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괴물이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기다려왔던 천재가 드디어 프로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주목 받아 마땅한 선수들이 올 시즌엔 속속들이 빅리그로 입성하고 있습니다. 2010년은 ‘대박 신인 풍년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돕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9일, 메이저리그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천재+괴물’ 투수 스티슨 스트라스버그(22, 워싱턴 내셔널스)의 데뷔전이 있었습니다. 과연 명성 그대로의 엄청난 투구를 선보이며,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는데요. ‘스트라스버그는 우리의 구세주다’라는 어느 워싱턴 팬의 치어풀이 현실로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 하나도 96마일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최고 100마일까지 찍히던 패스트볼, 시작과 동시에 변화구는 잘 던지지도 않고 스트레이트만으로 97-98-98을 찍기 시작하는데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습니다. 결정구로 사용한 81~84마일의 커브, 89~91마일 사이에서 형성된 슬라이더는 원래 가장 자신 있는 구질임에도 이날은 잘 사용하지 않더군요. 정말 충격적인 것은 92마일까지 찍혔던 체인지업이었죠. 슬라이더 비슷한 궤적으로 들어가길래 슬라이더인줄 알았는데, 손가락 모양이 체인지업이길래 어찌나 당황스럽던지요.
어쨌든 스트라스버그는 델윈 영에게 허용한 2점 홈런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피칭으로 7회까지 4피안타 2실점의 승리를 거뒀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4사구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 그리고 14개의 탈삼진! ‘선발 타자 전원 탈삼진’은 덤(?)이었죠. 스트라스버그가 기록한 14탈삼진은 워싱턴 내셔널즈의 프렌차이즈 기록이자, 1936년 저 유명한 밥 펠러가 15탈삼진을 기록한 이후 76년만의 신인 선수의 데뷔전 최고기록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스트라스버그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가 되던 마크 프라이어도 데뷔전 상대가 피츠버그였는데요. 당시 프라이어는 6이닝 4피안타(1홈런) 2볼넷 2실점 10탈삼진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었습니다. 그런데 그 것을 가볍게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스트라스버그, 대체 앞으로 어떤 괴물이 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군요.
워싱턴의 희소식은 저게 전부가 아닙니다. 스트라스버그의 데뷔전이 치러지기 바로 하루 전에 있었던 ‘2010시즌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스트라스버그의 타자 버전’이라 불리는 브라이스 하퍼(18)를 전체 1순위로 지명한 것이죠. 이 친구를 향한 평가도 ‘역대 최고 타자’였습니다. 중고교시절부터 워낙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던 하퍼는 메이저리그에 일찍 진출하기 위해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후 올해 나무 배트를 사용하는 2년제 대학리그로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막강 홈런포와 더불어 엄청난 성적을 거둔 후, 중퇴하고 이번 드래프트에 참여했습니다.
193cm-100kg의 스트라스버그와 같은 체격에 160m 이상을 날릴 수 있는 홈런 파워, 40홈런-40도루도 가능하다고 평가되는 빠른 발, 거기에 95마일을 찍는다고 알려진 엄청난 어깨까지. 그야말로 대표적인 5툴 플레이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2006년에 에반 롱고리아, 2007년에 데이빗 프라이스를 뽑은 탬파베이가 현재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워싱턴이 이들 두 명의 투타 ‘천재 괴물’을 통해 구단 역사상 첫 부흥기를 맛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선수에 대해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하고 있진 않습니다. 알버트 푸홀스를 능가할 것이라는 이야기에는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사실 하퍼는 미국 현지에서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선수입니다. 긍정적인 면에서의 극에 위치한 이들이 ‘역대 최고’ 운운을 하고, 그것만 국내에 전해지는 바람에 이 친구가 ‘야구계의 르브런 제임스’ 혹은 ‘투수로서 스트라스버그가 보여주는 완성도를 가진 타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솔직히 말해 아직은 지켜봐야 하는 선수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파워가 워낙 엄청난 선수고, 다행히(?) 포수가 아닌 외야수로 뛸 것 같기에 좀 더 성공의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퍼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지닌 전문가들도 그의 파워만큼은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재 하퍼의 타격 매커니즘상 메이저리그에서 높은 타율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퍼의 미래를 미니멈 팻 버렐(이 친구도 1라운드 1픽 출신입니다), 맥시멈은 라이언 하워드라고 생각합니다. 평균적으로 보면 아담 던 정도 되겠네요. 즉, 2할대 중후반의 타율로 30~50개 정도의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라는 뜻이죠. 물론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나게 대단한 거지만, ‘역대 최고’를 논하기엔 조금 이른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 정도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아직 보여주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역대 신인 선수들 가운데 최고 계약금은 작년에 1,510만불을 받은 스트라스버그였습니다. 타자로서는 2000년도 5픽으로 뽑혔던 마크 테세이라의 950만불이 역대 타자 최고액수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아마도 테세이라의 기록은 무난하게 깨질 듯 보이며, 스트라스버그의 기록까지 넘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스트라스버그가 한창 데뷔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당시, ‘원조 유망주들의 보고’ 플로리다 말린스에서는 또 한 명의 주목 받아 마땅한 선수가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훌륭하게 치렀습니다. 이 선수는 타자이고,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선수들 가운데 가장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선수 중 한 명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앞의 선수들이 ‘괴물’이라 불린다면 이 선수도 ‘괴수’ 정도는 될 것 같네요. 그 선수의 이름은 마이크 스탠튼(21)입니다.
