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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한국에서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산다는 것

by 카이져 김홍석 2011. 5. 6.

한국 프로야구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 야구인은 농담 삼아축복인 동시에 저주라는 표현을 썼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야구열기를 자랑하는 구도 부산, 그 연고팀의 수장을 맡는다는 것은 곧 성적에 따라 수많은 열성팬들을 아군으로 만들 수 있지만, 잘못하면 적군으로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삼성과 함께 프로야구 원년부터 단 한 번의 변화도 없이 자리를 지켜온 단 둘뿐인 구단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롯데 팬들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전국민이 축구전문가가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지만, 구도 부산의 야구팬들은날 때부터 야구전문가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상상을 초월한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요즘은 매 경기마다 감독의 전술과 선수들의 기량을 평가하는 지역 야구팬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극성팬이 많기로 유명한 롯데답게 성적이 안 좋을 때는 경기장에서 욕을 하는 것은 예사고, 감독들의 연락처나 주소를 알아내서 비난 문자나 협박성 편지를 보내는 일도 흔하다. 이러다 보니 팀 성적이 좋을 땐 천국이 따로 없지만, 그렇지 못할 땐 가차없이 비난의 칼날 위에 서야 하는 것이 롯데 감독의 자리다.

 

▲ 역대 롯데 감독들의 기구한 역사

 

흔히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감독을 가리켜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잘할 땐 최고의 대우를 받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받아야 하는 압박감과 후유증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롯데의 감독직도 이에 못지않다. 그래서인지 롯데 감독들의 수명은 짧은 편이었다. 프로야구 30년 동안 총 14명의 감독들이 이 자리를 거쳐갔다는데, 감독의 임기가 평균 2년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원년부터 프로야구 역사를 함께해온 삼성과 함께 감독을 가장 자주 교체한 팀도 롯데다.

 

롯데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지휘봉을 잡은 인물은 강병철 감독이다. 강병철 감독은 롯데 한 팀에서만 무려 세 번(2, 6, 12)이나 지휘봉을 잡는 진기록을 세웠고, 83년 첫 감독대행 시절까지 포함하던 무려 9년 가까이 롯데를 이끌었다. 롯데의 역대 감독들 중에 유일하게 우승(84, 92)을 팬들에게 선물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강병철 감독은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우승을 하는 과정에서 최동원(84), 염종석(92)같은 특급 투수들의혹사로 단명의 빌미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세 번째 임기였던 롯데에서의 마지막 2년간(2006~2007)은 극심한 성적부진과 선수단과의 불화 등으로 물의를 빚으며 불명예스럽게 결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롯데 감독 출신으로서 팬들 사이에 명예롭게 기억되는 인물이 많지 않다는 것은 롯데 역사의 아킬레스건이다. 단일 재임기간 동안 가장 오랜 시간 롯데를 이끌었던 7대 김용희 감독은 롯데의 프랜차이즈스타 출신으로 무려 4 7개월(93.11.20∼98.6.16) 동안 지휘봉을 잡았으나, 역시 끝내는 중도 경질되는 수순을 피하지 못했다. 3대 성기영 감독(1989), 5대 김진영 감독(1989), 9대 우용득 감독(2002) 등은 정식 감독 부임 이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된 단명 감독들이다.

 

특히 2000년대 롯데의 암흑기 시절은 감독들에게도 잔혹한 시간이었다. 특히 8대 고 김명성 감독(1999~2001)은 역대 프로야구 감독들 중 가장 비극적인 인물로 기억된다. 김명성 감독은 1999년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며 찬사를 받았으나, 2001년 성적이 추락하면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시즌 중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역시 고인이 된 임수혁과 함께 롯데 야구 사상 가장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반면 10대 백인천 감독은 부산 팬들 사이에서 지금도롯데 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다. 현역시절 한국야구계의 전설로 명성을 떨쳤던 백인천 감독이지만, 롯데에서는 극심한 성적부진과 함께 잦은 기행 및 돌출발언으로 논란의 도마에 오르며 팬들 사이에서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무리한 훈련으로 이대호의 무릎을 망가뜨릴뻔했던 일이나, 손민한의 트레이드를 시도하려다가 실패한 일, 시즌 중에도 골프 등 외유를 즐기며 선수단 관리에 소홀하면서도 야구의 신이 와도 지금의 롯데를 구원할 수는 없다.”는 등의 망언으로 롯데 팬들의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은 지난해까지 지휘봉을 잡았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로이스터는 2008년 부임 이후 7년 동안 하위권을 전전하던 롯데를 단숨에 포스트시즌으로 끌어올리며 일약 구도 부산의 구세주로 등장했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의 재임기간 동안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구단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가을잔치에 참여하며 부산의 야구역사를 새롭게 썼다.

 

물론 로이스터 감독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3년 연속 거듭된 단기전에서의 전술적 한계, 공격에 비하여 불안한 수비력, 부족한 훈련량으로 인한 기본기 논란 등은 로이스터 감독이 극복하지 못한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o Fear’로 대표되는 선이 굵고 호쾌한 공격 야구 철학, 선수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메이저리그식 선수단 운영 등은, 열정적인 구도 부산의 야구정서와 잘 들어맞으며 인기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했다.

감독 중심의 관리야구에 길들여져있는 한국프로야구에 또다른 스타일의 야구철학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신선함이 팬들을 사로잡은 원동력이다. 로이스터 감독 재임 시에는 그의 야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로이스터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고 팀을 떠나자마자 올 시즌 롯데가 하위권으로 추락하며 그의 빈 자리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롯데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양승호 감독은 제14대 감독이다. 전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음에도 재계약에 실패했으니,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롯데는 92년을 끝으로 8개 구단 중 가장 오랜 시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팀이다. 구단과 팬들의 높은 기대치 속에 로이스터와는 다른 야구를 펼치면서 성적도 내야 하는 이중의 부담감을 안고 싸워야 하는 양승호 감독은 과연 롯데 감독들의 잔혹사를 비켜갈 수 있을까?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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