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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대인배’ 빌 바바시에 대한 평가를 새로이 할 때?

by 카이져 김홍석 2008. 2. 14.

지난 <‘감독의 야구’와 ‘GM의 야구’> 편에서 설명했듯이 메이저리그는 단장(GM)의 야구다. 감독이 아니라 단장(GM)이 전체적인 틀을 짜고 한 시즌을 운영해 나간다. 때문에 팬들은 감독만이 아니라 단장의 능력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으며, 뛰어난 단장이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으로 오게 되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곤 한다.


이번 스토브리그에는 지난 십여 년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단장들 중 3명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애틀란타의 연속 지구 우승을 이끈 존 슈어홀츠, 그리고 스몰 마켓팀의 비애를 딛고 소속팀을 강하게 만든 세인트루이스의 월터 자케티와 미네소타의 테리 라이언이 바로 그들이다. 그 외에도 운영 철학은 다르지만 오클랜드의 빌리 빈 역시 매년 뛰어난 경영수완을 팬들 앞에 선보이고 있다.


이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단장이 또 한 명 있다. 현 필라델피아 단장인 팻 길릭이다. 2005년 에드 웨이드 현 휴스턴 단장의 후임으로 필라델피아에 부임한 길릭은 특유의 ‘마술’같은 팀 운영을 선보이며 2년 만에 팀을 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부임당시부터 지역 팬들은 길릭을 ‘구세주’라고 부를 만큼 신뢰를 보냈고, 길릭 역시 뛰어난 수완으로 2년 만에 멋지게 화답했다.


필라델피아에 부임하기 전, 길릭이 단장으로 있었던 팀은 시애틀 매리너스였다. 99년 말에 부임한 길릭은 시애틀의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2000년에는 켄 그리피 주니어가, 2001년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팀을 떠났지만 대신 가즈히로 사사키, 이치로 스즈키, 브렛 분 등을 잡으며 팀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2000시즌 와일드카드 획득에 이어 2001년 116승을 거두며 7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하자 길릭에 대한 찬사가 끝없이 쏟아져 나왔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팻 길릭은 2002년과 2003년 2년 연속 93승(승률 .574)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단장 직을 내려놓았고, 그 뒤를 이어 시애틀의 운영권을 쥐게 된 사람이 오늘의 주인공 빌 바바시다.


이미 메이저리그 팬들이라면 ‘대인배’라 놀림 받는 이 엉뚱한 단장의 이름을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불운(?)하고도 그 능력을 알 수 없는 단장은 지금껏 선수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팬들에게 놀림 받기 일쑤였다. 그의 비교대상은 다름 아닌 팻 길릭이었고, ‘적당한 돈을 써야할 곳에 잘 쓰는’ 길릭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보를 보였기에 팬들은 바바시의 존재 자체를 ‘재앙’처럼 여겼다.


부임하자마자 주전 유격수 카를로스 기옌과 에이스 프레디 가르시아를 트레이드로 내보냈지만, 현재 그 대가로 받아온 선수 중 전력에 보템이 되는 선수는 하나도 없다. 세이프코 필드의 드넓은 외야를 책임지던 중견수 마이크 카메론이 떠나자 당장 외야 수비에 공백이 생겼다. 이치로 한 명이 커버하기에 세이프코 필드의 외야는 너무나도 넓었다.


