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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KIA vs SK, 역대 최고의 한국시리즈를 기대한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0. 16.

전 1979년에 부산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롯데의 팬이었습니다. 1992년의 우승과 95년, 99년의 준우승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편이죠. 청소년기였던 90년대를 롯데라는 팀과 함께 호흡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세대의 롯데 팬이 기억하는 역대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는 누굴까요? 또한, 가장 무시무시한 팀으로 기억하고 있는 팀은 어디일까요?


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바로 ‘선동열이 마운드에 있는 해태 타이거즈’이니까요. 롯데를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의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운 선수가 바로 선동열이고, 그런 선동열을 앞세워서 롯데를 거의 압살했던 팀이 바로 해태죠. 특정 팀 상대 연승 기록과 연속 무득점 기록 등 선동열은 롯데를 재물 삼아 프로야구의 역사를 새로 써나갔었습니다.

80년대 후반 이후부터 90년대 중후반까지 해태는 한국 프로야구의 왕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강함은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태는 정말 강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강함’을 손에 넣고 있었지요. 그 어떤 팀도 그 당시의 해태보다 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얼마 전, 그러니까 대략 2년쯤 전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확신이 결국 깨지고 말았습니다. 작년의 한국 시리즈를 통해 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올 시즌 페넌트레이스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새로운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 와이번스는 과거의 해태 타이거즈 왕조보다 강합니다.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15~20년 전 당시 어린 마음에 피부로 와 닿던 기억 속의 악몽을 조금은 냉정하게 돌이켜볼 수 있게 된 지금, 현재의 SK 와이번스라는 팀이 가진 ‘무시무시할 정도의 황당한 막강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나머지 7개 팀의 야구 팬과 마찬가지로 SK라는 팀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번 나주환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상하게도 SK가 지나가는 길에는 유독 그런 사건이 많죠. SK 팬분들은 “와이번스가 강하니까 나오는 질투다”라고 주장하지만, 과거 왕조 시절의 해태 타이거즈와 비교해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문제를 주제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SK 쪽에서 그 빌미를 꾸준히 제공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이번에도 나주환의 그런 플레이만 아니었더라면, SK는 전체적인 경기 내용과 관중의 매너 등에서 확실한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참 아쉬움이 남는 플레이였죠.

어쨌든 각설하고, 그런 이유로 심정적으로는 두산이 이기기를 바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심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SK를 응원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KIA와 SK가 맞붙는 한국시리즈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 어쩔 수 없는 ‘야구팬’이고 ‘좋아하는 팀이 이기는 것’보다 ‘재미있는 야구를 보는 것’를 더욱 좋아하니까요.

솔직히 준플레이오프보다 플레이오프를 훨씬 더 재미있게 즐기는 제 모습을 보면서, 전 이미 롯데 팬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롯데가 두산을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올라와 계속해서 졸전에 가까운 수준 낮은 플레이를 펼쳤더라면, 엄청 열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아하는 팀’이 올라가는 것보다는 ‘잘하는 팀’이 올라가서 더욱 멋지고 좋은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국시리즈는 최고의 팀 간의 맞대결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네요. 승부의 방향이 어떻게 되건 매 경기가 박빙의 승부로 펼쳐지는 역대 최고 수준의 한국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올 시즌 1위는 분명 KIA 타이거즈입니다. 하지만 그건 ‘무승부=패’로 계산되는 올해에 한정된 이야기이기도 하죠. 예년의 룰이었다면 1위는 SK였을 겁니다. 사실 당장 내년에 다시금 룰이 바뀔 것이 확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KIA의 1위는 2009년만의 1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20년쯤 후에 올해의 순위표를 본 20대의 팬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어보겠죠. “아버지 왜 2009년에 SK가 아니라 KIA가 정규시즌 1위에요? 잘못 된 거 아니에요?”라구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KIA를 ‘운 좋은 1위’라고 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2위 팀이 시즌 막판 19연승을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1위 자리를 끝내 지켰다는 것은 그들이 정규시즌 챔피언에 오를만한 자격이 있음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죠. ‘SK가 운이 나빴다’라는 말은 인정하지만, ‘KIA가 운이 좋았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실력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계시지만, SK 와이번스는 올 시즌 가장 많은 점수(732득점)를 얻고, 가장 적은 실점(550점)을 한 팀입니다. 아직도 KIA가 팀방어율 1위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던데,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SK의 막판 19연승을 이끌었던 것은 투수력의 힘이었고, 그 와중에 두 팀의 팀방어율 순위는 역전되어 버렸죠.(KIA:3.92, SK:3.68) KIA는 3번째로 많은 점수(706득점)를 얻었고, 두 번째로 적은 점수(581점)를 허용했습니다.


