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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ports

[월드컵] 내가 기억하는 역대 월드컵 ‘죽음의 조’들

by 카이져 김홍석 2010. 5. 29.

제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첫 번째 월드컵은 중학교 3학년때 열렸던 1994년 미국 월드컵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월드컵이라는 대회가 있고, 어디가 우승했다 정도만 알았지, 경기를 챙겨보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 만화방에 입문(?)하면서, 그리고 각종 스포츠 만화를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워가는 과정에 유럽 축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팀은 오렌지 군단네덜란드였지요. 굴리트와 반바스텐이 활약하던 당시의 네덜란드.(^^)

 

그 이후로 올해까지 벌써 5번째 월드컵이군요.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최대의 이슈는 바로 조 편성이죠. 그리고 그 조 편성이 끝나고 나면 항상 죽음의 조라는 말이 유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요. 제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역대 월드컵 대회에서의 죽음의 조를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E이탈리아, 아일랜드, 멕시코, 노르웨이

조금 빡빡하긴 해도 이 대회까지만 해도 24개국 출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다지 죽음의 조라 불릴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일단 이름값만 놓고 보면 말이죠. 오히려 상위 3팀이 맞물리며 나란히 2 1패를 기록한 D(나이지리아, 불가리아, 아르헨티나, 그리스)가 더 심한 죽음의 조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대회 전의 언론은 그 쪽을 더 주목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했을 때, E조야 말로 사상 최악의 죽음의 조라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4팀 모두 1 1 1, 승패가 갈린 4경기가 모두 1점차 승부였던 터라 골득실도 모두 나란히 제로(0)’. 결국 다득점으로 멕시코와 아일랜드가 조 1,2위로 16강 진출, 이탈리아는 3위 팀끼리의 비교에서 간신히 턱걸이로 16강에 진출했지만, 노르웨이는 승점 4점을 확보하고도 탈락하는 충격을 맛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1,2위로 진출한 멕시코와 아일랜드는 16강에서 사라졌었지만, 험난한 과정을 겪고 간신히 올라간 이탈리아는 끝끝내 결승까지 비집고 올라가 로베르토 바조라는 비운의 스타를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각인시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D스페인, 나이지리아, 파라과이, 불가리아

스페인은 당당한 우승후보의 일각이었습니다.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나이지리아 역시 당시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었죠. 불가리아는 지난 대회에서 아르헨티나와 독일을 꺾고 4강까지 올라간 팀이었고, 파라과이 역시 남미의 강호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조가 더욱 충격적인 죽음의 조로 기억되는 건 그 결과 때문이겠지요. 제대로 물고 물리는 결과가 나오면서 아주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일 겁니다.

 

나이지리아는 불가리아와 스페인을 상대로 2연승을 달리며 일찌감치 조 1위를 확정지었습니다. 헌데 마지막 경기에서 파라과이에게 3-1로 패하고 맙니다. 나머지 두 팀과 모두 비겼었던 파라과이는 그렇게 조 2위로 16강에 올랐습니다. 나이지리아가 파라과이에게 패한 경기와 같은 시간에 벌어졌던 스페인-불가리아 전에서는 스페인이 6골을 몰아치며 승리를 거두긴 하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 후였습니다. 전반전이 마칠 당시만 해도 나이지리아-파라과이는 1-1 동점 상황이었고, 스페인은 2-0으로 이기고 있었기에 웃고 있던 스페인 선수들이 후반이 되어 파라과이가 이기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 때부터는 골을 넣고도 초조한 모습으로 신경질을 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나네요.

 

아무리 죽음의 조라지만 1위가 가장 유력했던 스페인의 탈락, 그리고 4위로 평가되었던 파라과이의 진출.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충격적이었죠. 물론, 이렇게 힘들게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나이지리아와 파라과이는 16강에서 각각 덴마크와 프랑스에게 무릎을 꿇고 탈락하고 맙니다. 그랬기에 스페인이 느낀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컸을지도 모르겠네요.

