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프로야구 8개 구단 사령탑을 통틀어 가장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인물은 바로 롯데 양승호 감독이다. 양승호 감독은 요즘 부진한 성적과 팬들의 연이은 비난에 하루도 마음 편할 일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롯데는 24일 현재 28승 3무 34패로 5위에 처져있다. 4위 LG와는 아직 6.0게임이나 벌어져있는 반면, 6-7위인 두산-한화는 고작 0.5~2.0게임차 이내로 추격권에 놓여있어서 5위조차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지금쯤이면 슬슬 페이스를 끌어올려 최소한 포스트시즌 싸움을 펼치고 있어야 할 상황인데, 투타의 엇박자 속에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는 것.
당장의 성적보다 아쉬운 것은 지난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구축해왔던 롯데만의 색깔이 희석되었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의 롯데는 화끈한 불방망이를 앞세운 핵타선과 탄탄한 선발진을 바탕으로 한 선 굵은 야구가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러나 올해는 성적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한 비판은 모두 올 시즌 처음 지휘봉을 잡은 양승호 감독의 전술적 능력과 경기운영에 모아지고 있다.
양승호 감독은 지난해까지 롯데를 3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던 로이스터 감독의 후임으로 올 시즌 첫 지휘봉을 잡았다. 3년 연속 가을잔치 진출은 롯데의 팀 창단 이후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다. 단기전에서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로이스터 감독을 향한 롯데 팬들의 신임은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후임자로 등장한 양승호 감독의 부담은 시작부터 클 수밖에 없었다.
양승호 감독은 처음부터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취임 기자회견에서부터 과감하게 로이스터 야구와의 차별화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양승호 감독은 당시 “롯데 구단이 나를 선택한 것은 전임 로이스터 감독이 준플레이오프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며 “내년 시즌 무조건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야심 찬 출사표를 던졌다. 1992년 이후 정상문턱을 밟지 못하고 있는 롯데의 사정을 감안할 때 무모하다 싶을 만큼의 호언장담이었지만, 양승호 감독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까지의 롯데 야구는 양승호 감독이 생각했던 것처럼 굴러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선수들의 잦은 포지션과 보직 변경, 지난해만 못한 타선과 선발진, 엇박자를 그리는 투수교체 타이밍 등으로 인해 양승호 감독은 연일 팬들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결과론이다. 보직 변경이건 투수교체 타이밍이건 누군가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 결과가 성공으로 나타나면 찬사를 받지만,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것이 감독의 운명이다.
다만 초보 사령탑인 양승호 감독에게 아쉬운 부분은 ‘원칙’과 ‘일관성’의 실종이다. 큰 틀에서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통하여 구성원들에게 비전에 대한 신뢰를 안겨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하지만 양승호 체제의 롯데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장기적인 비전과 철학을 읽을 수 없다.
그때그때의 ‘상황 논리’에 따라 마무리로 낙점된 선수가 선발로 갈수도 있고, 선발로 낙점한 선수가 불펜으로 배정될 수도 있다. 지명타자로 잘하던 선수가 외야수로 가고, 외야를 보던 선수가 내야로 투입되었다 혼선을 겪기도 한다. 결과가 좋으면 그 선택은 정당화되지만, 상황이 바뀌면 원칙도 바뀐다. 잦은 변화에 따른 후유증은 선수들의 몫이다.
감독이 자신의 능력과 전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선수들에게 심어주지 못하면 선수들은 불안해지고 리더에 대한 불신이 커지게 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4~5년 전의 롯데가 바로 그러했다.
롯데는 지난해에 비하여 선수구성이 크게 바뀐 게 없다. 외국인 타자 가르시아가 빠졌다고는 하지만, 양승호 감독 본인이 공언했듯 그 공백은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투수자원은 지난해보다 양적으로 더 늘었다.
그런데 갑자기 올 시즌 들어 5선발로테이션을 꾸리는 것도 힘에 부치고, 불펜은 불펜대로 ‘방화’가 더 잦아졌다고 난리다. 타선 역시 이대호 정도를 제외하면 지난해의 뜨거운 위용은 사라졌다. 오히려 연일 선수가 없다고 난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해 취임 기자회견에서 양승호 감독은 전임감독의 실패요소로 ‘단기전에서의 세밀함 부족’과 ‘투수운용’을 꼽은바 있다. “롯데의 투수력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투수들을 믿음을 가지고 썼다면 2010년 포스트시즌 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롯데는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이다. 다음 시즌에는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며 양승호 감독은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올해의 현실은…?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훈수하는 외부의 입장에서는 뭐든지 잘 보인다. 하지만 정작 대결하는 당사자가 되어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제3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롯데와 지금 본인이 이끌고 있는 롯데는 분명히 다르다. 양승호 감독은 지금 반년 전 자신의 기자회견 어록을 돌아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까?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티스토리 뉴스뱅크F, 롯데 자이언츠, 기록제공=Stat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