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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용서받지 못할 자, 로저 클레멘스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 12.
로저 클레멘스가 죄인이 되어 가고 있다.


배리 본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 때와 다르지 않은 것은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예전 자신의 트레이너였던 브라이언 맥나미라는 단 한사람만의 증언으로 인해 죄인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클레멘스가 스테로이드 사용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해도 팬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FOX 스포츠에서 실시하고 있는 팬투표에서 클레멘스의 말을 믿는다고 응답한 이는 11만 명이 넘는 응답자 중 36%에 불과하다. 나머지 64%는 “맥나미의 증언이 맞을 것이다”고 답했다.


하지만 클레멘스는 부끄러운 짓을 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선수일 뿐, ‘확정’ 지어진 선수가 아니다. '미첼 보고서'에 이름이 오른 선수들 중, 스테로이드 구입 문서가 발견된 일부의 선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물증이 없다. 아무리 심증이 가고 의혹이 증폭된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죄인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클레멘스가 정말로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느냐의 여부다. 이와 관련해 FOX 스포츠는 흥미로운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아래 표는 클레멘스가 맥나미로부터 스테로이드 사용 의혹을 받고 있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의 기간을 기준으로 하여 전-후 성적을 비교한 것이다.



승-패

승률

방어율

삼진/9이닝

1984-1997(before)

213-118

.644

2.97

8.53

1998-2001(during)

67-27

.713

3.56

8.87

2002-2007(after)

74-39

.655

3.23

8.35

 Totals

354-184

.658

3.12

8.55


스테로이드 복용 이전의 로저 클레멘스는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그가 소속해있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던 관계로 승률은 가장 낮지만, 4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는 등 최고의 시기를 보냈던 저 당시의 클레멘스는 무시무시했다.


문제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과 그 이후의 성적이다. 둘 중 어느 성적이 뛰어나 보이는가? 2000년과 2001년 양키스 소속으로 높은 승률을 기록한 관계로 전체적인 승률에서는 98-01시즌이 더 앞서지만 가장 중요한 방어율은 오히려 그 이후가 더 좋다. 아무리 내셔널 리그인 휴스턴에서의 뛴 3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미 40이 넘었던 당시 클레멘스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후자 쪽에 무게를 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을 정도다.


스테로이드는 단기적인 근력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인 효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물의 힘을 빌려 일시적인 경기력 향상 효과를 노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끊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효과를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클레멘스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결국 셋 중에 하나다. 클레멘스 자신의 말대로 그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적이 없거나, 2002년 이후에도 남 몰래 계속해서 약물을 투여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스테로이드는 클레멘스에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것.


어쨌든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기간(1999-2003년)에 성적의 질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배리 본즈와는 달리, 클레멘스의 경우는 그 ‘기록’이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물증도 없다. 결국 남은 것은 브라이언 맥나미라는 한 개인의 증언뿐이다.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물론 정황상의 증거는 클레멘스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절친한 친구 앤디 페티트는 한두번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금지약물인 성장호르몬(HGH)을 사용했음을 시인했다. 클레멘스가 30대 후반의 나이에 상체 근육이 더욱 발달하며 겉모습이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다. 진실의 끈이 연결되어 있는 고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클레멘스의 대응은 무척이나 적극적이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맥나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뿐 아니라, 맥나미와의 직접 통화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까지 공개했다. 그 속에는 뭔가 켕기는 점이 있는 듯 얼버무리려는 맥나미와 전혀 꿇릴 것이 없다는 듯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는 클레멘스의 목소리가 담겨져 있었다.


클레멘스는 이것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라고 주장했지만, 맥나미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그 테이프가 공개된 것은 명백한 도발이라며 ‘전쟁’을 선포하는 등, 클레멘스를 감옥에 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한때는 서로를 ‘형제(brother)’라 부르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던 두 친구가 한 순간에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이러한 비극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끝을 알 수 없는 추한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마크 맥과이어와 배리 본즈라는 두 명의 영웅을 잃은 팬들은 그 이상 가는 또 한명의 영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물론 클레멘스가 백인이라는 점도 있기에 본즈에 비하면 그 비난의 강도가 덜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차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첼 보고서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클레멘스는 막다른 곳에 몰린 것이다. 어떤 식으로 결론지어지든 패자는 클레멘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원래 ‘의혹’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필자 역시도 클레멘스가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클레멘스를 보고 "왜 자신의 과오를 떳떳하게 인정하지 못하는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클레멘스는 그러한 '사과'조차 할 수 없는 처지다.


금지약물 사용을 시인한 선수들 중에 용서 받은 이는 2인자급 또는 그 이하 레벨의 선수들뿐이었다. 최고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인 제이슨 지암비는 미첼 위원회의 조사에까지 성실히 협조했지만 그 결과는 팬들과 동료들의 냉랭한 시선뿐이었다.


배리 본즈와 마크 맥과이어가 받은 대접은 말 할 것도 없다. 본즈와 함께 투타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클레멘스는 쉽사리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수 있는 상황도 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용서받지 못할 상황,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공격한 이에게 역공을 가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싸움은 언제 끝나게 될까? 금지약물로 오염된 리그에서 100%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선수는 과연 몇이나 되며, 또한 그들의 말은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단 한 사람의 증언으로 다른 한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갈 수 있는 상황. 금지 약물 사용과 관련해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선수와 사무국 그리고 팬들까지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크나큰 상처로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