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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WBC 결승, ‘전범’ 찾고 ‘심판 탓’하면 뭐가 달라지나?

by 카이져 김홍석 2009. 3. 25.

우리나라가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결승전에서 일본에게 패하며 눈앞까지 다가왔던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당한 너무나도 아쉬운 5-3패배. 하지만 당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4강은 힘들 것’이라던 예상 속에서 이루어낸 준우승은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가치 있다.

하지만 결승전의 상대가 일본이었기 때문일까. 야구와 관련된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나 포털 사이트의 댓글에는 욕설과 비방만이 가득하다. 물론 어처구니없는 경기 매너를 보여준 일본의 우승이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패전의 이유를 억지로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모습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 임창용과 강민호가 전범?

결승전이 끝난 후, 비록 패하긴 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한국 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의 경우도 볼 수 있었다. 패전의 이유를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 돌리는 네티즌들도 상당수 있었기 때문.

결코 적지 않은 수의 네티즌들이 10회초 이치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다가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한 임창용과 강민호 배터리를 ‘전범(戰犯)’이라 표현하며 비난하는 모습을 포털 사이트의 댓글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준결승까지 한국 대표팀의 뒷문을 지켰던 임창용과 지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인 강민호가 순식간에 일부 네티즌에 의해 ‘역적’이 되고만 것이다.

반드시 이겨야하는, 아니 반드시 이기고 싶은 한-일전이었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일부 팬들의 모습에서는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경기가 끝난 후 배터리와의 사인이 맞지 않았다는 김인식 감독의 인터뷰가 보도되자, 이번에는 김인식 감독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선수들을 감싸줘야 할 감독이 패전의 원인을 선수들에게 돌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필이면 일본에게 우승 트로피를 넘겨줬다는 점에서 느끼게 되는 상실감과 아쉬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든 김인식 감독을 비난하고 군말 한 번 없이 열심히 해온 선수들을 전범 취급하는 이들을 과연 ‘팬’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진정 한국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했던 팬들이라면, 감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열심히 한 선수들을 전범이라 표현하는 그들이 원했던 것은 ‘한국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승리’ 혹은 ‘만족감’이 아니었을까.

▶ 패배는 무조건 심판 탓?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또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심판들의 편파 판정’과 ‘일본의 로비 의혹’이었다. 언제나 그렇다. 이들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지는 것은 절대로 선수들의 잘못이 아니다. 상대가 잘해서도 아니다. 항상 그 이면에는 은밀한 거래가 있고, 심판들에 의한 억울한 판정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핑계를 대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치졸한 ‘자기 위안’ 외에 더 무엇이 있단 말인가.

가장 말이 많은 것은 결승전에서 2루 심판을 맡았던 론 쿨파에 대한 편파 판정 의혹이다. 5회 고영민이 좌전 안타를 치고 2루까지 내달리다 아웃 되었던 것과 6회 이용규의 도루실패 판정은 명백한 오심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리플레이 화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플레이 모두 엄밀히 따지면 세이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쿨파를 향해 ‘돈을 받았다’느니 ‘편파 판정 때문에 졌다’는 등의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있었던 3회 무사 1,2루 상황에서 조지마 겐지의 3루 땅볼 때 1루 주자 아오키가 2루에서 아웃된 것도 리플레이상으로는 명백한 세이프였다. 시합을 중계하던 국내 방송사의 캐스터와 해설자는 재생된 화면이 나오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7회 초 또다시 조지마의 땅볼 타구 때 1루에서의 세이프 여부와 관계없이 나카지마의 ‘수비방해’를 선언한 것은 2루심이었다. 더욱이 그 당시 1루심은 2루심의 수비방해 판정이 있기 전에 이미 1루에서 조지마의 아웃을 선언했다. 리플레이 화면을 보면 세이프를 선언해도 될 정도로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정식 룰은 아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실질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과정 아웃’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수비수들이 좋은 수비를 보였을 때는 이왕이면 아웃 판정을, 반대로 엄밀하게 따지면 아웃이라 하더라도 과정이 나빴을 때는 세이프를 선언하곤 한다. 결승전에서도 그러한 메이저리그 심판들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났을 뿐이다.

2루심이 고영민과 이용규의 플레이가 아웃으로 판정한 것은 좌익수 우치카와의 수비와 포수 조지마의 송구가 좋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오키와 조지마가 아웃 판정을 받은 것도 3루수 이범호와 2루수 고영민의 수비가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2루수 론 쿨파는 결과적으로 일본에게 두 번, 한국에게 두 번씩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 딱히 편파 판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주심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주심을 맡은 데럴 코신스 심판의 볼 판정은 시합 내내 들쑥날쑥하긴 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심판의 자질’과 ‘역량’을 의심할지언정, 편파판정이라고 할 정도의 무언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 매너에서 이긴 선수들, 하지만 팬들은...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은 시합에는 졌지만 매너에서는 이겼다. 나카지마의 어이없는 슬라이딩이나 과하다 싶은 2루 블로킹에도 우리 선수들은 태연하게 대처했다. 오히려 9회말 동점을 만드는 등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며, 일본 선수들의 기를 질리게 만들었다. 매너에서 확실히 한 수 위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기에서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일부 팬들은 그렇지 못했다. 게시판마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때로 그것은 일본 선수나 심판이 아닌 우리나라 선수와 감독을 향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결승에서 졌지만 준우승을 차지한 대표팀은 가슴을 활짝 펴고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응원하던 일부 팬들은 익명의 공간에서 ‘악플’이라는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그래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본이 우승, 한국이 준우승이라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는 것은 쓸쓸한 자기위안 뿐이다.

팬들이 해야 할 일은 지금의 패배를 잊지 않고, 선수들이 다음에는 승리할 수 있도록 더욱 큰 성원을 보내주는 것이지, 패전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순간적인 만족감에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글을 남기고 있는 이들이 진정 야구팬이라면, 그럴 시간에 잘한 선수들에 대해 한 번 더 박수쳐주고, 한 번 더 칭찬해주는 것이 어떨까. 아니면 야구장으로 달려가 시범경기를 관람하며 선수들을 응원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지난 20일 동안 전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대표팀을 위하는 일이다.

<이 글은 야구타임스(Yagootimes.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