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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재기가 기대되는 이유?

by 카이져 김홍석 2007. 8. 30.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다. 한 시대를 지배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최고의 에이스의 복귀라 관심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현지 언론들도 페드로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기울이며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페드로가 복귀한다고 해도 그가 예전만큼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시험차 등판한 4번의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그의 직구 구속은 단 한번도 90마일(145km)을 넘기지 못했다.


현지에서는 ‘외계인’이라 불리며 한국에서는 ‘지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부활은 과연 가능할까? 우선 전혀 엉뚱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한다.


▷ 스프링 캠프와 시범경기 성적

기본적으로 메이저리그는 우리나라와 훈련 체계가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경우 동계 전지  훈련 때 얼마나 땀을 흘렸느냐가 다음해 팀의 성적을 결정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러한 논리는 빅리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아니, 통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사고방식은 선수 생명을 갉아먹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윈터리그에 참여하는 등의 예외적인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베테랑 투수들은 시즌이 끝나면 그 다음해 2월 스프링 캠프가 시작될 때까지 공을 던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 LA 다져스로 이적한 데이빗 웰스(통산 236승 - 현역 6위) 같은 경우는 간단한 기초 체력만 간간히 할 뿐 공에는 손도 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깨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예정보다 일찍 어깨가 풀리면 오히려 시즌 후반에 체력 저하로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 최고 100마일(161km)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도 스프링 캠프가 진행될 때의 평균 구속은 85마일 안팎에 불과하다. 3월이 되어 시범경기가 시작될 무렵에도 90마일을 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진입을 꿈꾸는 트리플 A급의 유망주나 빅리그 잔류가 불분명한 선수들은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미리 훈련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선발 보직이 확정된 투수들은 시범경기 성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의 구속이 계획대로 조금씩 상승하고 있는가?(그 시기가 일러도 안 되고 늦어져도 안 된다), 제구력에는 문제가 없는가?, 변화구를 채는 감각이 살아나고 있는가?’ 등이다. 메이저리그를 오랫동안 봐온 팬이라면 알겠지만, 시범경기 성적과 시즌 성적은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스프링 캠프 때 좋은 구속을 기록하며 뛰어난 성적을 보이는 선수들은 시즌 후반에 맥없이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빅리그를 호령하는 특급 에이스들은 시범경기 때 여러 가지 실험을 하다가 난타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막상 시즌이 개막하면 첫 경기에서 바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시범 경기 6경기에 등판해 25.2이닝을 던지는 동안 메이저리그 최다인 46개의 피안타를 허용해 6.66의 방어율을 기록한 신시네티 레즈의 에이스 애런 하랑(13승 3패 3.68)은 막상 시즌이 개막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7이닝 1실점(비자책)의 깔끔한 승리를 따냈다.


스프링 캠프를 거치고 시범경기가 끝나 정규 시즌이 시작한 뒤에야 각 투수들의 명성에 걸 맞는 구속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리고 5월 말이 지날 때쯤이면 특급 투수들의 최고 구속이 스피드 건에 찍히기 시작한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여름을 목표로 컨디션 조절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컨디션 점검’ 그것뿐이다.


▷ 페드로는 지금 ‘컨디션 점검’ 중

페드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스프링 캠프 이야기만 했던 이유는, 필자가 보기에, 아니 페드로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그의 재활 등판은 ‘스프링 캠프를 마친 뒤 시범경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해 9월 27일 이후 한 번도 공을 던지지 않았던 페드로는 어깨 회전근 수술 후 재활에만 매달려왔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시뮬레이션 피칭을 한 것이 지난 7월 23일(현지시간)이다. 그 때부터 보름 정도 ‘자신만의 스프링 캠프’를 마친 페드로는 8월 8일부터 마이너리그에서 ‘자신만의 시범경기 겸 재활투구’를 시작했다.


실제로 4번의 재활 등판에서 페드로의 최고 구속은 89마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첫 번째 등판에 비해 구속은 조금씩 상승하고 있으며 그 자신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커브나 커터 등의 변화구가 생각 이상으로 제구가 잘 된다며 만족감을 드러낼 뿐.


게다가 페드로의 재활 등판 성적은 일반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나쁘지 않다. 첫 번째 등판에서 3이닝 동안 6피안타(2홈런)를 허용하며 5실점(4자책) 하긴 했지만, 그 이후 세 번의 등판에서는 4이닝 3실점, 5이닝 2실점(비자책), 6이닝 1실점으로 점점 나아지고 있다.


싱글 A에서의 성적이지만 합계 18이닝 16피안타(피안타율 .219) 4볼넷 17삼진, 방어율은 4.00에 불과하지만 첫 경기의 영향일 뿐, 전체적인 투구 내용에 있어서는 나쁘지 않다. 게다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적에는 관심 없는 컨디션 점검’일 뿐이다. 막상 빅리그에 올라오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페드로는 변신 중?


페드로의 구속이 지금처럼 떨어진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잦은 부상으로 인해 뉴욕 메츠에 새로이 둥지를 튼 2005년부터 그의 공이 스피드 건에 90마일 이상 찍히는 일은 드물었다. 예전 같은 강속구는 잃어버렸지만 공의 현란한 움직임은 여전했고, 여기에 경험과 로케이션이 조합된 페드로는 그것만으로도 15승 8패 2.82라는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느린공을 던진다고 알려진 그렉 매덕스의 작년 직구 평균 구속은 83.2마일, 선발 투수 중 1위인 시애틀 매리너스의 펠릭스 ‘킹’ 에르난데스(95.3마일)에 비해 12마일이나 뒤진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매덕스의 피칭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때문에 ‘제 2의 로져 클레멘스는 탄생할 수 있어도, 제 2의 그렉 매덕스는 탄생하기 힘들 것이다.’ 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매덕스 스타일로의 변신을 시도했을 때 그 성공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는 바로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아닐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페드로의 가장 큰 무기는 강속구라기보다는 날카로운 공의 움직임과 허를 찌르는 다양한 구질, 그리고 핀 포인트 컨트롤이었다. 처음부터 축복받은 하드웨어(신체조건)를 갖추지 못했고, 이제는 36살이 된 페드로, 어쩌면 지금은 필연적인 변신의 시기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성공 가능성을 함부로 점치긴 어렵겠지만, 그가 보여준 과거의 성적을 돌이켜 봤을 때, 그리고 페드로 마르티네즈라는 선수가 가진 재능을 생각해 볼 때,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긍정적인 요소가 많아 보이지 않는가.


페드로는 한두 번 더 재활 등판을 가진 후 빅리그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목표가 9월 정규시즌이냐? 그렇지도 않다. 그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10월에 있을 포스트 시즌. 때문에 팀과 페드로 모두 그다지 조급해 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그에게는 9월까지도 ‘실전 피칭’의 연장일 뿐, 근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 런지도 모른다. 페드로의 진가는 10월에 팀이 진정으로 1승이 필요할 때, 바로 그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2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경력을 가진 토미 라소다라는 희대의 명장(전 LA 다져스 감독으로 신체조건이 나쁘다며 페드로를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 시킨 장본인)을 ‘선수의 재능을 읽지 못한 어리석은 감독’으로 만들어 버린 선수가 페드로다. 필자는 그런 선수의 앞날을 섣불리 ‘예상’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 다만 ‘기대’하고 지켜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