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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어이없고 허망한 패배,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1. 9. 10.



롯데 자이언츠가
9일 SK와의 경기에서 정말 어이 없는 패배를 당했다. 쉽사리 믿기지도 않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그런 패배다. 그렇게 된 내용을 살펴보면, 롯데 팬들로선 그 패배 자체가 억울하고 또 분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만큼 경기의 흐름이 귀신에 홀린 것처럼 묘하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패배를 두고 또 다시 양승호 감독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팬들도 있다.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런 식의 저열한 방법을 사용하는 콤플렉스 덩어리들은 별로 신경 쓰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것은 아무리 이번 경기를 돌이켜봐도 양승호 감독이 욕을 먹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한다. 또한,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이 정말 그렇던가? 인생을 살다 보면 최선을 다했음에도 최악의 결과가 눈 앞에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곤 한다. 이번 롯데의 경기가 딱 그랬다.

 

양승호 감독이 주력 선수들을 일찍 경기에서 빼는 바람에 결국 졌다? 이는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억지다. 롯데는 전날 경기에서 연장 12회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고, 그로 인해 주전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상당히 컸다. 이대호나 강민호 등은 몸에 자잘한 부상을 달고 있는 상태고, 주말에도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당연히 점수차가 5점 이상 벌어진 7회 이후라면,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해주는 것이 상식적인 기용이다. 양승호 감독은 다음 경기를 대비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 결과가 최악으로 나왔을 뿐, 그 선택 자체에 있어선 한 줌의 부끄러움이나 책임을 느낄 필요가 없다.

 

사도스키를 8회에도 마운드에 올린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하지만 이 역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롯데는 다른 팀과 달리 선발진이 두터운 팀이고, 그 덕에 사도스키는 다른 외국인 투수와 달리 5일이 아닌 6일마다 등판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경기는 8일만의 등판이었다. 체력적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롯데는 전날 경기에서 김사율을 비롯해 임경완과 강영식까지, 3명의 필승계투조가 모두 등판했었다. 이번에는 점수 차가 큰 상황이니, 이왕이면 주말 경기를 대비해 이들 3명 모두를 아끼고자 하는 것이 감독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점수차도 크게 벌어진 상황이니 선발투수에게 1이닝 정도를 더 기대하는 것이 무리수라고 할 순 없지 않을까.

 

김강민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박재상에게 홈런을 맞으면서 2점을 내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런 나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사도스키의 8회 등판이 무조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양승호 감독은 그 후로도 이명우를 원포인트로 기용하여 박정권을 잡아냈고, 이재곤으로 나머지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8회를 마무리했다. 투수 교체 타이밍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좋았다는 뜻이다.

 

9회에 이재곤을 그대로 올린 것 역시 나쁜 선택이라 말하긴 어렵다. 이재곤은 8회에만 해도 2타자를 공 5개로 깔끔히 잡아냈었다. 8일 경기에서 17구를 던지긴 했지만, 연투에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며, 이재곤으로 9회를 마무리 하고 강영식-임경완-김사율을 모두 아낄 수 있다면 그건 주말 경기를 위한 최고의 포석이 되었을 것이다. 이 부분 역시, 결과가 나빴을 뿐 선택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유일하게 양승호 감독에게 아쉬움이 느껴진다면, 그건 이재곤이 두들겨 맞은 후의 교체 타이밍일 것이다. 적어도 김강민에게 홈런을 맞아 1점 차가 된 상황이라면 그때는 그 즉시 교체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속사정이 있다. 롯데는 5점차로 9회를 맞이했고, 그 상황에서 필승계투조를 불펜에 대기시키는 정신 나간 감독은 아무도 없다. , 달리 투입할 만한 투수가 준비되어 있지 않던 상황이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위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미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몸을 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재곤에게 한 타자를 더 상대하게 했고, 그 후 강영식이 마운드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재곤은 그 한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했고, 결국 그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게 된다.

 

10회 말에도 불운은 계속됐다. 김사율이 10회에도 마운드를 지킨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김사율은 이미 롯데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선수가 됐다. 이제 그가 마운드에 오른다는 것은, 적어도 그 경기의 마지막을 믿고 맡긴다는 뜻과 같다. 롯데 팬들도 이제는 김사율이 마운드에 오를 때면 승리를 지켜주길 바라는 만큼, ‘만약 당신이 무너져서 경기에 패한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겠다.’는 마음의 각오도 함께 다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팀의 주전 마무리에 대한 신뢰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나빴다. 롯데는 김사율이 무너지면서 허탈한 패배를 당했고, 그 여파는 씻어내기 힘들 정도의 큰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정말 감독과 선수가 나름의 최선을 다했음에도 최악의 결과가 나온 것이지, 애당초 무슨 크나큰 실수가 있어서 이처럼 상황이 악화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더 큰 아쉬움은 끝내 김강민을 막아내지 못하고 그에게 당했다는 점이다. 문규현을 향한 김강민의 슬라이딩은 동업자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과거의 전례로 보건대, 이제 한국에서도 그 정도의 슬라이딩은 인정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인정된다고 해도 그 슬라이딩이 위험한 플레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SK 9회에 맞이한 찬스는 부상으로 실려나간 문규현을 대신해 유격수를 보고 있던 정훈의 실책으로 인해 탄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김강민의 슬라이딩이 큰 효과를 본 셈이다. 그런데 그 김강민이 9회에는 1점차로 만드는 3점 홈런을, 10회에는 2타점 끝내기 안타까지 작렬시키며 경기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롯데 팬들로서는 더더욱 화가 날 수밖에.

 

이런 경기는 그냥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최선이다. 굳이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도,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질 가치도 없다. 감독과 선수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했는데도, 그 결과가 이처럼 나쁘게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걸로 충분하다. 괜히 없는 책임을 만들어서 잘 해오고 있던 양승호 감독을 흔들거나,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믿음을 주던 롯데 불펜진 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패배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아끼던 선수가 부상을 당해 아파하던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분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자.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그걸 되갚아줄 날이 온다. 그 때가 되면 롯데답게우직하고 정직한 슬라이딩과 호쾌한 타격으로 이번의 패배를 설욕하길 기대해 본다. 모 해설위원은 롯데 선수들은 야구를 너무 얌전하게 해요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롯데 선수들이 지역 팬들의 과분할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 카이져 김홍석 [사진=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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