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단 서울 SK 나이츠와 프로야구의 LG 트윈스. 모기업도, 종목도 전혀 다른 두 팀은 알고 보면 쌍둥이 형제처럼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대한민국 최대의 도시 서울을 연고지로 하고 있으며 굴지의 재벌그룹이 모기업을 맡고 있다는 점. 매년 스타급 선수들이 넘쳐나는 ‘호화군단’으로 불리며, 선수영입에서 관객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
하지만 그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팀 성적은 우승은 고사하고 수년째 플레이오프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며 바닥을 기고 있다는 점. 해당 프로리그에서 팀워크가 실종된 대표적인 ‘모래알 군단’의 대명사로 통한다는 점. 그리고 ‘투자 대비 비효율 1위’와 ‘감독들의 무덤 1위’를 다투며 각종 악명을 도맡고 있다는 점 등이 소름 끼칠 만큼 닮은 꼴이다.
▲ SK 농구와 LG 야구의 평행이론, “누가 더 막장인가?”
2002년은 SK 농구와 LG 야구가 각각 해당 리그에서 마지막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오른 해였다. 여기서 두 팀은 나란히 준우승에 그쳤다.
SK 농구단은 01~02시즌 결승에 올라서 대구 오리온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렀으나, 주축들의 부상공백을 이기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했다. LG 야구단은 그 해 한국시리즈에 올라 최강전력의 삼성과 치열한 한판승부를 벌였으나, 6차전에서 이승엽과 마해영의 연이은 홈런을 맞고 한국시리즈 우승 자리를 내주었다. 당시 SK와 LG를 제친 두 팀은 나란히 대구를 연고로 한 팀들로, 소속 리그에서 각각 역대 챔피언 시리즈 첫 우승이라는 공통점도 있었.
공교롭게도 SK 나이츠와 LG 트윈스는 바로 이 2002년 이후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SK 나이츠는 황금시대를 합작했던 간판스타 서장훈과 최인선 감독을 잇달아 떠나 보내며 ‘암흑시대’에 접어들었다. SK는 최근 8시즌 동안 7번이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고, 4강 이상의 성적은 한번도 거두지 못했다. 07~08시즌 단 한차례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2전 전패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팀 전력이 약하거나 투자에 인색한 적은 없었다. 감독도 이상윤, 김태환, 김진, 신선우(현재) 등 프로무대에서 내로라하는 명장들이 거쳐갔고, 선수로는 방성윤, 주희정, 김태술, 김민수, 황성인, 김효범, 리온 트리밍햄, 게이브 미나케, 테렌스 섀넌, 사마키 워커 등 토종과 외인을 막론하고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들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적은 늘 하향곡선을 그렸다. 매년 반복되는 주전들의 부상악령과 조직력의 부재라는 약점은 늘 SK 농구의 발목을 잡았다.
2009-10시즌에도 국가대표 3인방인 방성윤, 김민수, 주희정에 NBA리거 사마키 워커까지 가세한 초호화라인업을 구성했으나, 팀 창단 이후 최다인 13연패의 굴욕을 겪으며 역대 최악인 16승 38패(8위)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LG 야구는 어떠했는가. 90년대에만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이자 스타군단으로 꼽혔던 LG는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끝으로 팀을 재건해가던 명장 김성근 감독을 구단 고위층이 ‘LG가 추구하는 야구와 맞지 않는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내쫓은 이후,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특유의 ‘신바람야구’를 하겠다고 능력 있는 감독과 선수들을 쫓아낸 LG에는 이후 바람은 바람이되 평지풍파만 끊지지 않았다. LG는 지난 8년간 LG는 우승은 고사하고 포스트시즌조차 올라가보지 못해, 지금도 ‘김성근의 저주’라는 놀림을 받고 있다.
90년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상훈, 김재현, 김동수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상당수가 원치 않게 유니폼을 벗거나 구단과 불편하게 등을 돌리며 팬들의 반발을 자아냈다. 대신 팀 전력을 강화하겠다고 데려왔던 홍현우, 진필중, 박명환 등이 한국 프로야구 ‘FA 잔혹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바람에, LG 구단은 가뜩이나 좋지 못한 팀 성적에 ‘먹튀의 전당’이라는 불명예까지 보너스로 득템해야만 했다.
