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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ports

올림픽 순위 집계방식, ‘우리나라식’으로 합시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0. 2. 23.

이제는 올림픽만 되면 순위 집계 방식 때문에 벌어지는 토론이 일상화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번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금메달 우선순위 vs 메달 총계 순위’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군요.

 

우선 오해를 몇 가지 바로 잡고 넘어갈까 합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금메달 개수를 최우선으로 하여 순위를 산정하는 방식을 놓고 '1등만 기억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성적 만능주의에 물든 일부 국가의 그릇된 방식이라고 알고 계시더군요.(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메달을 중심으로 순위를 산정하는 방식은 바로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방식’이라 하여 국제대회에서 통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올림픽 공식의 순위 산정 방식입니다. 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에서도 대부분 이 방식으로 순위를 가립니다.

 

메달 총계로 순위를 내는 국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과 캐나다인데요.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미국도 원래는 IOC 방식을 따라 금메달 개수로 순위를 매겼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메달 총계로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죠.

 

어떤 분들은 하계올림픽에서 미국이 중국에게 밀린 후부터 그러한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그런 것도 아닙니다. 미국이 중국에 밀린 건 지난 베이징 올림픽이 처음이었고, 제가 기억하기에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미국의 순위 산정방식은 메달 총계가 우선이었으니까요.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각 나라의 스포츠 관련 사이트들도 대부분 두 가지 순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데요. 대신 무엇을 우선으로 하느냐의 차이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메달 총계를 기준으로한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의 순위

캐나다에서 열리는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홈페이지에서는 ‘메달 총계’를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금메달 우선 방식의 순위는 부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우선된 순위 집계 방식은 ‘금메달 우선’이었지요. 한국의 포털사이트도 두 가지 방식을 다 보여주고 있지만, 우선은 금메달을 기준으로 한 순위를 먼저 보여줍니다.

 

금메달에 가중치를 둔 올림픽 홈페이지의 순위

금메달을 우선으로 하는 IOC 방식과 메달 총 개수를 우선으로 하는 미국식, 두 가지 순위 산정 방식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나은 방식일까요?

 

사실 위의 방식은 둘 다 모순점이 있습니다. IOC 방식은 ‘은메달은 아무리 많아도 금메달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는 1등 지상주의를 조장할 우려가 있고, 미국식 순위는 ‘금메달=은메달=동메달’이 되는 오류가 숨어 있지요. 은메달이나 동메달이 금메달 못지않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가치를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역차별이기도 하니까요.

 

“금메달이 은메달보다 가치 있다”는 명제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은메달 2개면 금메달 하나보다 낫다”라는 명제도 일리가 있지요. 그렇게 본다면 IOC 방식과 미국식은 둘 다 합리적인 순위 집계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많은 분들이 올림픽 순위 집계 방식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저열한 근성이 드러난다’라고 하시던데요. 그건 정말 뭘 모르고 하는 말이지요. 우리나라는 단지 IOC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순위집계 방식은 절대로 금메달 우선순위가 아니지요.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의 전국체전의 순위 집계 방식을 알고 계신가요? 우리나라는 매년 광역권으로 구분된 시-도의 대표들이 출장하는 전국체전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시-도별로 순위를 매기지요. 그 방식이야 말로 한국 고유의 순위집계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방식이 무엇인지 아신다면, ‘저열한 근성’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는 하지 않으실 겁니다.

 

전국체전의 순위 집계 방식은 바로 ‘포인트제도’입니다. --동의 메달뿐만 아니라, 4위를 비롯한 결선 진출 등에도 일정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그렇게 각각의 포인트를 모두 따진 후 총점을 내서 시-도별로 순위를 매기지요. 메달권만이 아니라 4위를 비롯한 결선 진출 선수들 모두에게 가중치를 두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고유의 순위 집계 방식’입니다.

 

올림픽에서 각 종목의 4위나 결선 진출 등을 따지기엔 너무 복잡하고 어렵겠지요. 그리고 아마 그다지 설득력도 없을 것 같습니다. 국내 대회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최선을 다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포인트를 주지만, 최상의 기량을 다투는 올림픽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네요. 그럼 좀 간단하게 책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메달은 5, 은메달은 3, 동메달은 1점으로 하면 어떨까요? 금메달은 금메달다운 가치를 지니게 만들면서, 은메달과 동메달에도 일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죠. 계산이 복잡해지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을 테니, 최대한 간단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아무래도 3-2-1보다는 5-3-1이 좀 더 좋아 보이더군요. 그렇게 생각한 현재까지 각 나라의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어떤가요? 우리나라의 전국체전식 포인트 방식의 순위 계산법. 꽤나 쓸만하지 않나요? 양쪽의 단점을 적절히 보완하면서도 비교적 합리적인 순위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식이기도 하겠지요.

 

사실 일단 순위를 내기로 작정한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불만은 생길 수밖에 없지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완벽한 순위 집계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국가 대항전의 성격이 짙은 올림픽에서 순위를 가리지 않을 수도 없지요. 사실 순위라는 것은 경쟁이 벌어지는 모든 곳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니까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과제입니다. 순위 집계 방식을 헐뜯고 비난하기만 해서 개선되지는 않을 겁니다. 메달 총계로 순위를 내는 방식도 1등과 3등은 차별하지 않지만, 3등과 4등 사이에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말씀드린 포인트제도도 마찬가지지요.

 

이번 올림픽에서 이규혁 선수는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수많은 국민들의 응원과 성원을 얻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가 흘린 눈물은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지요. 5번의 올림픽 참가, 그리고 노메달. 하지만 그 누구도 이규혁을 패배자라 부르지 못할 겁니다. 성적 만능주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바로 이러한 관심과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성적 만능주의를 바꿔가는 과정에 있어 올림픽 순위 집계 방식을 바꾸는 것은 아주 미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보다는 좀 더 많은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올림픽 방송을 전후로 하여 끝임 없이 이어지는 김연아을 응원한다는 일부 기업들의 광고가 꼴 보기 싫어진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