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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프로야구 속 전설적 ‘맞짱’의 재구성

by 카이져 김홍석 2011. 3. 5.

프로스포츠는 종종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된다. 총 대신 야구공과 방망이, 글러브를 가지고 서로를 이기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전투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승부에 몰입하다가 그만 진짜 전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투수와 타자의 대결은 종종 실제 맞짱이 되고 만다.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간의 신경전은 보통 4가지 패턴으로 이어진다. 빈볼-말다툼-몸싸움-집단 벤치 클리어링이다. 보통 발단은 빈볼에서 시작되는데, 투수가 빈볼을 던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개 상대에 대한 암묵적인 견제나 비신사적인 플레이에 대한 응징의 의미가 강하다. 보통 그 대상은 상대팀의 수위급 타자인 경우가 많다, 이유야 어쨌든 타겟이 된 타자는 열받을 수밖에 없다. 성질이 급한 선수들의 경우, 종종 말로 하는 이의제기 따위는 생략하고 곧장 투수를 향해 실전 모드로 돌입하기도 한다.

 

보통은 포수가 나서서 제지하거나 심판이 빈볼을 던진 투수를 퇴장시키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되지만, 한번 감정이 격해지면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기서 벤치 클리어링은 팀워크의 응집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기싸움이다. 몸싸움을 꺼리거나 벤치에서 나오지 않은 선수는 벌금을 물기도 한다. 보통은 실제 충돌이 아니라 상징적인 제스쳐로 그치는 편인데, 여기서 감정적으로 한발 더 나아가면 그때는 진짜로 리얼 난투극이 되는 것이다.

 

사실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적당한 순의 기싸움이나 신경전은 쇼맨십 차원에서라도 팬들에게 즐거운 볼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칠 경우 심각한 폭력 사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야구계의 범위가 좁은 편이고 선후배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서는 보통 정도가 넘어선 폭력사태는 잘 일어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항상 예외란 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그라운드 집단 난투극 사건은 1990 6 5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졌다.

 

삼성과 OB(현 두산)가 맞붙은 7회초 OB 투수 김진규가 삼성 강기웅에게 빈볼성 초구를 던진 것이 발단이 되어 양팀 선수들이 마운드에서 뒤엉키면서 무려 22분이나 경기가 중단됐다. 결국 강기웅, 김종갑, 박정환(이상 삼성), 조범현, 김태형, 김진규(이상 OB) 6명이 퇴장 당했는데, 특히 폭력 정도가 심했던 강기웅과 OB 이복근은 형사입건 되는 불명예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11 싸움, 소위 말하는 맞짱도 빠질 수 없다. 2003년 아시아 홈런신기록에 도전 중이던 국민 타자이승엽(당시 삼성)과 서승화(LG)가 그 주인공이다. 9회초 LG 타자 장재중과 삼성 투수 라형진이 몸쪽 공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이전부터 감정이 좋지 않았던 양팀 선수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때 이승엽과 서승화가 맞닥뜨렸는데, 이미 이승엽은 이전 타석에서 몇차례 서승화가 던진 빈볼 때문에 서로 감정이 좋지 않던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수비 따위는 내팽개치고 타격일변도로 나선 두 선수는 멱살을 잡고 5~6차례 펀치를 주고받았지만 애석하게도(?) 둘 다 명중률은 그리 좋지 못했다. 주변 선수들이 뒤엉키면서 11 대결이 오래가진 못했지만, 공교롭게도 이승엽은 며칠 뒤 잠실에서 서승화와 다시 만나 홈런을 치며 복수에 성공했다.

 

2007년 잠실 라이벌 두산과 LG를 대표하던 봉중근과 안경현의 뒤집기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두산이 4-0으로 앞선 5회초 봉중근은 연이은 실점에 평정심을 잃고 두산 안경현의 머리를 향해 직구를 내질렀다. 간신히 공을 피한 안경현은 빈볼이라고 판단하고 쏜살같이 마운드 쪽으로 내달렸다.

 

선배의 격한 애정공세에 봉중근도 온몸으로 화답했다.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내지른 안경현의 펀치를 슬쩍 피함과 동시에 어깨로 번쩍 들어서 빈대떡 뒤집듯 그라운드에 내다 꽂아버린 것. 본능적인 유도 기술 구사 이후 봉중근도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라운드에 나동그라졌으나, 때마침 양팀 선수들이 제때 몰려나가며 사태를 진정시킨 덕에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외국인 선수도 난투극의 역사에 빠질 수 없다. 2001년 롯데와 삼성의 경기에서 7회말 삼성 배영수의 몸에 맞는 볼로 진루한 호세는 다음 타자 훌리안 얀까지 또다시 옆구리에 공을 맞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마운드로 돌격했다. 여유만만한 미소를 띄고 있던 배영수는 호세의 기습에 깜짝 놀라 뒷걸음치다가 펀치 한방에 저항도 못하고 고꾸라졌다. 호세에게는 그라운드의 파이터 이미지를, 배영수에게는 희대의 굴욕이 자료화면으로 남은 사건이었다. 호세는 2006 SK 신승현과도 빈볼 시비로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SK에서 활약했던 브리또는 2004년 문학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빈볼을 맞은 이후 친정팀이기도 한 삼성 덕아웃에 배트를 들고 난입하여 물의를 일으켰는데, 빈볼을 지시한 것이 바로 당시 삼성 김응룡 감독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흥분해 싸운 사례는 있었지만 덕아웃까지 침투한 사례는 처음이었다.