8년간 최고 성적이 5위였고, 꼴찌도 두 번이나 기록했다. 지금도 LG 팬들 사이에서 ‘금기어’로 꼽히는 이광환, 이순철 감독에 이어 현대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김재박 감독마저도 모두 LG를 재건하는데는 실패했다.
#두 팀의 2002년 이후 정규시즌 성적(2010년까지)
LG 트윈스(야구) 6-6-6-8-5-8-7-6
SK 나이츠(농구) 10-7-7-9-7-5-8-8
▲ 팀워크? 우린 모래알을 써요. 난 소중하니까요.
공교롭게도 SK 나이츠와 LG 트윈스 모두, 같은 모기업의 다른 종목인 SK 야구단과 LG 농구단의 경우는 반대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는 지난 4년간 한국시리즈 우승 3회, 준우승 1회를 기록하며 2000년대 최고의 프로야구 팀으로 인정받고 있다. 농구의 창원 LG 세이커스는 비록 우승경험은 없지만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매년 농구부문 전국 관중동원 순위 1,2위를 다툴 만큼 인기구단으로 자리잡았다. 매년 막대한 투자에도 바닥을 기는 모기업 형제구단들의 성적표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부분이다.
또한 SK 나이츠-LG 트윈스와 같이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는 ‘지역 라이벌’인 서울 삼성 썬더스와 두산 베어스는 공교롭게도 라이벌이 암흑기를 보낼 동안 매년 플레이오프 진출을 빼먹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삼성 농구단(8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과 두산 야구단(최근 4년연속 포스트시즌)은 나란히 해당 종목에서 2000년대 최다 포스트시즌 진출팀으로 꼽히며 대조적인 행보로 한지붕 라이벌의 자존심에 상처를 안기고 있다.
프로스포츠 계에서는 막대한 투자에도 늘 바닥을 기는 두 팀의 초라한 행보를 빗대어 농구에서는 ‘SK병’, 야구에서는 ‘LG병’이라는 용어를 쓰곤 한다. 엇박자를 내는 구단의 비효율적인 투자,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운용전략의 부재,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선수들의 개인주의 성향 등이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2011년을 맞이하는 LG 야구와 SK 농구는 각각 기로에 서 있다. LG 야구는 2010년 박종훈 신임감독 체제를 출범시켰고, 더불어 이병규, 이택근 등 대형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여 전력을 보강했음에도 또다시 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여기에 주축 선수들의 항명과 인터넷 설화 등 각종 팀 내 분란까지 겹치며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했다.
LG야구는 올해 대대적인 팀 개혁을 선언하고 이를 악물었다. 구단주가 직접 “앞으로 외부 FA 영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신연봉제를 도입하여 연봉고과에서의 서열주의를 혁파하고 선수들간 내부 경쟁을 유도하는 등 여러 가지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SK 농구는 올해도 ‘혹시나’ 했지만 아직까지는 ‘역시나’의 행보를 답습하고 있다. 올 시즌 기존의 주전급 선수들이 모두 잔류했고, FA로 김효범을 영입한 데 이어, 최우수 외국인선수 출신인 테렌스 레더까지 영입하여 또다시 우승후보로 거론됐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팀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성윤과 김민수가 오랜 시간 부상으로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복귀하자마자 팀 성적은 연패에 빠져들며 추락하고 있다. 스타급 선수들을 끌어 모으느라 잠재력 있는 유망주들을 팔아 넘겨 벤치는 빈곤해졌고, 샐러리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전 한두 명이 부상이라도 당하면 팀 전체가 추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냈다. 팀 사정이 이렇다보니 선수들도 팀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하기보다는 자신의 기록을 먼저 챙기기 일쑤였다.
“서울에 살면서 SK 농구와 LG 야구를 동시에 응원하는 스포츠 팬만큼 불행한 이는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덧 강산이 한번 변할 시간이 흘렀건만, 좀처럼 달라질 기미를 보여주지 못하는 팀을 응원해야 한다는 것은 스포츠를 즐기기보다는 고행이나 정신수양에 가까운 일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 팬들의 가슴에 스크래치를 남겼다면 이제는 무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때도 되었다. 과연 SK 농구와 LG 야구가 팬들에게 우승의 기쁨을 돌려줄 날이 31세기 이전에는 올 수 있을까?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LG 트윈스, SK 나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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