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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선발 향한 박찬호의 꿈, 이번에는 이뤄질까?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2. 9.

이번 겨울에도 박찬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2001년 겨울 처음으로 FA 자격을 획득했던 박찬호는 2006년 이후 올해까지 4년 연속 FA가 되어 다음 시즌 자신이 뛸 팀을 물색하고 있다. 물론 3년 전에 비하면 사정은 크게 나아졌다. 하지만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딜레마는 여전히 존재한다.

▶ 선발을 향한 박찬호의 ‘꿈’

박찬호는 LA 다저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뛴 지난 2년 동안 구원투수로서 상당히 활약을 펼쳤다. 올해는 월드시리즈 마운드에도 오르며 자신의 이력서에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한 줄을 추가했다. 주위의 평가와 위상은 작년 이 맘 때보다 더 좋은 편이다.

박찬호는 올 시즌 FA 시장에 나온 구원투수들 가운데 15위 안에 들어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비슷한 레벨의 투수들 중에서도 경험과 경력 면에서는 존 스몰츠와 더불어 최고로 꼽힌다. 2006년이나 2007년처럼 ‘메이저리그에 남을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 ‘어느 팀에서 뛸까’를 놓고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다.

문제는 박찬호가 여전히 ‘선발투수’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내가 선발투수가 되어 5일마다 정기적으로 등판해야 고국의 팬들이 경기를 보기 편하다”는 인터뷰로 국내 야구팬들을 감동시킨 바 있다. 선발을 향한 박찬호의 고집은 자신의 ‘꿈’이면서, 동시에 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박찬호는 선발투수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시대를 열었고, 크나큰 실패도 겪었다. 그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투수라는 보직을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박찬호는 언제나 선발투수를 원했고, 그 꿈을 향한 도전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 선발의 꿈, 현실 가능성은?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구원투수’ 박찬호를 원하는 팀은 적지 않다. 그는 30대 후반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공을 던질 수 있는 경험 많은 우완투수이며, 연평균 300만 달러 안팎으로 예상되는 몸값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실제로 박찬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6개 팀에서 연락이 왔다”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밝혔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팀을 선택하기 위한 박찬호의 기준은 ‘우승이 가능한 팀의 선발투수’다. 지난해 우승팀인 필리스가 박찬호를 선택했던 것처럼, 우승이 가능한 팀에서 뛰는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만 맞아 떨어지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선발투수의 보직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급 선발투수’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2001년이 마지막이었다. 텍사스 시절은 너무나 참혹했고, 부활을 꿈꿨던 샌디에이고 시절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작년에 다저스에서 간간히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호투했지만 꾸준한 기회를 얻지 못했고, 올해는 5선발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부진으로 중도 탈락하고 말았다.

아쉽지만 우승권 팀에서 그런 박찬호에게 선발투수 보직을 약속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리빌딩을 노리는 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차피 성적에 연연하지 않을 상황이라면, 30대 후반의 노장에게 기대는 것보다는 미래를 위해 젊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필라델피아와의 계약에서처럼 ‘기회’를 얻는 것은 가능하다. 선발 보직을 보장받을 수는 없지만,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매년 스프링캠프가 되면 3~4명의 투수가 5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은 메이저리그의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탈락하면 구원투수의 보직을 받아들이겠다는 전제 하에, 기회를 달라고 하면 된다. 박찬호 같은 베테랑 투수라면 그 정도 요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된다. 경쟁에서 승리하느냐는 이후의 문제다.

▶ 필라델피아에 남게 될 가능성은?

현재 박찬호의 원 소속팀인 필라델피아는 올 시즌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셋업맨으로 활약한 브랜든 라이언(평균자책 2.86)과 박찬호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전 마무리인 브래드 릿지가 불안한 터라 가능하다면 마무리 경력이 있는 라이언을 붙잡고 싶겠지만, 라이언이 연평균 500만 달러 이상의 장기계약을 원하고 있어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지구 라이벌인 애틀란타가 통산 385세이브(역대 6위)에 빛나는 빌리 와그너(700만불)와 사이토 다카시(320만불)를 FA 계약을 통해 붙잡았고, FA 구원투수 가운데 ‘최대어’로 꼽혔던 팀의 주전 마무리인 라파엘 소리아노마저 연봉조정을 받아들이고 팀에 남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필라델피아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상당히 줄어든 상황.

우선적으로는 ‘우승 가능한 팀’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라이언의 몸값 낮추기 작업에 돌입하겠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남은 선택지 중에는 박찬호만한 선수가 없다. 브렛 마이어스와 페드로 마르티네즈도 FA가 된 상황이라, 둘 중 한 명이 잔류하지 않는 한 5선발 자리가 공석이라는 점도 박찬호에게는 매력적이다.

필라델피아는 여전히 리그에서 가장 강한 타선과 안정적인 선발 로테이션을 보유한 팀이다. 현실적으로 박찬호를 원하는 팀들 가운데는 가장 우승에 근접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인 잔류 가능성은 반반, 선발을 향한 박찬호의 꿈과 팀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어울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박찬호는 자신의 꿈과 팬들을 위해 또 다시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어쩌면 박찬호라는 선수는 에이전트의 입장에서는 조금 까다로운 고객이고, 구단의 입장에서는 약간 부담스런 요구를 하는 선수일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꿈과 팬들의 행복을 위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박찬호이기에 응원하는 팬들은 항상 즐겁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 : 홍순국의 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