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잠시 곁길로 빠져서 스타 이야기를....^^;)
며칠 지나긴 했지만, 지난 주 금요일(11일)에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조 지명식이 있었다.
16명의 진출자들의 얼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며, 최근 들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신경전과 자존심 싸움은 팬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한 요소들이다.
스타리그는 기본적으로 4명의 시드자가 존재한다. 지난 리그에서 1~3위를 차지한 선수들이 A,B,C 조에 시드배정자로 배치가 되고, 챌린지 리그 1위 진출자들과 지난 시즌 4위가 맞붙어 그 중 우승한 선수가 4번 시드를 차지해 D조에 배치된다. D조에 배치될 나머지 3명의 선수들은 1~3번 시드자들이 지명해서 넣어주게 된다.
이번 조 지명식에서 흥미로운 요소는 4번 시드자가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1~3번 시드의 선수들이 D조에 배치해준 선수들은 손찬웅과 김동건 그리고 박성준이었다. 나머지 조 편성이 끝난 후 4번 시드였던 박영민은 껄끄러운 상대였던 박성준에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그렇게 거부된 박성준은 자신이 원하는 다른 조의 선수와 자리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는 방식이었다.
평소에도 호전적이며 강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던 박성준은 ‘거부권이 행사되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된다면, 역대 최고의 죽음의 조를 만들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 덕에 팬들은 숨을 죽이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A조에 이미 이제동과 마재윤이라는 역대 우승자 저그 라인이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 게다가 A조에 포함된 또 한명의 선수는 다름 아닌 염보성. 만약 여기에 박성준이 포함된다면 3명의 우승자 저그와 결코 만만찮은 테란이 포함된 사상 최악의 조가 만들어질 판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긴다. 사상 처음으로 스타리그에 동시에 진출하며 양대리거의 영광을 차지한 박찬수, 박명수 형제가 공교롭게도 한 조에 편성된 것이다. 형제끼리 싸우고 싶지 않았던 그들은 박성준에게 자신들과 자리를 옮겨줄 것을 부탁했고, 박성준은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박명수와 자신의 자리를 바꿨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조 편성 결과는 다음과 같다.
A조 - 이제동(저) 마재윤(저) 염보성(테) 도재욱(프)
B조 - 송병구(프) 안기효(프) 윤종민(저) 이영호(테)
C조 - 김택용(프) 서지훈(테) 박성준(저) 박찬수(저)
D조 - 박영민(프) 손찬웅(프) 김동건(테) 박명수(저)
결과를 보면서 ‘어쩔 수 없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이들이 조금만 더 프로의식을 가지고 팬들을 위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스타리그 1회, MSL 3회 우승에 빛나는 마재윤, 스타리그 2회, 프리미어리그 1회 우승의 박성준, 그리고 가장 최근의 스타리그 우승자이며 얼마전 MSL에서 멋진 경기를 펼치며 김택용을 광속탈락 시켜버린 이제동, 그리고 이들과 견주어도 전혀 밀릴 것 같지 않은 염보성. 이들의 매치업이라면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또한 박찬수-박명수 형제의 매치업도 마찬가지다. 그들로서는 16강부터 맞붙고 싶진 않겠지만, 온게임넷 스파키즈의 팬을 제외한 대다수의 팬들은 쌍둥이 형제의 맞대결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박성준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원치 않게 적지 않은 안티팬이 존재하는 그로선 쌍둥이 형제의 눈물의 맞대결을 방치한 채 A조로 향했다면 상당한 욕을 먹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
하지만 이 프로 게이머들이 정말로 프로라면, 그에 준하는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형제간의 대결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이번 조 지명식은 박성준의 배려로 인해 선수들이 원하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결과가 팬들, 그것도 다수의 팬들이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다고 본다. 아마 현장에 있었던 엄재경 해설이라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아무리 10대의 나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프로다. 팬들이 원한다면 형제간의 당당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형제간의 대결은 수많은 팬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최고의 흥행 카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매치를 성사시키고 싶었던 자신의 욕심을 접고 동료에게 인정을 배푼 박성준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은 어린 마음에 서로 맞붙기를 꺼려했던 쌍둥이 형제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지는 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들이 ‘프로다움’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여 아쉬움이 들었다. 프로는 팬이 최우선이며 팬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사로운 감정은 버려야할 때가 있는 법이다. 이 일을 계기로 삼아 앞으로는 프로게이머들의 한층 더 성숙한 프로의식을 가질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