 

2002년 한-일 월드컵 F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나이지리아, 스웨덴

제가 기억하고 있는 월드컵 역사 속에서 이름값만 놓고 봤을 때 최악의 죽음의 조라고 볼 수 있는 2002년 당시 F조의 조편성입니다. 전통의 강호인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아프리카 최강국으로서 지난 대회 16강 탈락의 아픔을 씻고 자존심을 세우려 했던 나이지리아, 그리고 94년 월드컵 4강에 빛나는 스웨덴까지. 이들 4팀이 그대로 4강에 올라가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로 대단한 조였죠.

 

결국 조별 예선 6경기 가운데 3번이나 무승부가 나오는 사투 끝에 1 2무를 기록한 스웨덴과 잉글랜드가 16강에 올랐고,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맙니다. 승부가 갈린 3경기도 모두 1점차 승부였을 정도로 매 경기가 치열했고, 대단한 명승부가 펼쳐졌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도 스웨덴은 돌풍의 핵이었던 세네갈에게 16강에서 패했고, 잉글랜드도 8강에서 브라질을 만나 2-1로 졌습니다. 조별 예선에서 너무 많은 힘을 쏟은 탓일까요? 죽음의 조를 간신히 뚫고 올라간 팀들의 성적이 생각보다 시원찮다는 것은 또 하나의 징크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C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코트디부아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당시에는 두 개 조가 죽음의 조로 주목을 받았었죠. 그 중 하나는 결과적으로 나중에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를 비롯해, 체코, 미국, 가나가 속한 E조였습니다. 놀랍게도 가나가 체코와 미국을 연거푸 제압하면서 2 1패로 이탈리아(2 1)에 이은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었지요. 하지만 역시나 그보다는 C조가 조금 더 치열했던 것 같습니다. 혹독한 유럽 예선을 통과한 세르비아가 아르헨티나에게 6-0으로 패하는 등, 3패로 탈락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는 각각 나머지 두 팀을 제압하고 서로 간에는 0-0으로 비김으로써 2 1무로 조 1,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미 2경기씩을 치른 상황에서 16강 진출팀이 가려진 상황이라, ‘죽음의 조치고는 다소 싱겁게 결과가 나온 것 같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드록바를 앞세워 아르헨티나-네덜란드에 한치도 밀리지 않는 좋은 시합을 보여준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력이 워낙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네덜란드가 16강에서 포르투갈에게, 아르헨티나는 8강에서 독일에게 각각 패해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죽음의 조를 뚫고 올라온 것 치고는 좀 허무한 최후였죠. 그렇다 하더라도, 개막 직전으로 봤을 때 최고의 격전지구로 꼽혔던 것은 분명합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G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 북한

FIFA 랭킹 1위인 브라질, 그리고 3위인 포르투갈이 함께 포진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조는 죽음의 조라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빛나는 디디에 드록바를 앞세운 27위의 아프리카 축구 강국 코트디부아르는 얼마든지 예상 외의 일격을 날릴만한 발톱을 숨긴 팀이죠. 지난 월드컵에서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3-2로 이겼었고, 네덜란드-아르헨트나를 상대로도 각각 2-1의 좋은 승부를 펼쳤었습니다. 물론, 2대회 연속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다는 점, 그것도 이번의 브라질-포르투갈은 지난 대회의 아르헨티나-네덜란드보다 더 가혹한 대진이라는 점이 피눈물 나도록 억울하긴 할 겁니다. 이들 사이에 낀 104위 북한이 조금 초라해 보이긴 하지만, 북한의 기세도 만만치 않더군요. 과연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브라질과 포르투갈이 무난하게 16강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뚫고 올라간 팀의 최종 성적은 어떻게 될까요? 북한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더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번 월드컵 G조의 결과가 자못 궁금하네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SI.com, 조별경기결과=위키대백과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