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행운아일 것입니다(Today, I consider myself the luckiest man on the face on the earth).”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야구영웅 루 게릭(뉴욕 양키스)이 자신의 은퇴식에서 양키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중들 앞에서 했던 이 명언은 아직까지도 많은 야구팬들 가슴을 뜨겁게 만들곤 한다. 루 게릭의 은퇴경기가 있던 날, 팬들은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을 때 은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게릭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으며, 양키스에 6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선사한 우상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불치의 병으로 남아 있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일명 루게릭병)’으로 갖은 고생을 다 했던 게릭은 이듬해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13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철마(The Iron Horse)’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의 죽음은 야구계의 큰 안타까움이었다.
그랬던 양키스가 최근 또 다른 영웅을 떠나 보냈다. 1990년대 양키스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프랜차이즈 스타 앤디 페티트(39)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 데이빗 콘, 로저 클레멘스, 그리고 페티트
구단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기로 소문난 스타인브레너 가(家)에서 양키스를 인수하면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FA 선수 싹쓸이다. 어느 순간부터 양키스는 팜 시스템(Farm system)에 의지해 유망주를 육성하기 보다는 즉시전력감이 될 수 있는 외부 인사의 영입에 주력했다. 그랬기에 양키스 마이너리그에서 자체적으로 키워낸 페티트를 향한 양키스 팬들의 사랑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2라운드에 양키스에 지명된 페티트는 4년이란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23살이 되던 1995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어린 나이에 큰 무대에 서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었지만, 그는 데뷔하던 해에 12승 9패, 평균자책점 4.17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당당히 팀의 주력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신인왕 투표에서도 3위에 오른 페티트를 향해 양키스 팬들의 기대는 엄청났다.
그리고 2년차 시절의 페티트는 그런 팬들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1996시즌에 페티트는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20승 고지를 돌파(21승 8패 3.87)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것은 물론, 그 기세를 몰아 양키스의 18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후에도 페티트는 데이비드 콘, 로저 클레멘스, 올란도 에르난데스 등 당대의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끌기도 했다.
2004년부터는 자신이 존경하던 로저 클레멘스를 따라 휴스턴으로 잠시 떠나 있기도 했지만, 3년 후인 2007년에 양키스로 다시 복귀했다. 그는 양키스에서 활약한 13년 동안 단 한번도 빠짐 없이 모두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는 등 총 203승을 수확했다.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페티트보다 많은 승수를 기록한 선수는 단 2명, 이만하면 페티트가 양키스 역사를 빛낸 최고의 에이스 중 한 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큰 경기에 강했던 꾸준함의 대명사
아쉽게도 페티트는 사이영상을 수상한 적이 없다. 두 번이나 20승을 거뒀고,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5위 안에 든 적이 5번이나 되지만, 정작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페티트의 기량이 리그를 압도할 정도로 최정상급이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꾸준함 만큼은 ‘역대급’이었다.
페티트는 16년 간의 선수생활 동안 240승을 거뒀고, 이것을 평균내면 정확히 15승이란 숫자가 나온다. 또한, 페티트는 데뷔 후 479경기에 선발등판 했는데, 이 또한 평균 30회에 이른다. 즉, 페티트는 16년이란 긴 세월 동안 매년 30경기에 선발등판하여 15승을 따낸 투수였던 것이다. 이처럼 언제나 건강하게 리그 정상급의 기량을 뽐낸 선수가 바로 페티트였다.
또한, 그는 유독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 조 토레 전 양키스 감독으로부터 ‘빅 게임 피처(big game pitcher)’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포스트시즌 통산 19승 10패의 뛰어난 성적(평균자책점 3.83)을 기록 중이며,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승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선수생활 동안 무려 8번이나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랐으며, 그 중 5번은 우승을 차지했다.
페티트는 지난 시즌에도 양키스의 2선발로 활약하며 21경기에 선발등판해 11승 3패 평균자책점 3.28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포스트시즌에도 2경기에 등판해 모두 7이닝 2실점의 좋은 피칭을 선보였다. 당연히 양키스 구단은 시즌 종료 후 계약기간이 끝난 페티트를 향해 꾸준히 재계약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페티트는 시즌 중반에 부상을 당하면서 현역 생활 연장과 은퇴 사이에서 끊임 없는 고민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동료들은 이미 그의 은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양키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200만 달러의 거액 연봉을 제시하며 현역생활을 이어갈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쯤 되면 선수로서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페티트는 그러한 미련을 완전히 접고 구단에 은퇴 의사를 전달했다. 서른 아홉이라는 그의 나이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1~2년 정도 더 현역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만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음을 감안해 보았을 때, 그의 은퇴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의 복귀를 기대하고 있었던 양키스 구단은 당장 올 시즌 선발로 쓸 수 있는 새로운 투수를 구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90년대 중후반 또 한 명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데릭 지터와 더불어 양키스 왕조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던 앤디 페티트. 그와 지터가 있었기에 ‘무적함대’ 양키스는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여 다시금 리그를 호령하는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의 영원한 홈구장인 뉴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릴 화려한 은퇴식을 기대해 본다.
<앤디 페티트(Andrew Eugene Pettitte)>
커리어 통산 평균자책점 3.88, 240승 138패, 2251 탈삼진
포스트시즌 승수 역대 1위(19승)
포스트시즌 탈삼진 역대 공동 2위(173개)
양키스 소속 투수 탈삼진 역대 2위(1,823개)
양키스 소속 투수 승리 역대 3위(203승)
역대 좌완투수 승수 공동 13위(240승)
역대 좌완투수 탈삼진 공동 16위(2.251개)
// 유진 김현희 & 카이져 김홍석[사진=MLB.com]
P.S. 사실, 페티트의 커리어에는 하나의 커다란 오점이 남아 있다. 그는 스승이자 친구였던 클레멘스의 권유로 스테로이드를 한동안 사용했고, 그것은 결코 손 대지 말았어야 할 금단의 영역이었다. 스테로이드 사용 사실을 솔직하게 시인하면서 이후로는 많은 질타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용서해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단, 본문에서는 편의상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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