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시즌 개막 전, ‘최고의 선발진을 갖춘 팀’을 묻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KIA 타이거즈를 꼽았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개막하니 제 몫을 해주는 것은 로페즈와 트래비스 두 명의 외국인 선발투수뿐이었고, 양현종은 들쭉날쭉한 제구력을 보이며 최악의 출발을 했고, 윤석민은 좋았다가 나빠지는 투구를 반복했으며, 서재응은 구원진의 난조로 인해 불펜으로 전환을 했다.
결국 4월 한 달간 KIA 선발투수들의 평균자책은 4.22로 리그 4위에 그치며 최강 선발진이라는 예상을 무색하게 했다. 하지만 5월 들어 윤석민과 양현종이 안정세를 되찾고, 서재응이 불펜에서 선발로 전환하면서 KIA 선발진은 다시 한번 위용을 갖추게 됐다.
▲ 최고의 한 주를 보낸 KIA 선발진
5월 첫 주에 보여준 KIA 선발투수들의 퍼포먼스는 위대했다. 선발이 6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간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없었으며 로페즈가 6이닝 5자책으로 부진했던 화요일을 제외하면 모든 선발투수들이 상대에게 2점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 화요일 부진했던 로페즈도 비록 승리는 올리지 못했지만, 일요일 경기에서 SK를 맞이해 9이닝 1자책의 굉장한 호투를 보여줬다. 특히 마지막 9회말에서 위기에 몰렸음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임훈을 투수 땅볼로 잡고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모습은 KIA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KIA 선발진이 완전히 궤도에 올랐다고 믿음을 준 것은 토요일 경기에서 양현종의 피칭이었다. 새로 익힌 커터가 원인이 되어 투구 밸런스를 잃어버린 양현종은 자신의 은사 칸베 토시오 코치의 도움으로 투구 밸런스를 잡고 7이닝 3피안타 2볼넷 무실점의 완벽한 피칭을 보였다. 양현종은 칸베 코치의 지도 이후 세 경기에서 18 1/3이닝 동안 볼넷을 6개 밖에 주지 않았다. 그 이전 세 번의 선발 등판에서 9 1/3이닝 동안 10개의 볼넷을 줬던 것과 비교하면 환골탈태한 모습이다.
윤석민도 변화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난 수요일 넥센전에서 8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1실점(비자책)의 완벽한 투구를 보였다. 특히 마지막 이닝에서 넥센의 세 타자를 모두 직구를 던져 삼진으로 돌려세운 장면은 이날 투구의 백미였다. 윤석민이 자신의 빠른 공에 자신감을 찾은 만큼 많은 KIA 팬들은 앞으로 윤석민이 보여줄 투구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동안 불펜에 머물러있다 선발로 전환한 첫 경기에서 6 1/3이닝 동안 4피안타 2자책의 호투를 보인 서재응도 그가 ‘5선발’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투구다. 시즌 초부터 꾸준하게 좋은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트래비스도 마찬가다. 승운이 따르지 않고 수비수들이 실책을 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마운드를 지키는 모습에서 KIA 팬들은 미안함과 동시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로페즈, 트래비스, 윤석민, 양현종, 서재응의 호투로 인해 지난주 KIA 선발투수들은 1.88의 평균자책과 0.86의 WHIP을 기록했다. 피안타율(.184)도 2할이 되지 않는다. 주전 타자들의 대거 이탈로 위기에 빠져있던 KIA는 선발투수들의 호투 덕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던 5월 첫 번째 주를 5할의 성적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 KIA 선발진, 리그 최강으로 뛰어 오르다
로페즈, 윤석민, 양현종, 서재응이 이름값을 하고, 새로 영입한 트래비스 역시 2009년 구톰슨이 부럽지 않은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고 있기에 시즌 초만 하더라도 중간 수준에 머물렀던 KIA 선발진은 어느덧 리그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KIA 선발투수들의 평균자책은 3.80으로 리그에서 삼성(3.39), SK(3.47) 다음으로 낮다. 고무적인 부분은 양현종과 윤석민, 서재응이 지금의 활약을 지속한다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선발투수의 기본적인 임무라고 할 수 있는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에 있어서도 어느새 리그 수위에 올랐다. 선발진 평균자책은 삼성, LG에 뒤쳐질지 몰라도, KIA 선발투수들의 QS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15차례를 기록 중이다. 이는 팀이 치른 30경기 가운데 반을 선발투수들이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해주었다는 것이다.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3자책 이하)’로 눈을 돌리면 KIA 선발투수들의 위용은 더욱 두드러진다. 올시즌 리그 전체를 통틀어 35번 있었던 QS+ 가운데 4분의 1(9번) 이상을 KIA 선발투수들이 기록했다. 니퍼트-김선우의 강력한 원투펀치를 보유한 두산이 KIA의 뒤를 따르고 있지만 QS+는 6차례에 불과하며 KIA와 꽤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많은 이닝을 투구해주는 것도 선발투수의 중요한 역할이다. 선발시 평균투구이닝도 KIA가 삼성에 불과 0.06이닝 뒤진 5.52이닝을 기록하고 있다. 올시즌 류중일 감독이 선발투수에게 한 이닝을 더 맡기겠다고 천명하며 KIA보다 높은 상황이지만, 윤석민과 양현종, 여기에 서재응까지 합류하며 선발진이 좋아진 KIA가 선발시 평균투구이닝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것 역시 시간 문제로 보인다.
▲ 타선도 좋아질 일만 남았는데...
선발투수들이 이렇게 호투해주고 있음에도 KIA가 현재 14승 16패로 5할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원인은 이용규, 나지완, 최희섭, 김상훈 등이 대거 제외된 빈약한 타선과 손영민, 곽정철, 유동훈이 승부처에서 잦은 실패를 보이고 있는 불안한 불펜진 때문이다. 참고로 퀄리티스타트를 하고도 패배한 횟수 역시 KIA가 다섯 차례로 가장 많다. 반면, 타선과 불펜이 좋아 퀄리티스타트를 하지 못하고도 승리한 경기는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퀄리티스타트를 하고도 이기는 게 어렵고, 퀄리티스타트를 하지 못하면 당연히 지게 되는 것이 현재 KIA가 처한 현실이다. 하지만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것은, 다음 주가 되면, 이용규가 복귀하고 빠르면 최희섭까지도 복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김상현 이하 타순에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복귀하면 KIA 타선의 짜임새는 한 결 좋아진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불펜진이다. 현재 KIA의 불펜 시스템은 ‘집단 마무리’체제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마무리 투수로 믿음을 주고 있지 못한 것이 KIA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다.
토요일 경기에서는 양현종 다음에 올라온 손영민과 곽정철이 1실점씩을 기록하며 경기를 끝까지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일요일 경기에서도 마지막 투수로 등판한 유동훈이 장타를 허용하며 11회말 무사 1, 3루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조동화의 타구가 유동훈의 정면으로 가서 트리플 플레이로 경기를 끝낼 수 있었지만, KIA 팬들은 선발투수를 보면서 지었던 미소가 불펜투수들을 보면 인상으로 바뀌고 있다.
KIA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장점인 선발진은 리그 최강의 위용을 찾았지만, 승부처에서 믿음을 주지 못하는 불펜 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지 못한다면 올 시즌 내내 KIA가 치고 나가는 데 발목을 잡히게 될 것이다. KIA 팬들 역시, 이 난국을 타개할 영웅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라, 연일 계속되는 선발투수들의 호투에 즐거워하면서도 불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Lenore 신희진 [사진제공=KIA 타이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