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창립 총회가 열린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2월 11일에 열리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한 해의 야구를 마감하는 프로야구 최대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야구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에게 상을 주고, 기분 좋게 새해를 준비하는 기분 좋은 자리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골든글러브 시상에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모호한 후보 선정 기준과 투표인단의 원칙 없는 수상자 선발이 주된 이유였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고작 8개 구단밖에 없는 상황에서 왜 굳이 ‘후보 선정 기준’이라는 것을 만들어 논란을 부추기는지 알 수가 없다.
지난달 29일, KBO는 올해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후보 선수 명단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할 한 선수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올 시즌 한화 이글스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해 팬들 사이에서 유력한 골든글러브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최진행(25)의 이름이 외야수 부문 후보에 누락되어 있었던 것이다.
골든글러브는 원래 그 이름 그대로 원래는 최고의 수비수에게 시상하던 상이었다. 하지만 1984년부터 ‘베스트10’과 통합되면서 그 의미가 바뀌었다. 골든’글러브’임에도 지명타자 부문이 추가됐고, 그때부터 우리나라의 골든글러브는 각 포지션에서 타격과 수비를 모두 종합하여 가장 뛰어난 선수를 뽑는 상이 되었다.
따라서 그 후보를 선정하는 기준도 타격 성적이 주가 되고 있다. 올 시즌 외야수 부문의 골든글러브 후보 자격은 ‘88경기 이상 수비로 출장한 선수 가운데 규정타석을 채우고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다. 따라서 올 시즌 타율이 .261에 불과했던 최진행은 후보에조차 오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 최진행은 올 시즌 장타력을 뽐내며 32홈런 92타점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홈런은 이대호에 이어 리그 2위, 타점도 전체 5위였다. 8개 구단의 중심타자들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친 거포가 바로 최진행이다. 그런 선수가 골든글러브 후보에조차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올 시즌 외야수 부문의 골든글러브는 김현수(두산)와 김강민(SK)이 사실상 두 자리를 예약한 가운데 박한이(11홈런 .301/.413/.454), 이종욱(66득점 30도루 .312), 이용규(74득점 25도루 .307), 손아섭(85득점 11홈런 .306) 등이 남은 한 자리를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최진행이 후보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아예 논란의 여지가 없었을 수도 있다. 타율과 출루율 등이 조금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모든 외야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장타력을 보여준 최진행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가장 높았던 선수가 아예 후보에도 들지 못한 것이다.(24홈런 97타점의 최형우도 타율 때문에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대체 이 모호한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현대 야구에서 타율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타율보다 좀 더 중요한 스탯들이 새롭게 재조명 받으며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옳겠다. 타율보다는 출루율이나 장타율이 훨씬 더 중요한 지표임이 각종 자료를 통해 증명되기 시작했고, 선수들 역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록을 꼽으라고 하자 타점과 출루율을 1,2위로 꼽았다. 더 이상 타율 1위에게 ‘타격왕’이라는 칭호를 붙이기 애매할 정도로 타율이 가진 의미가 작아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골든글러브의 후보 선정에는 타율이 가장 주된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일부의 예외를 두는 융통성조차 발휘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야구는 끊임없이 발전해가고 있는데, KBO의 인식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 ‘후보’라는 것도 참 모호하기 그지없다. MVP나 신인왕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왜 굳이 ‘후보 선정’이라는 과정이 필요한지도 알 수가 없다. 꼭 그렇게 매번 시상식마다 후보를 뽑을 필요가 있을까?
우리나라의 프로야구 구단은 8개, 각 팀에서 해당 포지션을 책임지고 있는 주전 선수들도 많아야 8명이다. 굳이 후보를 뽑지 않아도 이들 중에서 누가 골든글러브를 받을 자격이 있는 후보는 각 포지션별 2~3명 정도로 자연스럽게 압축된다. 제대로 된 기준도 없이 후보를 선정해 억울하게 탈락한 선수들을 만드느니, 투표인단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이 후보 선정의 과정이 일부의 ‘무지한 투표인단’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투표인단은 올 시즌 프로야구를 취재한 기자단과 중계를 담당한 방송사 PD, 아나운서, 해설위원 등 미디어 관계자 39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이것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숫자다. 그리고 저들 중에는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특히 여자 아나운서)도 제법 포함되어 있다.
올 시즌 SK의 박정권은 한국시리즈에서 외야수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많았다. 어쩌면 그것만 본 일부의 투표인단은 박정권의 이름을 외야수 부문에 적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각 포지션의 후보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정말 그런 코미디 같은 장면을 제법 자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포수 부문의 수상자로 홍성흔의 이름을 적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저 ‘후보’라는 것이 투표인단의 편의를 위해 선정되었다면, 그것은 더더욱 어이 없는 일이다. 프로야구의 가장 중요한 시상인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을 가리는 투표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선수의 각종 기록과 포지션 정도는 줄줄 꿰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메이저리그에서 MVP와 사이영상, 신인왕의 투표권은 양대리그를 합하여 총 60명만이 가지고 있다. 30개 팀의 담당 기자(혹은 언론사)들 중 가장 명성이 높고 공신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들이 2명씩 선정되어 투표권을 행사한다.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는 아예 각 팀의 코칭스태프가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이름 높은 야구전문기자나 코칭스태프가 투표권을 가지고 있기에 후보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야구전문기자’가 아니다. 아직 저변이 그렇게까지 넓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다른 스포츠를 아예 배제하고 오직 야구만 전담하는 야구전문기자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저 399명의 투표인단 가운데 공신력 있는 표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유명한 선수가 이름값 하나로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외국인 선수가 무시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작년에 안치홍이 신명철을 제치고 2루수 부문에서 2위를 기록한 것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최악의 코미디였다. 이렇게 ‘무지한 투표인단’을 위해 후보를 선정하다 보니, 이번처럼 정작 자격 있는 선수가 억울하게 후보에서 제외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런 식으로 거듭되는 개그에 팬들은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후보 선정 과정에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골든글러브의 자격 자체가 애매하다. 정규시즌 성적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 요소가 부가적으로 가미되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러니 올해도 ‘우승 프리미엄’이니 ‘금메달 효과’니 하는 것들이 거론되고 있다. 대체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될 수 있는 정확한 자격 기준은 무엇일까?
이러니 매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있을 때쯤이면 팬들 사이에서 수많은 의문과 불만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의 야구팬들은 과거와 다르다. 팬들이야 말로 현장의 발전하는 야구에 가장 잘 호응하고 있으며, 더불어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 고리타분한 탁상행정에 그치고 있는 KBO의 높은분(?)들 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응하고 있다.
발전 없는 KBO와 무분별하게 선정된 투표인단, 그리고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억울하게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선수들. 올해도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끝난 후의 뒷맛이 그리 개운치는 않을 것 같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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