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2007년도 한국 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 후보가 발표되었다. 오랜만에 그와 관련해서 한국 프로야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거의 확정적으로 보이는 투수 부문의 다니엘 리오스를 비롯하여 각 포지션에서 경합을 벌일 46명의 후보들, 이들 중 10명이 2007년을 빛낸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로 뽑히게 된다.
메이저리그의 골드 글러브와 한국 프로야구의 골든 글러브는 완전히 다르다. 요즘 들어 그 본래의 의미가 조금씩 퇴색되어 간다는 비판도 있지만, 메이저리그의 골드 글러브는 어디까지나 수비를 중심으로 주어지는 상이다. 반면 한국의 골든 글러브는 투타에 걸쳐 한 시즌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인 선수들에게 주어진다.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는 사이영상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으며, 야수들의 경우는 실버 슬러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명단과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본 결과 이번 시즌의 골든 글러브 수상자 선정에서 가장 각축을 벌일 것으로 보이는 포지션은 3루수 부문, 타율-최다안타 1위에 빛나는 KIA 타이거즈의 이현곤과 출루율 1위를 비롯해 타격 전부문에서 골고루 상위권에 랭크된 두산 베어스의 김동주의 대결이다.
골든 글러브는 올 한 해 동안 직접 프로야구를 취재한 기자단을 비롯해, 프로야구 중계 방송사의 PD와 아나운서, 해설위원 등 언론관계자 418명에 의한 인터넷 투표로 그 수상자가 가려진다. 투표 기간은 11월 29일부터 12월 7일까지의 9일간, 시상식은 12월 11일에 열린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번 투표의 결과가 현 한국 프로야구와 그를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필자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로 김동주가 선정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아래는 두 선수의 올 시즌 성적이다.
|
안타 |
2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이현곤 |
153 |
31 |
2 |
48 |
63 |
4(2) |
43 |
61 |
0.338 |
0.393 |
0.419 |
김동주 |
123 |
24 |
19 |
78 |
68 |
11(2) |
83 |
55 |
0.322 |
0.457 |
0.534 |
이현곤이 김동주에 비해 앞서는 것은 최다안타와 타율뿐이다. 홈런, 타점, 득점, 볼넷 모두 김동주가 앞서고 삼진은 더 적으며 심지어 도루까지도 이현곤이 뒤진다. 출루율은 6푼 이상이 차이가 나며 장타율 차이는 1할이 넘는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것으로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타자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서 중요한 척도로 여겨지는 OPS의 차이는 1할 8푼에 가깝다. 이 정도 차이면 메이저리그에서는 비교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의문스럽게도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타이틀 홀더’라는 점이 대단한 강점으로 작용한다. 그것도 필요이상으로 타율과 최다 안타 부문을 중요시여기고 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타율 1위를 ‘타격왕’이라 칭하며 그 업적을 칭송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 상황을 돌이켜봤을 때 한참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타율과 출루율 중 어느 지표가 더 중요한가? 라는 질문에 대한 현대 야구의 대답은 출루율이다. 게다가 30개나 되는 타점의 차이는 굉장히 큰 것이다. 지난 9월 미국의 스포츠 전문 사이트 SI.com 에서는 현역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어떤 스탯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의 설문을 조사한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은 타점이 41%로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고 출루율(19%)과 타율(13%), OPS(11%) 등이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타율 1위=타격왕’의 공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이번 MVP 후보에 ‘더 중요한 타이틀 1위 선수’ 라는 이유로 김동주는 제외한 채 이현곤만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리오스에 이어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참으로 씁쓸한 결과였다.
이번 골든 글러브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
안타 |
2루타 |
3루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이치로 |
262 |
24 |
5 |
8 |
60 |
101 |
36(11) |
49 |
63 |
0.372 |
0.414 |
0.455 |
게레로 |
206 |
39 |
2 |
39 |
126 |
124 |
15(3) |
52 |
74 |
0.337 |
0.391 |
0.598 |
셰필드 |
166 |
30 |
1 |
36 |
121 |
117 |
5(6) |
92 |
83 |
0.290 |
0.393 |
0.534 |
매니 |
175 |
44 |
0 |
43 |
130 |
108 |
2(4) |
82 |
124 |
0.308 |
0.397 |
0.613 |
위는 이치로와 블라드미르 게레로, 게리 셰필드, 매니 라미레즈의 2004년도의 정규시즌 성적이다. 2001년에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이치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루키 시즌과 올 2007년에 실버 슬러거를 수상하는 기쁨을 맛봤다. 2001년에는 그가 불러온 돌풍이 워낙 거셌고, 올해에는 전반적인 장타력의 하락속에서 타율 2위를 차지한 이치로가 여타 선수들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외야 3자리 중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조지 시즐러의 단일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경신하며 타율 1위에 올랐던 2004년에는 아래의 세 선수 때문에 실버 슬러거를 놓치고 말았다. 걔 중에는 안타 수에서 100개 가량, 타율에서 8푼 이상 차이를 보이는 게리 셰필드도 포함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타자가 지향하는 바가 ‘득점의 생산력’이라면 타율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표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현곤이 김동주에 비해서 타점이 적은 것은 그가 중심 타선에 들어선 경기가 67경기에 불과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에 대한 변호를 해 줄 수는 없다. 시상이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와 그 공헌도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 야구관련 커뮤니티와 게시판에서도 두 선수 중 누가 골든 글러브의 주인공이 될까를 놓고 토론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각종 타자 스탯의 지표를 근거로 양 선수의 우위를 주장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박찬호를 통해 메이저리그를 접하게 되면서 근 10년간 한국 야구팬들의 수준과 눈높이가 상당히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팬들의 시각은 무척이나 날카롭다.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야구 관계자들의 시각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서야 말이 안 된다. 2007년의 골든 글러브 시상식장에서 황금 장갑을 높이 들고서 환하게 웃는 김동주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