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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경험 많은 호랑이도 피하지 못한 ‘우승의 저주’

by 카이져 김홍석 2010. 9. 22.
KIA 타이거즈의 몰락이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9월을 시작할 때만해도 4위의 가능성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롯데가 10 5패로 고공비행하며 4위를 확정 짓는 동안, KIA는 뒷심 부족에 시달리며 6 8패에 그치며 승률이 더 떨어지고 있다. 지난 시즌 후반기의 압도적인 기세로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던 타이거즈가 올해는 전혀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지난 가을 V-10을 달성한 호랑이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까지 몰렸을까. 사실 알고 보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년도 우승팀이 이듬해 갑작스럽게 포스트시즌에도 나가지 못하고 추락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82년 원년 우승팀 OB(현 두산)가 이듬해 승률 5위로 수직 추락한 것을 비롯하여, 83년 우승팀 해태( KIA)가 이듬해 5, 90년 우승팀 LG 92년 우승팀 롯데는 이듬해 각각 6위에 그쳤다. 95년 우승팀 OB는 이듬해 4할에도 못 미치는 성적으로 꼴찌로 추락하여 가장 극적인 반전을 보인 팀으로 역사에 남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우승 직후 찾아온 후유증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3년간 2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일궈낸 김성근 SK 감독은 우승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우승을 하려다 보면 그 과정에서 결국 선수들이 지칠 수밖에 없다. 진정한 강 팀이 되려면 우승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특히 우승했다고 현실에 안주하여 더 이상 노력하지 않거나, 전력보강에 소홀하면 그 후유증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다.”

 

올 시즌 KIA의 부진에 대해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했다. “지난해 KIA는 외국인투수들과 김상현이 거의 다 책임졌다고 봐도 된다. 근데 이 선수들이 부진하거나 부상에 시달리면서 팀 전력이 그대로 추락했다. 우승직후 이렇다 할 전력보강도 없었다. 심지어 우리보다 선수층이 두터운 메이저리그에서도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그 멤버 그대로 다음 시즌을 맞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승은 선수나 감독도 물론이지만, 구단 차원에서 더 많은 계획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고 지적했다.

 

김성근 감독은 실제로 시즌이 끝난 이후에 오히려 더 부지런한 행보를 보였다. 매년 시즌 후 선수육성과 전력강화에 동분서주했으며, 구단에 전력보강을 요청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한 노력과 철저한 사전준비가 SK를 장기간 강팀으로 건재하게 만드는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KIA가 처음부터 우승전력이 아니었다는 평가도 있다. 2009년의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은 사실 철저하게 준비된 우승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변수와 행운이 맞아떨어진 이변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KIA는 우승을 차지한 전 시즌인 2008년 겨우 6위에 그쳤었고, 다시 한해 전에는 아예 꼴찌를 기록했었다.

 

물론 기본적인 전력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고, 포스트시즌 정도는 노릴만하다고 평가 받기도 했지만, 1년 만에 갑자기 우승을 차지하리라 기대한 팬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예상을 넘어선 외국인 선수들의 대활약과 유망주들의 각성, 그리고 김상현의 깜짝 트레이드 효과, 거기에 한국시리즈 7차전의 기적 등이 어우러지며 기적적인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1년 만에 KIA 선수들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지난해 KIA 전력의 핵심선수들 중에서 올 시즌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는 양현종과 이용규 정도뿐이다. 그들을 제외하면 김상현, 최희섭, 나지완, 유동훈, 윤석민, 로페즈 등 지난해 우승의 주역이었던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돌아가며 부상과 부진의 늪에 허덕였다. 구톰슨과 장성호, 이재주 등은 팀을 떠났다.

 

지난해에 비하여 눈에 띄는 전력보강 요소는 없었던데 비하여, 주축 선수들의 갑작스러운 동반부진은 빈약한 선수층에 치명타를 안긴 셈이다. 타이거즈는 해태시절 9번이나 우승한 경험이 있지만, KIA로 바뀐 후에는 첫 경험이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프런트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위기상황에서 드러나곤 했던 타이거즈만의 강인하고 끈끈한 색채가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시즌 중반 16연패의 악몽에 허덕일 때나, 8월 중요한 고비마다 승부처를 넘지 못하고 무릎을 끓은 것은 전력의 차이보단 집중력의 문제라는 평가다. 라이벌 롯데가 홍성흔의 부상공백 이후 오히려 위기의식을 느끼고 선수단이 똘똘 뭉친 것과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타이거즈는 이제 오히려 5위 자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최근 6 LG와의 2연전에서 모두 패하는 바람에 양 팀의 승차가 1.0게임으로 줄어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1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KIA(현재 59)가 시즌 최종전을 승리한다고 해도, LG(현재 56)가 남은 5경기 중 4경기에서 이긴다면 순위는 뒤바뀌고 만다. 올 시즌 LG와의 상대전적에서 6 13패로 크게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타이거즈에게 필요한 것은 의미 없는 순위 싸움보다는, 파란만장한 한 시즌을 거치며 잃어버린 타이거즈 야구만의 색깔을 되찾는데 있지 않을까. 지난 일요일 경기 이후 KIA는 무려 일주일의 휴식을 거친 후 26일 경기에서 한화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그 경기에서 KIA가 유종의 미를 거두며 내년 시즌을 향한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 지가 궁금하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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