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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공갈포 빅3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22.


흔히들 야구에서 ‘공갈포’라고 하면 크게 두 종류의 선수를 떠올린다. 하나는 평소에는 잘하다가 중요한 순간만 되면 방망이가 허공을 수놓는 타자, 또 다른 하나는 정교함이 부족해서 타율은 별 볼일 없는데도 무지막지한 파워로 제법 많은 홈런을 쏘아 올리는 타자.


예전에 홈런이 자주 나오지 않던 시절의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자주 사용했고, 박찬호로 인해 메이저리그가 대중화 된 후로는 후자의 의미로 더욱 자주 쓰이는 편이다. 특히나 요즘은 타율 낮고 홈런 많고 삼진 많이 당하는 선수들이 그렇게 불리는 편이다.
 

겉은 멀쩡한 데 속은 비어있는 중국식 과자를 보고 흔히들 속된 말로 ‘공갈빵’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공갈포라는 단어 속에는 ‘실속이 없다’라는 뜻이 포함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팀 배팅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매 타석마다 힘이 팍팍 들어간 풀 스윙을 일삼는 일부 타자들의 모습은 팬들의 속을 태우기 일쑤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는 속이 꽉 찬 공갈포들이 존재한다. 외모나 타격 스타일은 전형적인 공갈포지만, 공갈포 답지 않은 장점들을 한둘씩 가지고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몇몇 선수들. 그 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위력을 뽐내는 타자 3명을 소개해 본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좌타자다.



▷ 짐 토미(37, 시카고 화이트삭스)


첫 번째 주인공은 얼마 전 통산 500홈런(현재 503개)을 기록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주포 짐 토미다. 사실 토미는 공갈포라 불리기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281이라는 통산 타율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종의 공갈포라 불리는 건 오로지 삼진 개수 때문이다.


토미가 500홈런을 돌파했다는 사실을 주요 기사로 크게 보도가 되었지만, 그 보다 한 달 앞서서 통산 2000삼진을 돌파한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7년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토미의 통산 삼진은 현재까지 2034개, 역대 3위의 기록이다.


1위는 ‘미스터 10월’ 레지 잭슨이 2597개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고, 그 뒤를 새미 소사(2303개)가 따르고 있다. 소사가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 시즌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이기에, 연간 150개의 삼진을 기록하는 토미가 그 자리를 위협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2001년에 기록한 185삼진은 아메리칸 리그 역대 2위(1위는 1987년 롭 디어의 186개)의 기록이었으며, 리그를 옮긴 2003년에도 182개의 삼진을 당했다. 2005년을 부상으로 59경기만 출장하는 바람에(59삼진) 깨지긴 했지만 그 전까지 10년 연속 100개 이상의 삼진을 당한 삼진계의 절대 강자 중 한명이다.


물론 토미는 삼진으로 쉽사리 흠집을 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타자가 아니다. 에이로드가 2년 동안 10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최고 타자로 군림하던 2001년과 2002년 당시에도 합계 101개의 홈런로 그 뒤를 맹추격하며, ‘순수한 타격만 놓고 본다면 토미가 에이로드보다 위다’라는 평가를 전문가와 팬들로부터 받았던 그다.


매니 라미레즈가 떠난 뒤 만년 2인자 자리에서 벗어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대표하는 타자가 되었고, 그 뒤에도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거쳐 지금의 화이트삭스에 이르기까지, 그는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슬러거 중 한명으로 꼽힌다.


또한 1542개의 볼넷은 역대 19위(현역 3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한다. 물론 토미 유형의 풀스윙 타자들은 투수들이 한방을 걱정해 ‘볼넷으로 내보낸다 하더라도 홈런을 허용치 않겠다.’라는 생각으로 투구하기에 볼넷이 많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매년 100개 이상의 볼넷을 얻어내며 .409의 통산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는 토미의 선구안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올해는 42홈런 109타점으로 화이트삭스 타선을 아메리칸 리그 최강으로 이끌었던 작년에 비해 다소 부진하지만, 여전히 31홈런 90타점(88볼넷 126삼진)으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500홈런을 넘어서 600홈런에 도전하는 토미, 어쩌면 그는 600홈런을 달성할 즈음해 통삼 삼진 기록도 깨버릴지 모른다.



▷ 아담 던(28, 신시네티 레즈)


이 선수야 말로 전형적인 공갈포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라 할 수 있다. 2할 5푼이 채 되지 않는 통산 타율(.248),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100개 이상의 볼넷을 얻으며 메이저리그에서 타율과 출루율(.381)의 편차가 가장 큰 선수가 바로 아담 던이다.


