을 속일 수 없다. 다들 알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150킬로에 달하는 싱커가 난무하는 곳이다. 이미 새로운 구질을 만들어 내기에는 그 당시는 이미 늦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금 애매하게 되어버렸지만, 결국 개인적인 생각에서의 결론은 이렇다.

첫째, 박찬호가 한국 리그에 있었다 하더라도 선동렬만큼 위대한 투수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둘째, 마찬가지로 선동렬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더라도 박찬호만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최전성기 시절의 둘의 실력을 놓고 비교하면 누가 더 뛰어나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박찬호다. 둘은 나이에서 10살 차이가 난다. 10년 이면 강산이 변할 시간, 야구라고 해서 발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베이브 루스가 지금 이 시대에 그 ‘재능’이 아닌 ‘실력’만 가지고 환생한다면 마이너리거로 선수생활을 마감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