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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의 생애 첫 WS 등판은 ‘절반의 성공’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0. 31.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생애 첫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섰다. 비록 ‘절반의 성공’에 그치긴 했지만, 그토록 그리던 꿈의 무대에 섰다는 데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0일(이하 한국시간)에 있었던 2009년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박찬호는 7회 무사 1,3루의 위기 상황에서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아쉽게도 대타 호르헤 포사다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 후속 타자인 데릭 지터는 삼진(쓰리 번트 실패)으로 잡아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가 ‘양키스의 우타자 콤비 봉쇄’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럽지만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올 시즌 뉴욕 양키스의 타선이 메이저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9명의 주전 타자들 가운데 무려 4명이 스위치타자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아메리칸리그 홈런-타점 1위인 1루수인 마크 테세이라를 비롯해 호르헤 포사다(포수), 닉 스위셔, 멜키 카브레라(이상 외야)가 그 주인공들이다.

로빈슨 카노(2루수)와 자니 데이먼(외야), 그리고 마쓰이 히데키는 왼손 타자다. 즉, 상대 선발로 우완 투수가 등판하게 되면 무려 7명의 선수가 좌타석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우완 투수가 상대하기에는 악몽과도 같은 라인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좌완투수를 내보내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다. 양키스 주전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는 단 두 명의 우타자가 그 이름도 유명한 알렉스 로드리게스(3루수)와 데릭 지터(유격수)이기 때문이다. 좌우균형적인 측면이나 짜임새를 놓고 봤을 때, 분명 이 팀은 리그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선을 보유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선발이든 불펜이든 좌완투수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사실상의 원투펀치인 클리프 리와 콜 하멜스를 비롯하여, 불펜 에이스인 스캇 아이어도 모두 왼손잡이 투수들이다. 우완 보다는 그나마 좌완이 양키스를 상대하기에 좀 더 나은 것이 사실이지만, 믿을 만한 우완 셋업맨이 박찬호 한 명뿐이라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부터 미국 현지의 언론 매체에서 박찬호의 활약 여부가 중요하다고 평가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마무리인 브래드 릿지(우완)를 경기 중간에 투입할 수 없다면,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지터와 로드리게스를 상대할 투수가 박찬호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박찬호는 양키스의 주전 타자 9명과의 역대 상대전적에서 합계 50타수 8안타(.160)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다. 카노(4타수 2안타)와 로드리게스(5타수 2안타)에게는 다소 고전했지만, 마쓰이와 포사다(이상 7타수 무안타), 스위셔(5타수 무안타) 그리고 데이먼(13타수 2안타) 등에게는 상당한 강점을 보였다. 지터(7타수 1안타)도 예외가 아니었다.

찰리 매뉴얼 감독이 2차전에서 이미 상대 타자가 대타로 나온 포사다로 바뀌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몸을 풀고 있던 스캇 아이어 대신 박찬호를 먼저 등판시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좌완을 올려봤자 포사다가 우타석에 들어설 것이 뻔하니, 차라리 박찬호가 평소 강했던 포사다와 지터를 연달아 상대하는 편이 나아 보였던 것.

물론,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실패로 돌아갔다. 박찬호는 2스트라이크 1볼 상황에서 던진 시속 91마일(147km) 투심 패스트볼이 바깥쪽 높게 형성되면서 포사다에게 적시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평소 강했던 포사다에게 실투를 던져 안타를 내준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다음 타자인 지터는 공 3개로 깔끔하게 처리했기에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애당초 박찬호의 주된 타겟은 지터와 로드리게스이기 때문.

비록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 첫 월드시리즈 등판에서 박찬호가 보여준 구위는 매우 훌륭했다. 총 7개의 공을 던졌는데, 그 모두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그 중 하나가 실투로 연결되긴 했지만,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하던 지터가 번트도 제대로 대지 못하고 물러났을 만큼 공 끝은 살아 있었다.

현재 양키스의 로드리게스는 월드시리즈 들어 갑자기 방망이가 침묵하면서 8타수 무안타에 삼진을 6개나 당했다. 지터는 8타수 4안타로 제 몫을 해주고 있지만, 나머지 4타석은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다. 박찬호의 현재 구위라면 이들을 묶어두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팀의 월드시리즈 2연패와 개인 통산 첫 우승의 확률이 훨씬 높아짐을 의미한다.

필리스는 하루의 휴식을 취한 후 홈으로 옮겨와 3~5차전을 치르게 된다. 필리스는 이 세 경기에서 콜 하멜스-J.A. 햅-클리프 리로 이어지는 좌완 3인방이 차례로 등판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위기 상황이 되면 언제든지 박찬호가 ‘소방수’의 임무를 띠고 출격할 수 있으며, 그의 활약이 팀 승리에 직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리스의 2연패가 박찬호의 어깨에 걸려있다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과장일 수 있다. 하지만 박찬호의 활약이 없다면, 2연패를 향한 꿈이 매우 위태로운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처음으로 맞이한 월드시리즈에서의 등판이 ‘절반의 성공’이었다면, 3차전 이후로는 ‘퍼펙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다행히 올 시즌의 박찬호는 유난히 홈에서 좋은 피칭을 보여주었기에, 기대를 가져볼 만하다.

[사진=홍순국의 순 스포츠]

// 카이져 김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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