매년 포스트 시즌 컨텐더로 평가받았던 시애틀은 바바시가 부임한 첫 해인 2004년 63승 99패(.389)의 처참한 성적으로 지구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악몽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무엇보다 바바시가 돋보였던 것은 FA를 통한 선수들의 영입이었다. 한국의 팬들이 그에게 ‘대인배’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은 선수들에게 능력 이상의 터무니없는 금액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2004년을 끝으로 FA가 된 3루수 에드리언 벨트레과 1루수 리치 섹슨을 영입하면서 바바시는 각각 5년간 6400만 달러와 4년간 50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딜이 성사되자마자 시애틀의 팬 포럼은 수류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난리가 났고, 바바시를 성토하는 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 3년간 보여주었던 두 선수의 활약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06시즌을 앞두고는 제러드 워시번을 4년간 3750만 달러로 붙잡았으며, 워시번은 지난 2년간 도합 18승에 그치고 있다. 2007시즌을 앞두고는 개인 최다승이 11승에 불과한 미겔 바티스타에게 3년간 2500만 달러를 투자했으며 ‘한물 간’ 제프 위버에게 1년 계약으로 833만 불을 선물했다. 팬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특급 셋업맨이었으며 향후 마무리로도 쓸 수 있는 라파엘 소리아노를 애틀란타에 내어주면서 5선발로의 안정적인 활약도 기대할 수 없는 호라시오 라미레즈를 데려왔고, 그렇게 영입한 라미레즈는 지난해 7점대 방어율로 무너져 내렸다. 400만 달러의 연봉보조를 받기로 했지만 2년 간 1600만 불의 계약이 남아있던 호세 비드로를 워싱턴으로부터 받아온 것도 실수라면 실수다.


거기에 올해는 결코 엘리트급 투수라 할 수 없는 카를로스 실바를 영입하면서 4년간 48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일본까지 날아가서 구로다 히로키를 영입하려 노력했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급한 김에 질러버린 다소 황당한 계약이었다. 이럴 바에는 1년 전에 FA가 되어 캔자스시티로 떠난 길 메쉬(07시즌 방어율 3.67)를 잡는 것이 나았다.


시애틀은 2004년부터 3년 연속 5할미만의 승률을 기록하며 지구 최하위에 머물렀고, 바바시에 대한 평가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치로와 사이가 나쁘다는 이유로 마크 하그로브 감독을 시즌 중반에 내치는 사건도 있었다. 바바시에 대한 시애틀 팬들의 평가가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바바시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필요 이상의 금액을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영입한 선수들이 전혀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트레이드는 대부분 실패로 드러났지만 FA로 영입한 선수들은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것을 보여주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 시작했다.


사실상 FA로 영입한 선수들 중 합격점을 줄만한 선수는 계약 첫해였던 지난해 16승을 거둔 미겔 바티스타 밖에 없지만, 벨트레와 섹슨 등도 받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타격에서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 펠릭스 에르난데스, J.J. 풋츠, 브랜든 머로우, 호세 로페즈 등의 선수들이 바바시 체제하에서 착실하게 성장하며 팀의 중심 선수로 성장했고, 일본 출신 포수 조지마 겐지의 영입은 결과적으로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남을 듯 보인다. 이치로와 라울 이바네즈의 연장계약에도 성공했고, 최근의 에릭 베다드의 영입과정에서는 기대 이상의 수완을 보여주며 최소한의 출혈로 에이스급 투수를 잡는 데 성공했다.


2004년 3할 대였던 승률은 이후 지난해까지 .426-.481-.543으로 수직상승했다. 베다드-‘킹’ 펠릭스로 이어지는 원투펀치는 그 어떤 팀과의 대결도 두렵지 않으며, 거액을 투자한 3~5선발 요원 실바-워시번-바티스타도 나름대로 믿음직하다. 이치로와 이바네즈가 계속해서 좋은 타격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섹슨과 벨트레가 30홈런 100타점씩만 더해준다면 타선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올해 시애틀 매리너스는 당당한 플레이오프 컨텐더로서 시즌을 맞이한다. 2004년 한 때 최악의 상태였던 시애틀은 4년 만에 완전히 달라진 팀으로 전선에 서있다. 물론 팀 전체 페이롤은 엄청나게 높아졌지만, 그렇게라도 이기는 시즌을 보낼 수만 있다면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대인배’ 또는 ‘산타클로스’라며 팬들에게 놀림 받던 빌 바바시,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팬들을 놀래켜 줄 것인가. 올해가 끝난 후 바바시에 대한 팬들의 평가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바바시는 과연 자신에 대한 평가를 뒤집어 놓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