필라델피아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우익수 겸 7번 타자로 출장한 스탠튼은 빅리그 첫 타석에서 곧바로 안타를 때려내는 등 5타수 3안타 2득점의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플로리다의 팬들은 또 한 명의 스타 탄생 현장을 지켜보면서 또 다시 희망에 부풀기 시작했지요. 어쩌면 스탠튼은 미겔 카브레라와 헨리 라미레즈의 뒤를 이어 플로리다 산 ‘대형 타자’의 계보를 잇는 선수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니까요.
89년생인 스탠튼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장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 뛰어 들어 2라운드에서 플로리다에 지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8년 곧바로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지요. 싱글 A에서 125경기를 뛴 스탠튼이 무려 39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겁니다. 사실 드래프트 당시만 하더라도 성장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기에 놀라움이 컸었죠. 153개나 되는 삼진을 당했지만 .293/.381/.611의 비율스탯은 충분히 훌륭했습니다.
스탠튼은 상위 싱글 A와 더블 A에서 뛴 작년에는 129경기에서 28홈런 타율 .255로 다소 주춤(?)했습니다. 하지만 올 1월 발표된 <베이스볼 아메리카(BA)>의 유망주 평가에서 스트라스버그와 제이슨 헤이워드(21, 애틀란타)에 이어 당당히 3위에 랭크되었죠. 특히 파워 점수에서는 라이언 하워드 이후 실로 오랜만에 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하며 파워히터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올 시즌 그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었죠. 작년에 처음 접한 더블 A에서 다소 난조를 보였던 스탠튼은 올 시즌엔 52경기에서 21홈런 52타점과 더불어 .311/.441/.726의 환상적인 배팅라인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파워가 단순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하면서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았죠. 앞으로 100경기 가량이 남아 있는데, 최소 20홈런 이상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위에 랭크되었던 동갑내기 라이벌 헤이워드(10홈런 40타점 .270/.400/.510)가 이미 빅리그에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다소 늦은 출발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헤이워드보다 스탠튼의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고 있습니다. 헤이워드가 ‘만능형 타자’에 가깝다면 스탠튼은 ‘파워 특화형 타자’에 가깝지요. 라이언 하워드 스타일의 엄청난 홈런 타자가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많은 삼진은 피해갈 수 없겠지만, 비슷한 유형의 타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하워드급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싶네요.
이처럼 올 시즌에는 유독 좋은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투수들 중에는 스트라스버그의 훌륭한 라이벌이 되어줄 것으로 보이는 신시네티의 마이크 리크(23세, 5승 무패 2.22)를 비롯해 아직까지 1점대 방어율을 유지하고 있는 세인트루이스의 하이메 가르시아(24세, 5승 2패 1.47),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든든한 수호신으로 자리잡은 네프탈리 펠리즈(22세, 1승 1패 15세이브 2.67)가 특별히 눈에 띕니다.
아직은 부진하지만 볼티모어의 브라이언 매터스(23세, 2승 6패 5.10)도 눈 여겨 볼만한 선수들이죠. 게다가 마이너리그 통산 33승 6패 방어율 1.95라는 황당한 성적의 주인공인 매디슨 범가너(21세, 샌프란시스코)의 모습도 곧 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신시네티가 데려갔던 ‘쿠바 특급’ 아롤디스 채프먼(23)의 콜업도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요.
타자들 중에는 헤이워드와 스탠튼을 비롯해 디트로이트의 신인 듀오인 ‘거포’ 브레넌 보쉬(25세, 7홈런 29타점 .348/.395/.644)와 ‘호타준족’ 오스틴 잭슨(23세, 8도루 타율 .316)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통산 .333/.427/.542의 비율 스탯을 보여준 샌프란시스코의 특급 포수 유망주 부스터 포지(23)도 얼마 전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바로 어제(10일) 자신의 빅리그 첫 홈런을 신고하며 밝은 미래를 예고했습니다. 현재까지 11경기에 출장해 40타수 18안타로 타율이 무려 .450에 이릅니다. ‘제2의 마이크 피아자’로 손색이 없는 친구죠.
포지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클리블랜드의 포수 유망주 카를로스 산타나(24)도 빅리그 승격을 기다리고 있으며, 피츠버그의 차세대 3루수 페드로 알바레즈(23)의 이름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2010시즌은 여느 해에 비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매우 우수한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의 세대교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죠. 90년대에 등장했던 슈퍼스타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가운데, 이들 새로운 얼굴들이 써나갈 메이저리그의 역사가 무척 기대가 되는군요. 팬의 입장으로서 새로이 커나가는 신인 선수들을 지켜본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입니다. (^^)
// 카이져 김홍석[사진=SI.com,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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