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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우승보다 빛나는 김경문 감독의 꾸준함

by 카이져 김홍석 2011. 4. 28.

일상에서의 꾸준함은 흔히 과소평가 받는 덕목 중 하나다. 일에 있어서도, 연애에 있어서도 어쩌다 반짝 잘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만, 정작 기복 없는 늘 꾸준하게 잘하는 이들은 그것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탓인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양신양준혁은 선수생활 내내 ‘2인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물론 현역시절 내내 꾸준히 상위 클래스를 유지했던 선수이기는 하지만, 동시대를 풍미한 이승엽이나 이종범의 전성기에 비하여 확실한 최고 혹은 1인자로 불리기에는 늘 2%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양준혁은 은퇴하는 시점에서는 이들을 뛰어넘는, 역대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다. 전성기의 화려함을 놓고 보면 이승엽이나 이종범에 미치지 못하지만, 양준혁이 그들보다 더욱 빛날 수 있었던 단 한가지는 바로 꾸준함이었다. 누구도 양준혁보다 길고 오래, 그리고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1~2년 짧고 굵게 잘하는 것보다, 5~10년 이상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감독계의 소리 없는 양준혁에 비견할만하다. 김경문 감독은 최근 조용히 개인 통산 500승 고지를 돌파했다. 지난 23일 대전 한화전서 500승을 고지를 돌파한 김경문 감독은 28일 현재 프로통산 501(15 406)를 거두고 있다.

 

김영덕(전 빙그레), 김응용(전 해태), 김성근(SK), 강병철(전 한화), 김인식(전 두산), 김재박(전 현대) 이광환( LG) 감독에 뒤이어 감독 통산 8번째의 대기록이다. 김영덕(839경기), 김응용(907경기), 김재박(908경기)에 이은 역대 4번째 최소 경기 500승 기록 및 감독 데뷔 후 단일팀 500승이라는 대기록도 추가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쉬운 꼬리표가 달린 것은 이중에서 유일하게 우승경력이 단 한번도 없는 인물이 바로 김경문 감독이라는 점이다. 김경문 감독은 2004년 두산 사령탑에 오른 이래 한국시리즈에만 세 번이나 올랐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정규시즌 1위 역시 한번도 차지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승이 야구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김경문 감독이 부임한 이후, 두산이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리빌딩을 완수하며 성적과 인기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명문구단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은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할 대목이다.

 

사실 김경문 감독이 두산의 사령탑을 맡은 것은 어떤 면에서 우연이나 기적에 가까웠다. 수비형 포수 출신인 김경문 감독은 현역시절 스타플레이어도 아니었고, 원년을 제외하면 주전으로 나선 경험도 적었다. 은퇴 후 삼성과 두산의 코치를 역임하던 김경문 감독은 2003년 김인식 감독의 사퇴로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당시 두산이 눈독을 들인 감독후보는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마친 뒤 KBO 홍보위원으로 일하던 선동열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자진사퇴한 것도 구단의 의중을 읽고 선동열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동열은 은사였던 김응용 감독의 뒤를 이어 삼성의 사령탑을 선택했고, 궁여지책 끝에 두산은 코치였던 김경문의 감독승격을 택했다. 김경문 감독의 능력에 대한 신뢰나 검증보다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롯데의 수석코치로 갈뻔했었던 김경문 감독은 꿩 대신 닭으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뜻밖의 기회를 잡아 친정팀의 러브콜을 수락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한번의 선택은 김경문의 야구인생과 두산의 역사를 바꾸는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 사령탑을 맡은 첫 해인 2004년에 팀을 3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데 이어 2005년에는 한국시리즈에까지 올랐다. 부임 초기만해도 세대교체의 실패로 인한 선수단의 노쇠화 때문에 객관적 전력에서는 매년 하위권으로 평가받았지만, 김경문 감독은 특유의 선수단 장악력과 탁월한 용병술로 전력을 극대화시켰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을 기복 없는 강팀으로 조련시키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마련했다.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4시즌부터 지난 2010년까지 7년 연속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했으며, 2006년을 제외한 6번이나 두산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았다. 김경문 감독은 김응용 전 감독과 김재박 전 감독에 이어 한 팀에서 500승을 따낸 역대 3번째 감독이다. 프로야구 원년 선수로 활약했던 프로화 1세대이자,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으로서 역대 최고의 성공사례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록 프로에서는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김경문 감독에게는 김성근이나 김응용, 선동열 같은 명장들도 얻지 못한 올림픽 우승 감독이라는 커리어가 있다. 사실 그가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된 것도 처음 프로팀 감독을 맡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표팀은 당시 도하 아시안게임에서의 실패로 비난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유명한 감독들은 모두 대표팀을 기피하거나 고사하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꺼려하는 상황에서 정식 감독데뷔 4년차에 불과하던 김경문 감독은 고심 끝에 야구인의 책임감을 가지고 감독직을 수락했고, 본선에서는 예상을 깨고 금메달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낸 김경문 감독의 뚝심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김경문 감독의 야구스타일은 뚝심과 감의 야구로 요약된다. 한번 신뢰를 준 선수는 끝까지 믿고 맡기며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믿음의 야구를 펼치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한 경쟁과 책임감이 뒤따른다.

 

우직한 듯하면서도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특유의 어드밴쳐 정신도 김경문 야구의 특징이다. 데이터나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승부처에서 본능적인 직감에 따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지는가 하면, 화수분야구로 대표되는 두산의 선수육성 시스템은 변화와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김경문 감독의 결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온전히 감독이 경기를 지배하는 김성근이나 선동열 식의 관리야구와도, 선수들의 자발적인 능력을 극대화하는 김인식이나 로이스터 식의 야구와도 또 다른, 혹은 어쩌면 그 두 가지의 장점을 고루 갖춘 김경문 식의 야구는 그만의 매력으로 팬들을 매혹시키는 개성이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이미 그만의 방식으로 명장의 대열에 합류했다. 아직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의 은사인 김성근 감독도 환갑을 넘긴 지난 2007년에야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김성근이라는 명장에 우승 경력 여부는 어차피 덤에 불과했다. 아직 50대 초반에 불과한 김경문 감독에게도 기회는 수없이 많다. 그보다 오랜 시절 기복 없이 두산을 강팀으로 이끌고 있는 김경문 감독의 꾸준함이야말로 한두 번의 우승보다도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할 대목이 아닐까?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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