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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사직구장의 ‘아주라’ 문화, 올바른 것일까?

by 카이져 김홍석 2011. 1. 10.

대한민국에서 가장 야구 열기가 뜨겁기로 소문난 부산 사직구장은 직접 참여하는 응원문화의 재미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미 사직구장은 단순한 야구장으로서가 아닌 부산을 대표하는 하나의 관광명소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야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남다른 부산 시민들답게 사직구장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장면들도 많다. 신문지나 비닐봉지를 이용한 아기자기하고 조직적인 응원,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만 관중들이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 한 목소리로 응원가를 열창하는 장관, 감정표현이 강하고 직설적인 부산의 분위기에 걸맞게 걸쭉하고 해학적인 사투리로 펼치는 응원구호들은 야구를 보는 재미를 더욱 맛깔스럽게 해주는 사직구장만의 고유한 야구장문화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뭐든 지나치면 오히려 모자란 것만 못하다고 했다. 종종 사직구장의 응원문화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필요 이상의 지나친 열정과 일방적인 성향으로 인하여 부작용이 나타난 경우도 여러 차례가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바로 아주라문화가 있다. “아이들에게 줘라는 말의 부산 사투리식 표현인 아주라는 사직구장에서 유래한 독특한 야구장 문화 중 하나다.

 

아주라는 원래 긍정적인 의미에서 시작됐다. 관중석으로 날아온 파울볼이나 홈런볼을 어른이 잡았을 경우, 주변에 있던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근처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 공을 주라고 외친다. 요즘도 야구장에서는 관중석으로 공이 날아올 때면, 그걸 잡기 위해 여러 사람이 뒤엉키며 몸싸움까지 벌이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래도 모양새가 나빠지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라문화는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른은 아이에게 기분 좋게 양보해줘서 좋은 것이고, 공을 받은 아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훗날 미래의 야구선수나 야구팬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상부상조다.

 

하지만 훈훈한 미담도 당사자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경우일 때나 가치가 있다. 야구장에서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고 싶은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우연히 잡은 공이 귀중한 홈런볼이라도 된다면 당사자에게는 평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감동이 될 수도 있다. 경기장에서 잡은 공을 집에 있는 아이나 조카에게 가져다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감동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강요에 의하여억지로 빼앗겨야 한다면? 아이에게 주느냐 어른에게 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누구라도 기분이 썩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웃자고 시작한 일이 죽자고 싸우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해 사직구장에서 지인들과 경기를 관람하다가 우연히 홈런볼을 주웠다는 A씨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운 좋게 내가 앉은 자리 앞으로 공이 떨어졌다. 근데 공을 잡자마자 주변에서 일제히 아주라~’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야구장에 자주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홈런볼을 주울 기회도 흔치 않기에 솔직히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근데 공을 안 준다고 주변에서 갑자기 야유가 쏟아졌다. ‘그깟 공 하나를 가지고 치사하게 군다고 뒤에서 욕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내가 남이 주운 공을 뺏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불쾌했다. 아무리 공 하나라지만, 내 의지도 아니고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총만 안든 강도의 심보와 다를 게 뭔가"

 

실제로 아주라 문화가 가지고 있는 일부 폐해는 부산팬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사직구장을 찾는 젊은 팬들의 경우, 아주라가 발단이 되어 주변 관중들과 시비가 붙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20년째 롯데 자이언츠의 골수팬이라는 B씨는 좋은 취지에서 비롯된 건데, 요즘 가끔 이걸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공을 잡은 사람 앞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실실 웃으며 공 달라고 시키는 사람들도 가끔 있더라고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죠.

 

정말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으면 부모가 직접 야구배트나 공을 하나 사다 주는 게 나을 텐데... 심지어 애가 어른이 공을 안 준다고 욕을 하거나, 그것 때문에 다른 어른과 시비가 붙어서 싸우는 사람들도 종종 있더라고요.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건데, 그런 건 진짜 좀 아닌 것 같아요.”하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직구장의 아주라 문화가 최근 방송을 통하여서 여러번 화제에 오르며 인터넷에서도 네티즌들 사이에 찬반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아주라에 대하여 말이 많다 보니까 몇 년 전에는 니해라’(니가 가져라)라는 말이 잠깐 유행한적도 있었다고 한다.

 

B씨는 이에 대하여 일종의 반작용인데, 모두 사직구장만의 독특한 집단적 응원열기가 강하다 보니 벌어지는 해프닝이죠.”라고 설명했다. “아주라는 사직구장에서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다른 경기장에서도 종종 유행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단점도 있지만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았으면 합니다.”

 

사직구장의 응원문화는 대부분 참여하는 이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들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획일화되고 단일화하여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요는 그런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얼마나 융통성 있게 그것을 향유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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