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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김성근 감독의 사랑의 매, 아쉬운 점은 없었나?

by 카이져 김홍석 2011. 6. 28.

한국의 프로스포츠에서 선수와 감독의 관계는 흔히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불린다. 여기에는 단지 야구라는 전문분야에 대한 기술적인 역할 구분을 넘어, 가르침을 주고받는다는 좀더 인간적이고 교육적인 관계라는 정의가 깔려있다. 특히 한국처럼 유교문화가 발달했으며, 엄격하고 보수적인 학원체육 시스템 하에서 길들여진 감독과 선수간의 수직적인 서열 관계에 대한 인식은, 좀더 비즈니스적이고 전문화된 프로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사제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양보다는 선수와 감독간의 관계가 좀더 수평적이다. 특히 상위 레벨로 갈수록 선수와 감독간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라기보다는,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정도의 관계에 가깝다. 조직상의 서열은 있지만, 그것이 상하 관계에서의 우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감독이건 선수건 서로를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폐셔널로 인정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상대적이다. 한국식과 미국식,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지도자들이 어린 유망주들을 붙잡고 하나에서 열까지 세심하게 가르치는 시스템이 아니다. 지도자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데 익숙했던 한국의 유망주들은, 미국에 진출했다가 체계적인 관리를 받지 못해서 망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력만 있다면 선수도 당당하게 감독 앞에서 자기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제아무리 경력이 오래된 프로선수라고 할지라도 감독의 일방적 권위 앞에 도전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최근에 징벌성 완투에 이어 2군행을 지시받은 SK 김광현의 사례는, 감독과 선수간의 관계에 대한 해묵은 질문을 다시 되새기게 만들만한 사건이었다. SK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이 극심한 부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자, 지난 KIA전에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교체하지 않고 무려 147구를 던지게 하면서 완투하게 하는가 하면, 경기가 끝난 후 곧바로 2군행을 지시했다.

 

김성근 감독이 사적인 감정으로 김광현에게 창피를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오히려 김성근 감독은 누구보다 김광현을 특별히 아껴온 인물이다. 불펜 야구가 주축을 이루는 김성근 감독의 투수운용에 있어, 김광현은 유일하게 예외로 꼽힐 만큼 특혜를 받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거나 에이스로서 안이한 모습을 보일 때, 누구보다 혹독한 질타를 자주 받았던 것도 바로 김광현이었다.

 

김성근 감독은강성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스타라고 해도 팀플레이를 해치거나 성의 없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용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며 팀 내에서 스타의식이 강하던 시기의 이병규나 양준혁도 김성근 감독 앞에서 풀어진 모습을 보였다가 호되게 혼이 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러한 김성근 감독식의 지도스타일과 대칭점에 있다고 할만한 인물은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이나, 김경문 전 두산 감독, 그리고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들이라면 김광현을 어떻게 다루었을까?

 

이들과 대비되는 김성근 감독의 지도철학은엄한 아버지론으로 요약된다. 엄마나 할아버지는 자식이 넘어지면 일어날 수 있게 손을 잡아주지만, 엄한 아버지는 아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만든다. 여기에는 선수들을 단지 내가 부리는 조직의 부하직원이 아니라, 챙기고 단속해야 할내 새끼들로 바라보는 부정이 담겨있다.

 

자신의 선수들을 지키려다가 몇 번씩이나 해고 통지서를 받은 일이나, 2008년 윤길현 사태 당시 스스로 책임을 지기 위하여 공식사과와 자진 결장을 자처했던 장면 등은, 지도자이기 이전에 스승이자 아버지으로서 제자들을 대하는 김성근 감독의 책임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한 훈련과 냉정한 성과주의로만 기억되지만,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은퇴한 이후에도 한결같이 김성근 감독을 은사로 기억하고 존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물론 때로는 방식 면에서 미화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고, 그 방식 때문에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였던 적도 많았다. 요즘이야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10~20년 전만해도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저마다 교사에게 몇 번씩은 심한 체벌을 당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매를 들더라도 정말로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드는사랑의 매, 단순히 악감정을 풀기 위한 폭력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안다. 체벌 자체가 옳은 수단이라도 하기는 어렵지만, 때로는 시간이 흘러 제자를 위하여 매를 들어준 은사가 더 기억에 남는 경우도 많다.

 

김성근 감독의 147구 완투와 2군행은 체벌로 비교하자면사랑의 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김광현을 대하는 태도가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아무리 그 의도가 좋았다 하더라도, 그 방식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현역 최고령 감독인 김성근에게는 손자 뻘밖에 되지 않는 김광현이지만, 그도 엄연히 24세의 성인이고 5년차의 어엿한 프로야구 선수다. 그런 선수에게 수 차례나 언론을 통하여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질책성 발언을 하는 것이나, 징벌성 완투에 이은 2군행 지시는 단지 사랑의 매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면도 없지 않았다.

 

외국에서도 언론플레이를 통하여 감독이 선수를 비판하는 경우가 있지만, 김성근 감독처럼 제자이고 젊은 선수라는 이유로프로선수로서의 자존심까지 깎아 내리는 발언을 하는 것은 감독-선수간의 서열을 떠나 같은 프로로서 대단한 실례로 여긴다. 한국에서도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의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흉보는 일은 누워서 침 뱉기나 마찬가지로 여긴다.

 

김성근 감독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아니라 성인 프로선수들을 지휘하고 있다. 프로선수가 기대보다 부진하다고 하여, 감독의 권위를 내세워 저항할 수 없는 선수의 자존심을 모욕하는 것은 프로가 프로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설령 김성근 감독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감독과 선수가사제 관계에 가깝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좋은 의도나 진심도 그 수단과 방법에 따라 상대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와 감독이 서로의 진심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김광현이 이번 사건에 상처받지 않고 김성근 감독의 진심을 헤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성근 감독 역시 앞으로 젊은 선수와의소통 방식에 있어서, 권위로서 임하던 구시대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SK 와이번스,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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