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느덧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시즌 전망을 해보고, 4강 진출팀을 꼽아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네요.
2009년엔 글을 통해 4강 진출팀으로 SK, 두산, 롯데, KIA를 꼽았고, 작년에는 두산, 롯데, 삼성, SK를 4강 진출팀으로 예상했었습니다. 최종 순위는 제 예상과 많이 달랐지만, 어쨌든 상위 4팀을 맞추는 데는 모두 성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도 욕심이 생기더군요. 어떻게든 4강 진출팀만큼은 정확하게 맞춰서 ‘족집게 도사’라는 소리를 한 번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정말 모르겠네요. 좀 더 정확한 예상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 조사와 분석을 했지만, 결론은 ‘정말 진짜 도저히 모르겠다’입니다. 넥센과 한화를 제외한 6개 팀은 모두 4강 진출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심지어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SK와 삼성이 동반 탈락한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지요.
그래도 꿋꿋하게 정확하게 4강을 한 번 가려볼까 합니다. 예상이 어렵다고 해서 피해가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니까요. 차라리 겁 없이 예상을 남기고, 6개월 후 장렬하게 전사(?)하겠습니다. 족집게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소신 있게 밀고 나가는 모습 정도는 보여드리고 싶으니까요.
개인적인 전망으로 올 시즌 프로야구 판도는 3강 3중 2약의 구도로 봅니다. 3강에는 두산, 롯데, KIA, 3중에는 SK, 삼성, LG, 2약으로는 한화와 넥센을 꼽고 싶네요. 하지만 ‘강’과 ‘중’의 차이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합니다.
두산 베어스 – 많은 전문가들이 두산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혜천의 복귀는 선발진에 힘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보이고, 2미터 장신의 더스틴 니퍼트는 시범경기를 통해 자신이 구위와 제구력을 겸비한 ‘진국’임을 증명했습니다. 새로 영입한 라미레즈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작년의 왈론드를 생각하면 ‘못해도 본전’은 되겠지요. 타력이야 원래부터 강했던 데다, 기존 멤버에 윤석민과 김재환까지 가세하면서 한층 깊이 있는 타선 구축에 성공했습니다. 무엇보다 김현수와 김동주라는 두 천재의 존재감이 가장 큰 힘이죠. 손시헌이 주축이 된 수비는 말할 것도 없고, 불펜은 SK-삼성과 더불어 최강을 다투는 수준입니다. 니퍼트와 라미레즈(혹은 새 용병)가 작년의 히메네스+왈론드 만큼만 해준다면, 이혜천이 가세하고 이재우가 돌아올 두산은 올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임에 틀림없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 롯데를 3강 중 하나로 꼽은 이유는 작년에 비해 마이너스 요인 없이 플러스 요인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로이스터 감독이 떠난 것을 손실이라고만 할 수는 없죠. 그가 떠나면서 롯데의 야구가 작년보다 재미없어질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승부에 있어서는 좀 더 효과적인 모습을 보일 테니까요. 특히 투수교체 타이밍! 타력에서는 가르시아의 공백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이며, 브라이언 코리가 기대 이상으로 드러난 만큼 선발진의 위력도 무시무시합니다. 고원준이 가세한 불펜도 작년보단 나아질 것이 분명하죠. 시범경기에서 롯데가 팀 타율 1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팀 방어율(2.50)도 전체 1위였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비야 원래부터 불안했으니 그걸 마이너스 요인에 포함시킬 이유도 없고요. 그리고 스프링캠프에서 수비에 많은 공을 들였고, 실제로 시범경기에서 종종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긴 했으나, 정착 투수들의 비자책점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코리-사도스키-송승준-장원준의 선발진이 특별한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한다면 우승도 가능한 전력입니다.
KIA 타이거즈 – 윤석민-양현종-로페즈-서재응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이 너무나 환상적이죠. 새 외국인 선수 트레비스 브레이클리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인데, 일단 시범경기(10이닝 1실점)에서의 모습은 합격이었습니다. 타선의 경우 이범호 하나가 새로 가세했을 뿐이지만, 그 이범호가 KIA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약점을 해소할 수 있는 카드임을 감안하면 그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KIA의 가장 큰 문제는 3루 수비의 불안, 그리고 3번 타자의 부재였으니까요. 성공-실패 여부에 관계없이, 일본 경험을 쌓은 선수들은 복귀 후 최소 1~2년은 아주 좋은 활약을 펼쳤고, 이범호 역시 그럴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무엇보다 한화 시절처럼 2할7~8푼의 타율로 20개 안팎의 홈런만 기록해주더라도 KIA에는 매우 큰 힘이 될 겁니다. 최희섭과 김상현의 파워도 무시무시하고요. 만약 김주형과 신인 홍건희가 1군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2년 만의 우승도 가능해 보입니다.
