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의 인기 프로그램인 ‘두 분 토론’에서 멋진 개그 연기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개그우먼 김영희 씨가 곤욕을 치르고 있네요. 바로 24일 방송분에서 ‘롯데팬들의 응원문화를 비웃었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요, 저 역시 당시 개콘을 보면서 ‘으이구… 제대로 실수했네, 난리 나겠구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충분히 예상된 일이기도 합니다.
개그콘서트는 온 국민이 사랑하는 개그 프로그램이죠. 그리고 그 웃음의 코드가 단순한 말장난에서 그치지 않고, 시사와 문화를 넘나든다는 데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개콘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단순한 바보’ 그 이상인 경우가 많죠. 9시 뉴스나 100분 토론조차 하지 못하는 일을 개콘이 해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바로 24일 방송에서도 그런 소재가 하나 있었죠. 바로 ‘9시쯤 뉴스’에서 나온 신라호텔 한복금지 패러디였는데요. 관련 뉴스를 전해 듣고 분통을 터뜨렸던 국민들은 개콘의 그 장면을 보면서 매우 통쾌함을 느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3년 묶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에 온 몸이 짜릿하더군요.
하지만 이번 ‘두 분 토론’에서 소재로 삼은 사직구장의 응원문화 비하는 문제가 다르지요. 그건 명백한 실수입니다. 단지 롯데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잘못되지 않은 것, 혹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비웃음의 소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개그에 사용할 소재의 선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신라호텔 한복금지 패러디를 보면서 우리가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그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비난을 받는 ‘잘못된 행동’을 우스개거리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말은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동안 ‘두 분 토론’에서 사용된 소재들도 대부분 그러한 것들이었습니다. 과거의 ‘남녀불평등 사회’였던 우리나라에 잔재한 잘못된 인습들을 예리하게 꼬집거나, 겉과 속이 다른 일부 남성들의 잘못된 성에 대한 인식이나 행동들을 개그의 소재로 삼아 우스개거리로 만들었었죠. 그리고 그러한 개그는 여성들의 큰 호응은 물론, 대다수의 남성들 역시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소재로 사용되는 남성들의 행동이 결코 떳떳하지만은 않은 것이었기에, 남자들 역시 웃고 넘길 수 있었죠.
이처럼 틀린 것, 고쳐져야 할 것,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인식 속에 뿌리 박힌 잘못된 인식 등을 개그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모두가 함께 공감할 수 있고, 웃을 수 있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잘못을 행한 당사자들이며, 그럴 때 그들에게 우리가 던질 수 있는 말이 바로 ‘개그는 개그일 뿐 오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이번 ‘두분 토론’의 소재는 상황이 다릅니다. 신문지 응원과 주황색 쓰레기 봉지로 대변되는 사직구장의 응원문화는 잘못된 것이 아니죠. 오히려 다른 구단의 입장에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좋은 문화이며, 관광상품으로서도 각광받고 있는 훌륭한 응원문화입니다. 잘못되지도 않았고, 틀린 것도 아니며,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일도 아니었죠.
그런 응원문화를 억지스럽게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점. 이것이 바로 ‘두 분 토론’의 실수였고, 김영희 씨가 비난을 받고 있는 원인입니다. 적어도 이런 부분에서는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말이 적용될 수 없죠. 아니,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개콘에서 신라호텔 한복금지 사건을 패러디 하면서 정 반대의 시각을 드러냈다면 어땠을까요?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자랑하려고 안달이 났다니까. 굳이 한복 디자이너라는 거 티 내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호텔 뷔폐에서 한복을 입어야겠어? 웃기지도 않아~!”는 식으로 웃음의 코드를 잡았다면? 그랬다면 과연 사람들이 호응하며 웃었을까요? 그 때도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며 감싸줄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 패러디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방향으로 잡아, 잘못된 쪽에 일침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그 방향이 반대로 되었다면, 오히려 비난을 면키 어려웠겠죠.
이번 ‘두 분 토론’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은 거죠. 신문지와 쓰레기 봉지를 활용한 응원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바람직한 응원 문화죠. 그런데 그런 응원을 마치 ‘찌질하고 잘못된 문화’인 것처럼 매도하여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롯데팬들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치어리더와 관련된 부분까지는 좋았습니다. 거기서 만약 김영희 씨가 ‘지는 경기에서의 쓰레기 투척과 선수들을 향한 지나친 욕설’ 등을 소재로 삼아 야구장에서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일부 남성들을 비웃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명백히 잘못된 일이니까요. 그걸 개그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오히려 야구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방향이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말았죠. 잘못되고 틀린 것을 비꼬아 그것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개그라면 오해하면 안 되겠지요. 하지만 잘하고 있는 올바른 것을 비꼬아서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면, 그건 시청자의 오해 차원을 이미 벗어난 그들(개그맨)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김영희 씨 개인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 코너를 함께 짠 동료 개그맨과 프로그램 작가, 그리고 그것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PD들 역시 책임이 있습니다.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문제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 아닐 수 없네요.
일단 김영희 씨가 사과를 한 상황이니 더 이상 문제가 커지지 않고 원만하게 넘어갔으면 싶은 것이 솔직한 맘입니다. 무엇보다 앞날이 기대되는 한 개그우먼의 앞날이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망가지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겠죠.(솔직히 80년대의 김미화 이후로 이렇게 연기 잘하고 웃기는 개그우먼은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김영희 씨 역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사과를 했으면 합니다. 김영희씨가 욕을 먹은 이유는 ‘롯데팬들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문화를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죠. 단지 ‘광적인 팬들을 건드리는 바람에 더러워도 어쩔 수 없이 사과하는 모양새’로 이번 일이 마무리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또한, 이번 일을 지켜보는 다른 국민들 역시 이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히려 일부 언론이 ‘잘못 건드렸다’는 식으로 몰고 가면서, 상당수의 네티즌들이 거기에 동조하여 사건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많이 아쉽더군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개콘 캡쳐, 김영희 미니홈피, 롯데 자이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