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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역대 프로야구를 지배했던 다관왕 선수들

by 카이져 김홍석 2011. 7. 26.

개인 타이틀은 야구 선수에게 있어서 평생의 명예다. 3할을 치거나 30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언제든 또 나오기 마련이고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OO년도 타격왕같은 타이틀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영원한 1인자로 역사에 남게 된다.

 

한국야구사에서 타격과 관련된 위대한 기록을 싹쓸이하고 있는 양준혁은 홈런 부문에서도 통산 1위에 올라 있지만, 정작 현역시절에는 단 한번도 홈런왕을 차지해보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꼽은바 있다. 이처럼 위대한 선수라고 해도 정작 평생에 개인 타이틀을 하나 차지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2~3개 부문을 싹쓸이하는 다관왕은 곧 그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의 상징과도 같다.

 

 

역대 프로야구를 지배한 타격 다관왕 선수들

 

2010년 이대호는 한국프로야구사에 유일무이한 타격 7관왕의 대업을 세웠다. 이대호는 도루를 제외하고 타율, 홈런, 타점, 득점, 최다안타, 출루율, 장타율 등을 모두 휩쓸었다. 여기에 비공인 세계신기록인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대기록도 추가됐다. 팀 성적은 아쉽게 4위에 그쳤지만 이대호가 이견의 여지없이 시즌 MVP를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역대 타자 다관광 계보를 살펴보면 1982년의 백인천과 91년의 장종훈, 94년 이종범과 99년 이승엽까지 5관왕이 총 4차례 있었고, 4관왕이 7차례(83년 장효조, 84년 이만수, 88년 김성한, 91~92년 장종훈, 02년 이승엽, 06년 이대호) 나왔다. 가장 흔한(?) 3관왕은 무려 10차례가 나왔다. 하나같이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타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다관왕도 차지해본 이들이 여러 번 같은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80년대 최고의 타격달인 장효조는 83 4관왕(타율, 안타, 장타율, 출루율)에 이어 85년부터 87년까지는 3년 연속 타율-출루율 두 부문더블을 독식했다. 이만수도 84 4관왕(타율, 홈런, 타점, 장타율), 85(홈런, 타점) 87(타점, 장타율)엔 더블을 차지했다.

 

김성한은 1988 4관왕(안타, 홈런, 타점, 장타율)에 이어 89년에도 3관왕(홈런, 득점, 장타율)에 올랐다. 장종훈은 90년부터 92년까지 홈런-타점-장타율 포함 3년 연속 3관왕(91~92년엔 득점 타이틀도 수상하며 4관왕) 이상을 차지했다.

 

개인타이틀과 크게 인연이 없는 것처럼 알려진 양준혁도 알고 보면다관왕 단골이다. 홈런왕만 없다 뿐이지 1993(타율, 장타율, 출루율), 96(타율, 최다안타, 장타율), 98(타율, 최다안타, 출루율)에 걸쳐 세 번이나 3관왕을 차지했다. 이승엽도 5관왕 1차례(1999)를 비롯하여 4관왕 1차례, 3관왕을 2차례 차지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타격 부문 타이틀에서도 가장 알짜배기로 꼽히는 타율-홈런-타점을 동시에 휩쓰는트리플 크라운 30년 한국야구 사상 이만수(84)와 이대호, 2명만이 기록했다. 특히 이대호는 2006년에 이어 2010년에도 대기록을 수립함으로써 유일하게 벌써 두 번이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주인공으로 이미 레전드의 반열을 예약했다.

 

이대호의 다관왕 수상이 대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정교함과 파워를 모두 갖춘 만능타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대호는 일반적인 거포들이 넘보기 힘든 타율과 최다안타 부문의 타이틀까지 차지했고, 올 시즌에도 타격 전 부문에 걸쳐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보통 타이틀에서도 연관성이 있는 분야끼리 묶어서 다관왕을 수상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안타생산능력이 뛰어난 수위타자는 타율과 최다안타(백인천, 장효조, 김현수), 출루율이 높은 톱타자는 득점과 도루(이순철, 이종범, 전준호), 거포들은 홈런과 타점(이만수, 장종훈, 이승엽, 이대호)에서 다관왕 도전이 유리다. 하지만 파워를 갖춘 타자가 정교함까지 겸비하거나, 발이 빠른 타자가 거포의 파괴력까지 겸비하기란 양쪽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5툴 플레이어의 대명사 이종범도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타율, 안타, 득점, 도루, 출루율의 5관왕을 독식했던 이종범은 역대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타율과 최다안타를 동시 석권한 도루왕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톱타자였던 이종범은 타율관리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당시가 대표적인 투고타저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또한 1997년에도 도루왕에 오른 이종범은 홈런도 30개나 날렸는데, 당시 홈런왕을 차지한 이승엽과의 격차는 단 2개에 불과했다. 운이 조금만 따라줬다면 이종범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도루-홈런왕을 동시 석권하는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역대 프로야구 타이틀 홀더 중에서도 다관왕의 계보를 장식하고 있는 선수들의 계보를 살펴보면 곧 한국프로야구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기에, 오늘도 젊은 선수들은 선배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넘어서기 위하여 다시 도전할 것이다.