SK 와이번스 – 시범경기의 성적에 큰 의의를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그 순위가 1등이나 꼴찌라면 좀 다릅니다. 지난 10년간의 시범경기 결과를 종합해본 결과 시범경기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적은 단 2번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승을 차지한 적은 없었죠. 물론 SK 김성근 감독은 결코 시범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꼴찌를 하게 되었는지는 아주 중요하죠. 글로버가 여전히 불안하고 매그레인이 검증되지 않은 이상, 김광현의 존재는 SK 선발진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 김광현이 아직 안정적인 피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선발요원의 수가 부족하다는 점이 SK의 약점입니다. 나주환이 입대하고 김재현이 은퇴한 타력 역시 지난해만 못하죠. 불펜과 수비력은 여전히 리그 정상급이겠지만, 선발진과 타력이 불안하다면 제아무리 김성근 감독이라도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행여나 박경완의 부상이 장기화된다면, SK의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은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요. 김성근 감독의 존재 때문에 삼성-LG보다는 4강 진출 확률이 더 높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 성적에 근거하지 않은 감독의 교체는 항상 나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올해의 삼성도 마찬가지. 선동열 감독이 선수의 기용 방식과 양준혁의 거취 문제로 인해 팬들과 갈등을 빚긴 했지만, ‘승리 방정식 적용’에 있어서는 일가를 이룬 인물이었죠. 오승환이 건강하게 복귀한 삼성의 불펜은 더욱 강해졌으나, 그걸 운용하는 사람은 선동열이 아닌 류중일입니다. 과연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라이언 가코는 간단히 ‘가르시아의 우타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 중심타선의 좌우 균형을 맞춰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선택이지만, 약점이 파헤쳐지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SK에서 포기한 카도쿠라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가는 상황에서 올 시즌 부활을 노리는 윤성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듯 보입니다. 가코가 폭발하고 차우찬-카도쿠라가 작년의 활약을 이어가고 윤성환-오승환이 부활한다면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도 노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많지 않아 보이고, 류중일 감독이 선동열의 유산을 제대로 써먹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4강에서 탈락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LG 트윈스 – 시범경기 동안 13경기에서 12홈런을 터뜨리며 70득점, X-존 폐쇄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막강 화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점이 49점으로 득-실점 마진이 큰데도 7승 6패에 그쳤다는 것은 아직 LG가 ‘이기는 야구’를 하는데 익숙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저 49실점 가운데 무려 11점이 에러 이후의 비자책점이었습니다. 오지환이 여전히 수비에서 약점을 노출하고 있고, 황금 외야진의 포지션 정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주력 선수들 중 일부가 계속해서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고요. 그래도 타력은 강한 편이라 걱정이 없지만, 문제는 투수력이죠. 두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봉중근은 믿을만하고 김광수도 마무리로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지만, 그들을 뒷받침해줄 국내 투수들의 부재가 아쉽습니다. 박현준이 풀타임 선발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 만큼 우려도 되고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위해선 선발이든 불펜이든 어느 한 쪽은 확실해야 합니다. 리즈와 주키치의 활약상에 따라 9년만의 4강 진입이 걸려 있습니다.
한화 이글스 – 넥센보다 한화를 우위에 두는 단 한 가지 이유. 바로 류현진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외국인 선수들의 도움을 가장 못 받았던 만큼, 올해는 그보다는 나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김태완은 군에 입대했고, 최진행은 허리 통증으로 스프링캠프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이범호를 붙잡지 못한 무능한 구단의 선수 관리는 심각한 수준이며, 설상가상 장성호가 부상으로 시즌 초반 결장이 불가피해지면서 팬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시범경기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던 유창식이 2006년의 류현진만큼 해주길 바라는 것은 ‘로또’가 터질 확률만큼이나 낮아 보이네요. 올 시즌에도 한화의 모토는 ‘류현진에 의한, 류현진을 위한, 류현진의 야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넥센 히어로즈 – 겨울 동안 고원준이 롯데로 팔려갔습니다. 브랜든 나이트와 코리 알드리지가 작년의 번사이드-클락 보다는 잘해줄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고원준의 공백으로 인해 제로섬일 뿐입니다. 작년을 통해 경험을 쌓은 젊은 선수들이 올 시즌을 한층 원숙한 기량을 발휘하겠지만, 그 또한 현대 왕조의 유산이었던 노장 선수들(송지만, 이숭용)의 노쇠화로 인해 상쇄됩니다. 작년에 넥센에는 꽤 많은 깜짝 스타가 탄생했지만, 대부분 한두 달 정도 반짝할 뿐, 3개월 이상 그런 활약을 이어간 선수는 손승락뿐이었습니다. 올해도 김시진 감독의 마법이 단기적인 효과에 그친다면, 이번에야말로 넥센은 최하위를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P.S. 참고로 전 작년에도, 그리고 재작년에도 롯데를 3강 중의 하나로 꼽았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제 기대를 저버리고 4위에 머물더군요. 올해 롯데를 3강에 포함시킨 것은 제 나름의 이유가 뒷받침 된 분석 결과지만, 어쩌면 무의식 중에 드러나는 오기의 발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년에는 KIA를 3강(나머지는 SK, 롯데)으로 꼽았다가 정작 KIA 팬들로부터 ‘미친놈’ 소릴 들었고, 2010년에는 그 KIA를 빼고 롯데를 4강팀으로 분류했다가 ‘돌+아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작년에 전문가란 사람들 중에서 롯데를 4강권에 포함시킨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중요한 건 그런 일반적인 시선에 휩쓸리지 않는 ‘소신 있는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올해는 롯데가 저를 배신하지 않고 3강이란 평가한 제 소신에 화답해 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