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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희망지킴이’가 된 박찬호, WS 6차전 키워드는 불펜싸움!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1. 4.

박찬호가 속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벼랑 끝에 몰렸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승리하며 일단 한 숨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2경기를 모두 승리해야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상황. 남아 있는 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단계는 아니다. ‘3선발 체제’라는 모험을 시도한 양키스 투수진에는 여전히 ‘시한폭탄’이 숨겨져 있고, 조금함을 버리고 ‘4인 로테이션’을 가져간 필리스에게는 반격의 실마리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반격의 단초는 ‘불펜 에이스’로 떠오른 박찬호에게서 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 5차전 돌아보기 - ‘희망지킴이’가 된 박찬호

4차전에서는 ‘고무팔’ C.C. 사바시아에게 당하고 말았지만, 마찬가지로 3일만 쉬고 등판한 ‘유리팔’ A.J. 버넷을 필리스 타자들이 공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2차전 이후 4일 만에 등판한 5차전 경기에서 버넷은 2회까지 6실점하며 무너져 내렸다. 반면 1차전 이후 정상적인 5일 로테이션을 지켜 등판한 필리스의 좌완 에이스 클리프 리는 7회까지 4피안타 2실점의 좋은 피칭으로 8-2의 리드를 이끌었다.

그대로 필리스의 압승으로 끝날 것 같던 경기는 8회에 크게 요동쳤다.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리가 투구수 100개가 넘어감에 따라 3연속 안타를 허용한 것이다. 자니 데이먼의 안타와 마크 테세이라의 2루타, 그리고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싹쓸이 2루타가 터져 나오면서 경기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스코어는 여전히 8-4로 여유가 있었지만, 2루에 로드리게스가 있었고, 아직 아웃카운트는 단 하나도 잡아내지 못한 상태. 분위기상 여차하면 한 순간에 경기가 뒤집어질 수도 있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었다.

찰리 매뉴얼 감독은 결국 박찬호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실 조금, 아니 상당히 의외의 기용이었다. 처음부터 박찬호를 내세울 요량이었다면, 우타자인 로드리게스의 타석에서 기용했어야 했다. 게다가 이후 상대해야 할 타자가 닉 스위셔(스위치), 로빈슨 카노(좌타), 브렛 가드너(좌타)로 이어지는 좌타 라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좌완 셋업맨인 스캇 아이어를 등판시키는 것이 상식적인 기용일 것이다.

하지만 매뉴얼 감독은 양키스 좌타자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준 박찬호와 전날 보여준 그의 구위를 믿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박찬호는 좌타석에 들어선 세 명의 타자를 단 11개의 공으로 땅볼과 외야 플라이, 외야 직선타로 잡아내며 위기를 벗어났다.

카노의 탁구가 1타점 희생 플라이가 되긴 했지만, 그건 박찬호의 책임이 아니다. 최악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던 분위기를 단숨에 제압하며 3점차를 지켜냈다는 점을 더욱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9회에 등판한 라이언 매드슨이 3일 연속 등판의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3안타를 맞고 1점을 추가로 내주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8회 박찬호의 피칭이 더욱 귀중했음을 알 수 있다. 박찬호는 필리스 팬들이 우승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희망지킴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 6차전 전망 - 불펜 싸움이 승리의 관건

5차전을 8-6으로 간신히 승리한 필리스는 하루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금 양키스타디움으로 장소를 옮겨 최종 2연전을 치르게 됐다. 우선 반격의 기틀은 마련한 셈. 6차전 선발 투수로 양키스와 필리스는 각각 앤디 페티트와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예고했다.

정규시즌 동안 14승 8패 평균자책 4.16의 수준급 성적을 기록한 페티트는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승’ 기록보유자(17승)답게 포스트시즌에서는 4경기에 등판해 3승 무패 평균자책 3.24의 뛰어난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3차전에서는 홈런 2방을 내주며 4실점하긴 했지만,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3일 휴식 후 등판이라는 점에서 긴 이닝을 소화하기를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다. 7차전 선발로 내정된 사바시아는 두 번 연속 3일 휴식 후 등판이 예정되어 있다. 이 점이 바로 양키스 선발진이 안고 있는 ‘시한폭탄’이다.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정규시즌 막판 팀에 합류하며 5승 1패 평균자책 3.63의 좋은 성적을 기록한 마르티네즈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두 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비록 두 경기 모두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투구 내용(13이닝 8피안타 11탈삼진 3실점)만큼은 에이스 클리프 리 다음으로 훌륭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컨디션이라 하더라도 9명의 주전 타자 가운데 무려 7명(스위치히터 3명 포함)이 좌타석에 들어서는 양키스 타선을 상대로 긴 이닝을 버텨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2차전처럼 6이닝 3실점 정도가 현실적인 기대치라고 할 수 있다.

필리스는 월드시리즈에서만 5개의 대포를 쏘아 올린 채이스 어틀리(PS 14경기 6홈런 10타점)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7홈런 13타점을 기록 중인 제이슨 워스의 컨디션이 절정에 달해 있다. 양키스도 팀의 두 기둥인 로드리게스(PS 15경기 6홈런 18타점)와 지터(19안타 12득점 .322)의 방망이가 연일 불을 뿜고 있다. 타격을 놓고 봐도 양팀은 백중세다.(5차전까지 양키스 25득점, 필리스 24득점)

결국 이러한 점을 감안했을 때, 6차전 이후의 승부는 불펜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필리스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셋업맨은 박찬호와 라이언 매드슨이다. 9회만 놓고 본다면 ‘ML 역대 최고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를 보유한 양키스가 앞서 있지만, 7~8회 싸움에서는 필리스가 결코 밀리지 않는다. 박찬호의 활약에 따라 시리즈의 승패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6차전에서 끝내고 새로지은 구장에서 첫 우승의 축포를 쏘아 올리겠다는 뉴욕 양키스와 어떻게든 7차전으로 끌고 가겠다는 각오의 필라델피아 필리스. 두 팀의 격돌은 한국시간으로 5일 오전 10시에 예정되어 있다.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