 

 

역대 프로야구를 지배한 투수 다관왕 선수들

 

역대 한국프로야구 투수 다관왕의 계보는 분업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다. 투수 분업화가 정착되지 못한 80~90년대는 선발, 중간, 마무리의 개념이 없다 보니 엽기적인 기록들도 많았다.

 

선발투수가 두 자릿수 이상의 세이브를 기록하는가 하면, 마무리가 등판할 때마다 3~4이닝 이상을 던지고 규정이닝을 채우는 경우도 많았다. 2000년대 들어 분업화가 정착되면서 과거와 같은 무식한 혹사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시대를 초월하여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는 에이스들은 있기 마련이다.

 

투수 부문 다관왕 계보의절대강자는 역시 국보급투수 선동열이다. 클래스가 달랐던 선동열은 웬만한 투수들이 평생 한번 따기도 힘들다는 개인 타이틀, 그것도 다관왕을 한두 번이 아니라 밥 먹듯이 했던 전무후무한 선수다.

 

‘무등산 폭격기로 명성을 떨치던 해태 시절 선동열은 투수부문 다관왕의 꽃으로 불리는트리플 크라운(다승, 탈삼진, 평균자책점)’을 무려 4(1986, 1989~91)이나 차지했을 만큼 독보적인 위용을 뽐냈다. 특히 89년부터 91년까지는 승률까지 더해 3년 연속 4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87(평균자책점, 승률) 88(평균자책점, 탈삼진)에도 각각 2관왕을 차지했으니, 무려 6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르며 다관왕을 수상했다. 이것은 프로야구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선동열은 마무리로 전향한 93년에도 구원왕은 물론, 규정이닝을 채워 또 한번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차지하여 역대 한국투수 개인 타이틀 부문 최다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80~90년대 야구팬들 사이에는선동열 방어율 찍듯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타율이 안 좋은 타자를 빗댈 때나, 학점이 나쁜 대학생들, 혹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임금 상승률 등 분야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을 정도다. 역시 국보급투수의 위용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동열을 제외하고 4관왕을 기록한 선수는 구대성이 유일하다. 90년대 최강의 마무리로 군림했던 구대성은 1996년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구원의 4개 부문을 휩쓸며 시즌 MVP에 올랐다. 최다승과 최다구원(당시는 세이브와 구원승을 합산한 세이브포인트)을 동시에 수상한 경우는 구대성과 2001년 신윤호가 전부다.

 

구대성은 사실 엄밀히 말해 무늬만 마무리였을 뿐, 실제로는전천후 계투에 가까웠다. 연투는 물론이고 등판하면 3~4이닝을 던지는 경우도 잦았다. 5회나 6회에 등판하는 마무리 투수를 본일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사로 사라진 많은 단명 투수들과 달리 불혹을 넘긴 나이까지 장수했으니 가히 강철어깨의 대명사라고 할만하다.

 

구대성과 함께 97년 구원투수로 20승을 따낸 김현욱이나, 2001년 신윤호 등도 보기 드문불펜 요원 출신 다관왕수상자들이다. 지금은 추억 속의 화제거리지만, 사실 투수의 분업화가 이뤄진 요즘의 시선으로 볼 땐 상상하기 힘든(혹은 상상해서도 안될) 기록이 아닐 수 없다.

 

3관왕은 선동열외에도 82년 박철순(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85년 김시진(다승, 탈삼진, 승률), 97년 김현욱(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2001년 신윤호(다승, 평균자책점, 구원), 2006년 류현진(트리플 크라운) 등이 달성했다. 외국인 투수 중에는 유일하게 2007년 두산에서 활약했던 다니엘 리오스가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의 3관왕을 휩쓸기는 했지만, 일본 진출 이후 약물파문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연루되며 공식적인 기록으로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상태다.

 

류현진은 선동열에 이어 15년 만에 일급투수의 상징이라는 투수부문 빅3 타이틀을 휩쓰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국내 투수 중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는 선동열과 류현진, 단 두 명뿐이다. 류현진이 김광현이나 봉중근, 윤석민 같은 라이벌들을 제치고 일찌감치 선동열의 후계자로 낙점받은 결정적인 이유다.

 

혹사나 비정상적인 등판으로 인한 경우를 제외하면, 최고투수들의 다관왕 경쟁은 프로야구의 에이스 계보를 놓고 벌이는 흥미진진한 대결이다. 오늘도 많은 유망주들이 미래의 선동열이나 류현진을 꿈꾸며 그라운드에서 열정을 던진다. 그들이 선배들의 기록을 뛰어넘어 프로야구의 역사를 경신할 날을 기다린다.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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