또한 2003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40홈런을 돌파한 메이저리그 유일의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던 역시도 그를 대변하는 가장 큰 요소는 삼진. 배리 본즈의 아버지인 바비 본즈의 30년 넘게 묶은 기록(1970년 189개)을 갈아치운 단일 시즌 최다 삼진 기록(2004년 195개)의 주인공이며, 역대 2위의 기록(2006년 194개)도 던의 것이다.


풀타임 6년차에 불과한 던이 현재까지 기록한 삼진은 무려 1091개, 이대로 간다면 10년쯤 후엔 레지 잭슨(혹은 짐 토미)의 통산 기록을 넘볼 수 있을 전망이다. 벌써 현역 선수 중에는 3배나 되는 경력을 자랑하는 게리 셰필드(1035개)를 제치고 38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던에게도 전혀 공갈포 답지 않은 장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풋볼로 단련된 주루 플레이다. 보통 공갈포하면 큰 몸집에 느린 발, 무지막지한 풀 스윙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던 역시도 장대한 체구(198cm 110kg)를 자랑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달리는 것에 재능이 있다. 발이 빠르다기 보다는 감각이 뛰어난 편.


통산 도루 성공률도 76%(75번시도 중 57번 성공)로 나쁘지 않은 편이며 높은 출루율을 바탕으로 한 통산 득점(620개)이 타점(572개)보다 더 많은 독특한 거포다. 이 선수가 주로 배치되는 타순이 3번이 아니라 4번 혹은 5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놀라운 수치다. 여타 거포들과 달리 던은 경기 막판에 주자로 나갔다고 해서 대주자로 교체되는 일이 없다.


타격 스타일상 앞으로도 던의 정확도가 나아질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아마 은퇴 시점이 되어서도 2할 6푼 미만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팬들로부터 ‘던이 3할 치면 무조건 MVP다’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타고난 파워와 선구안을 자랑하는 아담 던, 앞으로 빅리그를 대표하는 영양가 있는 공갈포로 10년 이상 군림할 것으로 보인다.



▷ 라이언 하워드(28, 필라델피아 필리스)


동갑내기인 던보다도 3년이나 늦게 빅리그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미 하워드는 모든 면에서 던을 능가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해 58홈런 149타점으로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한 이 선수는 마크 맥과이어 이후로 가장 뛰어난 파워를 자랑하는 선수다.


데뷔 이후 최단 기간(325경기-종전 기록 385경기)만에 100홈런을 돌파한 하워드는 이미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한명이다. 주루 플레이에 있어서만큼은 던보다 확실히 뒤처지지만(사실은 뒤처지는 정도가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수준 이하다), 정확도와 파워에 있어서만큼은 한수 위라는 평을 듣는 선수다.


하지만 3할을 칠 정도로 뛰어난 정교함을 갖춘 선수라 보기는 어렵다. 때문에 지난 시즌에 기록한 .313의 타율은 모든 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들었었고, 아니나 다를까 올해는 .265의 타율에 그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42홈런 123타점으로 홈런-타점 부문에서 리그 2위에 올라 있어 얕볼 수 없는 영양가를 자랑한다.


홈런이 많다고 하지만 타율이 낮은 하워드가 그만큼 타점이 많은 이유는 그가 찬스에 강했기 때문이다. 주자가 없을 때는 .237의 타율과 15홈런에 그치고 있지만, 주자만 나가면 타율이 .279로 껑충 뛰고 무려 27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다. 2아웃의 득점권 상황에서는 .351/.534/.905라는 환상적인 배팅라인을 자랑한다. 이것이 바로 하워드가 여타 공갈포와 구별되는 점이다.
 

하지만 올해 하워드는 또 하나의 의미에서 던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5월 중순 가벼운 부상으로 15경기 가량을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136경기를 출장한 하워드가 지금까지 당한 삼진은 무려 190개. 이러한 페이스라면 남은 8경기에서 던의 기록을 돌파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상 최초로 200삼진의 주인공이 될 위험이 있다.


지난 2000년 시카고 컵스는 새미 소사가 사상 최초로 4년 연속 170삼진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시즌 막판 6경기에서 일부러 그를 라인업에서 제외시키는 배려를 해주었다. 하지만 올해의 필리스는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지구 우승(또는 와일드카드)을 쟁취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 하워드를 쉬게 해줄 상황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200삼진의 멍에를 뒤집어써야만 할 상황. 하워드 정도의 영양가를 자랑하는 타자라면 삼진 개수가 큰 흠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 타석의 3분의 1가량을 삼진으로 물라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팀을 포스트 시즌에 올려놓는다면 200삼진이 마냥 부끄러운 기록만은 아닐 것, 마지막까지 물러나지 않는 그의 투혼을 한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