어쩌면 김광현이라는 특급 에이스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있으면 편한 것은 분명하지만, ‘김광현을 기용하는 야구’는 김성근 감독이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에이스가 빠진 팀을 특유의 투수운용으로 이끌어가는 야구는 김성근 감독이 아니면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SK는 가장 ‘김성근다운 야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풍부한 불펜과 대타 요원을 가지고 폭 넓은 작전을 구사하는 김성근식의 야구는 지금처럼 어려운 여건 속에서 더욱 빛날 테니까요. 김광현이라는 에이스와 박경완이라는 리더가 없는 SK야말로 김성근 감독이 가장 자신의 뜻대로 운용하기 좋은 팀 구성이 아닐까요?


일주일 정도 쉬면서 경기감각이 다소 무뎌졌던 플레이오프 1,2차전에서는 비록 패했지만, 결코 무기력한 패배는 아니었지요.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게 하더니, 결국은 2연패 후 3연승의 리버스 스윕. 팀내 최고 투수인 김광현-송은범-전병두가 빠진 상황에서도 그러한 저력을 보이는 SK를 보면서 이 팀이 ‘역대 최강’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시리즈 3연패는 1986~89년 당시의 해태 외에는 그 어떤 팀도 달성하지 못했던 대기록입니다. 규정 때문에 사상 첫 정규시즌 3년 연속 1위를 놓친 SK와 김성근 감독으로서는 어떻게든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싶을 텐데요. 이번 한국시리즈에도 계속해서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계속해서 SK의 칭찬만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와이번스의 우승을 예상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번 한국 시리즈가 ‘역대 최고’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KIA 역시도 왕조의 후예다운 막강 전력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로페즈-구톰슨의 원투펀치와 다양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윤석민, 양현종, 서재응 카드, 그리고 올 시즌 최강의 마무리 유동훈. 거기에 30홈런 100타점 콤비인 최희섭과 김상현까지. SK가 ‘전체를 위한 개인’의 힘을 앞세운 팀이라면 KIA는 ‘개인의 힘이 모여 만들어진 전체’의 힘을 잘 보여주는 팀이죠.


아무리 SK가 강하다고 해도 V10을 노리는 호랑이 군단의 야심을 쉽게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 팀에는 과거 왕조 시대의 끝자락을 체험했던 이종범과 이대진이라는 든든한 두 버팀목까지 있으니까요. 유일한 약점은 KIA의 불펜에 믿을만한 좌완투수가 없다는 점뿐인데, 그것도 양현종의 활용에 따라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선발진이 모자라서 굳이 양현종 카드를 꺼내들어야 하는 팀은 아니니까요.

제가 기억하는 ‘역대 최고의 한국 시리즈’는 OB 베어스가 롯데 자이언츠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한 1995년입니다. 분명히 강조하지만 제가 롯데 팬이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단지 팬이어서 편을 들어줄 요량이었다면 92년을 언급했겠지요. 95년의 한국 시리즈는 1차전부터 7차전까지 1점차 3번, 2점차 2번, 3점차 2번으로 경기의 승패가 갈렸죠. 두 팀 모두 단 한 경기도 무득점으로 그친 날이 없었고, 최다 득점도 7점에 불과했습니다. 투수력과 타력, 그리고 수비력까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최고의 접전이었죠.

1차전은 롯데가 가져가면서 리드, 2~3차전 OB 승으로 역전, 4~5차전 롯데 승으로 다시 재역전, 그리고 마지막 6~7차전을 OB가 승리하며 재재역전으로 우승 확정. 경기의 내용과 시나리오 면에서 단연 최고의 시리즈였다고 생각합니다. 큰 구장에서만 경기가 벌어지다보니 7경기의 평균 관중 3만 명이상을 기록하며 시리즈 전체 관중이 20만 명이 넘었던 유일한 시리즈이기도 하죠. 재미와 감동, 그리고 흥행까지 모든 것을 겸비한 ‘역대 최고의 한국 시리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14년 만에 그 이상 가는 접전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만큼 올해 한국 시리즈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조갈량과 야신의 지략 대결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겠지요. 과연 어디가 최종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될까요? 이번만큼은 섣부른 예상을 뒤로한 채, 순수한 한 명의 팬이 되어 들뜬 마음으로 지켜보려 합니다.^^

[사진=선동열 팬페이지,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