 

아예 한국시리즈 우승의 향방을 바꿔놓은 역사적인 집단 몸싸움도 있다. 2007 SK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3차전, 당시 시리즈 전적 2-0으로 앞서고 있던 두산은 3차전에서 SK에게 연속실점을 허용하며 흔들렸고, 두산의 두 번째 투수 이혜천이 연거푸 SK 김재현의 다리를 향해 빈볼성 공을 던지면서 집단몸싸움으로 확대됐다.

 

이미 2차전에서 빈볼 시비로 한번 신경전을 펼쳤던 두산 김동주와 SK 채병용이 충돌하면서 선수들의 몸싸움은 과열양상을 띠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몸싸움에 앞장섰던 두산의 주전 선수들이 이때를 기점으로 컨디션 이상을 드러내면서 시리즈의 흐름이 뒤바뀌었고, SK는 결국 3차전 이후 4연승으로 역전 우승을 달성한바 있다.

 

<맞짱 탐구생활 보너스 해외야구 편>

 

1. 하급자 코스 : 박찬호 vs 팀 벨처

- 뒷감당 못할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마라!

 

몸싸움을 벌이더라도 발을 쓰거나 흉기가 될 물건을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야구장의 룰이다. 상대가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도 이유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여론의 후폭풍이다. 또한, 접근전에서는 발을 함부로 날리다가 빗나가기라도 하는 순간엔, 그야말로 상대방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십상이다. 집단 몸싸움이라도 났을 경우에는 단체로 밟히기 딱 좋은 상황이다.

 

박찬호가 좋은 예다. 1999년 애너하임 에인절스( LA 에인절스)와의 경기, 타석에 선 박찬호는 희생번트를 댄 뒤 1루로 달려가다 베이스 바로 앞에서 상대 선발 투수 팀 벨처에게 태그아웃을 당했는데, 벨처가 태그하는 과정에서 공으로 박찬호의 가슴을 밀치며 감정 섞인 액션을 취했다.

 

박찬호가 항의하자 벨처는 비아냥거리는 인신공격성 욕설을 내뱉었고, 이에 발끈한 박찬호가 팔꿈치로 선빵을 날린 후 곧이어 이단옆차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제대로 뻗지 못한 발차기는 벨처의 옆구리를 스쳤고, 중심을 잃은 박찬호는 그대로 넘어지며 밑에 깔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주위 사람들이 달려들어 말린 탓에 큰 불상사는 피했지만,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는데 야구장에서 금기시되는 발차기를 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두고두고 욕을 먹어야 했다. 박찬호는 이후 한동안 원인 모를 슬럼프에 허덕이며 발차기 후유증을 톡톡히 치렀다.

 

2. 중급자 코스 : 놀란 라이언 vs 로빈 벤츄라

-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라!

 

1993년 텍사스 레인저스의 노장 투수 놀런 라이언(당시 46)은 은퇴를 앞두고 갑자기 심술이 났던지 아들뻘이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타자 로빈 벤츄라(당시 26)에게 빈볼을 던졌다. 본디 위-아래 없기로 유명한 프로내셔널 한 미국 문화답게 대선배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벤츄라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대로 콧김을 내뿜으며 라이언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상대는 늙고 이빨이 빠졌다 해도 엄연한 사자였다. 라이언은 겁 없이 품 안에 날아드는 아들뻘의 새파란 후배를 두팔 벌려 영접하며 왼팔로는 가볍게 목을 끌어안고 오른손으로는 애정이 듬뿍 담긴 사랑의 꿀밤 5연타로 선사했다. 20년의 세대차를 무색하게 만든 라이언의 전설적인 무용담은 미국의 중년들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각인시키며 전성기시절 메이저리그를 풍미한 강속구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반면 은퇴를 앞둔 레전드의 격한 환대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정글 같은 세상의 이치를 호되게 체험했던 벤츄라는 훗날 그의 야구인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희대의 굴욕사진과 함께 메이저리그 난투사의 가장 화려한 한 페이지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웃음거리로

 

3. 상급자 코스 : 이승엽 vs 가와카미

- 최고의 복수는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복수에 있어 가장 최고의 경지란, 물리적으로 상대에게 앙갚음을 하는 것보다 실력으로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2007년 요미우리 시절 일본 투수들의 집중견제에 시달리던 이승엽은 진정 위대한 복수가 무엇인지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줬다.

 

나고야돔에서 열린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상대 에이스 가와카미 겐신은 이승엽을 상대로 연이어 고의적인 빈볼을 던졌다. 이승엽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140km짜리 위협구였다. 보통 선수라면 빈볼에 대하여 발끈하여 평정심을 잃거나, 두려움에 몸쪽 공에 방망이가 나가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승엽은 빈볼에 항의하지도, 평정을 잃지도 않았다. 오히려 빈볼 이후 한복판으로 들어온 가와카미의 4구째 커브를 노려 쳐서 우월 투런 홈런을 만들어냈다. 가와카미와 일본야구에 대한 통쾌한 응징이 담긴 비거리 150m짜리 대형홈런이었다. 가와카미는 망연자실했고, 이승엽은 홈 플레이를 밟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쿨하게 손을 흔들었다. 야구장에서 빈볼에 대처하는 가장 세련되고 멋진 복수였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S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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