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간으로 오늘(10일), 미국 시간으로는 5월 9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소속의 댈러스 브레이든(27)이라는 투수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19번째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습니다. 그것도 올 시즌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팀 득점 1위를 자랑하는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말이죠.
브래이든은 1회부터 9회까지 단 하나도 안타나 볼넷,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지 않았고, 6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퍼펙트 게임의 위업을 이뤄냈습니다. 물론 21개의 아웃 카운트는 그와 수비수들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것이죠. 오클랜드 수비진이 특별히 뛰어난 편이 아니기에 이번의 퍼펙트 게임은 더더욱 의외입니다.
작년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마크 벌리(31)가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었죠. 2년 연속 퍼펙트 게임이 나오다니, 메이저리그에 경사가 났군요. 이틀 전에 제이미 모이어가 만 47세 6개월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완봉승을 달성한 것에 이은 또 하나의 대기록입니다.(개인적으로는 모이어의 기록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저리그에는 이렇게 매년 꼭 한 두 번씩은 대기록이 작성되곤 합니다. 퍼펙트 게임이나 노히트 노런, 그것도 아니면 타자 쪽의 놀라운 기록이나 모이어의 경우처럼 특별하면서도 의미 있는 기록이 탄생하곤 하죠. 그것이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번 브래이든의 경우처럼 ‘깜짝스타’의 대기록 작성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 편입니다. 노히트 노런 정도라면 모를까, 별 이름도 없는 그저 그런 선수(전날까지 통산 17승 23패 방어율 4.62)가 ‘하루의 미친 듯한 활약’으로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는 사실이 그다지 달갑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것이 그렉 매덕스나 로이 할러데이처럼 리그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은 선수들도 해내지 못한 ‘퍼펙트게임’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일단은 인정하고 축하해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질투심으로 폄하하기에는 너무나 대단한 경기력이었으니까요.
우리나라의 프로야구가 시작한지 올해로 어느덧 29년째, 아직도 한국 프로야구에서 퍼펙트 게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비하면 팀과 경기수가 적기 때문이지만, 지금쯤은 한 번 정도 나와줄 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퍼펙트게임 같은 대기록이 작성되기 어려울까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한국 야구와 메이저리그의 본질적이면서도 어쩔 수 없는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퍼펙트 경기에서 템파베이의 4번 타자 에반 롱고리아는 5회초 공격에서 기습 번트를 시도했었습니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직후 관중들의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죠. 대기록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정면승부가 아닌 ‘꼼수’를 부렸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겨우 5회였는데도 그런 반응이었다는 겁니다.
한국은 야구를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여기에서의 ‘어떠한 수’란 규정 내에서 허락하는 모든 작전이나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비겁한 행위’나 ‘반칙’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규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기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야말로 세계 대회에서 한구 야구가 강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메이저리그에도 우리나라 못지 않게 각종 작전과 병법이 발달해 있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면에서는 한국야구에 미치지 못합니다.
반면 메이저리그는 좀 더 긴 호흡으로 경기를 봅니다. 그들은 내일의 2승을 위해서라면 오늘의 1패는 감수한다는 식입니다. 선발이 경기 초반에 대량실점을 하면, 굳이 일찍 투수교체를 단행해 승리에 집착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포기’와는 좀 다릅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내일이나 모레를 위해서 무리하지 않겠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또, 그럴 때는 이기고 있는 팀에서도 각종 작전을 시행하지 않고 정면승부만 고집합니다. 그러다가 역전을 당하면,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죠. 그것이 ‘메이저리그식 재미있는 야구’의 기반이 됩니다. 이기고 있는 쪽은 상대에게 ‘할 수 있으면 역전해 봐라’는 식으로 여유를 보여주고, 지고 있는 팀은 ‘단지 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식으로 경기에 임합니다. 그러다가 역전이 나오면 명경기가 되는 것이고, 그대로 승부가 갈려도 다음날 경기에 지장을 주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죠.
퍼펙트 게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팀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대기록이 진행되고 있는 시합에서 기습 번트를 대거나 하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선수들 사이의 암묵적인 ‘불문율’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팬들이 그러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지요. 만약 롱고리아의 번트로 브래이든의 퍼펙트가 깨졌다면, 롱고리아는 다른 팀은 물론이고 연고지인 탬파베이의 팬들로부터도 엄청난 원성을 샀을 겁니다. 미국의 야구팬들은 자신들의 영웅이 그런 ‘꼼수’로 대기록을 깨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힘과 힘의 승부’에서 이겨내길 원하는 것이죠. 한국과 일본에서는 만화에서만 등장하는(즉, 현실에서는 절!대!로! 등장하지 않는) ‘정면승부’가 메이저리그에서는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퍼펙트 게임 같은 대기록이 탄생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물론, 그것이 ‘한국 야구가 나빠서’는 절대 아닙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의 문제일 뿐이죠. 우리나라와 메이저리그의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뿐입니다. 좀 더 치열하고 치밀한 우리나라 야구는 그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특성이 퍼펙트 게임을 비롯한 대기록의 달성 가능성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지난해 타격왕 경쟁에서도 그러한 특징은 여실히 드러났지요. 사실 LG 투수들이 홍성흔을 볼넷으로 거른 것이 규정 위반은 아니었지만 ‘꼼수’임에는 분명했으니까요.
게다가 또 다른 환경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건 문자 그대로의 ‘환경’을 뜻하는 겁니다. 바로 여전히 열악한 야구장의 상태인데요. 우리나라의 외야 펜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딪히면 큰 충격을 받습니다. 부상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외야수들의 적극적인 수비에 방해가 되지요. 내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일부 구장에서는 내야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한 경기 중에도 몇 번씩이나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나곤 합니다. 또한, 덕아웃 앞에서 투구 연습을 하는 행위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수비에 방해만 될 뿐이지요. 실책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시합의 대부분이 야간 경기로 치러진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야구가 ‘생활스포츠’인 미국에서는 꽤나 많은 경기가 낮에 열립니다. 이번 댈러스 브래이든과 지난해 마크 벌리의 경우, 두 시합은 모두 조명이 필요 없는 낮 경기였습니다. 야간 경기를 하다 보면 플라이성 타구가 조명의 불빛 속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그것은 실책의 원인이 되곤 하죠.
야구를 보는 시각이나 밤 경기 등의 문제는 어쩔 수 없겠지만, 고칠 수 있는 것(구장 환경 문제)은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류현진이나 김광현이 퍼펙트 게임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불규칙 바운드로 대기록이 깨진다면 그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또한, 파울볼이 날아오면 무조건 손부터 날리고 보는 관중들의 나쁜 습관도 사라져야겠지요.(특히 사직구장 익사이팅 존!!)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퍼펙트 게임이 나오겠지요. 그게 언제가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한 번쯤 나와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괜한 번트 시도로 욕먹는 선수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파울 플라이를 잡으면 그걸로 경기가 끝이 나는데, 그걸 잡아채서 이후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드는 멍청한 관중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불규칙 바운드나 조명 속에 공이 사라지는 일도 없어야겠죠.
완벽한 경기 끝에 27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후 만원 관중의 기립 박수 속에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환호하는 우리나라 투수의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 주인공이 류현진이나 김광현이라면 더욱 좋겠네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MLB.com 메인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