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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외국인 선수는 감독을 잘 만나야 성공한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2. 1. 9.

프로스포츠에서 감독과 선수 간의 관계는 같은 목표의식을 공유하는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서로의 입장에 따른 미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아직 감독과 선수는 사제지간이라는 개념이 강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프로의 세계에서는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비즈니스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선수는 어떻게든 감독의 눈에 들어서 기회를 얻어야 하고, 감독은 선수들을 경쟁시키고 활용하여 최상의 성적을 이끌어야 한다.

 

특히 성적으로만 모든 것을 입증해야 하는 용병 선수라면, 감독과의 관계는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에게 감독의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경기장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그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자국의 스타선수라면 그 동안의 공헌도나 상징성, 팀 내 서열 등으로 어느 정도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외국인 선수에게는 그런 혜택이 없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바로 우리 나라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제 아무리 잘했건,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선수들보다 높은 몸값과 기대를 받는 만큼, 더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중요한 것은 오늘의 성적이다.

 

선동열 KIA 감독은 일본 주니치 시절 인연을 맺었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을 평생 은사로 기억한다. 선동열은 일본 진출 초기 리그 적응 실패로 2군에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호시노 감독은 선동열을 가리켜그딴 식으로 할 바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면전에서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절치부심한 선동열은 오기와 뚝심으로 이를 악물고 부활하여 이듬해부터 일본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부활했다.

 

면전에서는 독하게 대했지만 사실 호시노 감독은 선동열을 누구보다 아끼고 중용했다. 1999년 주니치의 센트럴리그 우승 확정 당시 마지막 투수로 선동열을 투입하는 배려를 하기도 했다. 선동열은 일본무대에서 은퇴한 이후, 불과 4년밖에 뛰지 않았음에도 주니치의 명예선수로 인정받았다. 선동열 감독의 지도자 생활 초기 김응룡 감독과 함께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도 바로 호시노 감독이었다.

 

그러나 호시노 감독은 또 다른 한국인 선수인 이종범에게는 정반대의악연으로 기억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98년 주니치에 입단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초기 맹활약을 펼치며 호시노 감독의 신임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이종범이 상대 투수의 빈볼로 인한 팔꿈치 부상을 당한 후 하향세에 빠지면서 호시노 감독과의 관계는 틀어졌다.

 

호시노 감독은 이종범을 향해용병선수가 부상이 무서워서 제대로 뛰지 못한다면 야구를 그만둬야 한다고 혹평했다. 이종범은 이후 주전경쟁에서 밀려나 경기출장이 들쭉날쭉했고, 2군을 오가다 자신감을 잃어 결국 2001년 시즌 중 한국으로 유턴해야 했다. 이종범은 일본생활 동안 원형탈모증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한동안나쁜 꿈을 꿀 때 호시노 감독이 나왔다고 회고할 만큼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호시노와 김응룡 감독의 영향을 받은 선동열 감독은 삼성 시절만 해도 선수들과 거리감을 두는 편이었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과는 관계가 썩 좋지 못했다. 타자보다는 투수를, 선발보다는 불펜을 더 신뢰하는 선 감독의 성향으로 인해 삼성의 외국인 선수들은 개인성적에서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선발투수는 5이닝이 끝나기 전에 교체되기 일쑤였고, 성적을 내지 못하는 선수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와 별다른 소통이 없으면서 성적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선 감독의 운영방식을 놓고 불만을 표시하는 외국인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약했던 이승엽도 외국인 선수로서 감독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편이었다. 일본 진출 초창기인 지바 롯데 시절에는 바비 밸런타인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승엽이 롯데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밸런타인 감독의 지도방식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요미우리 시절에 인연을 맺은 하라 다츠노리 감독과는 초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이승엽이 2008년부터 슬럼프에 빠지자 관계가 틀어졌다. 한때 이승엽에 대한 칭찬과 신뢰를 감추지 않았던 하라 감독은 이후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하고 잦은 2군행을 지시하는 등 이승엽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 요미우리와의 계약 마지막 해는 아예 전력 외로 분류하여 경기출전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 이승엽은 2011년 오릭스 이적 이후 하라 감독을 향해인사도 하기 싫었다.”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반면 일본에서 인연을 맺은 마지막 지도자였던 오릭스의 오카다 감독은 지금도 이승엽에게 고마운 지도자로 기억된다. 사실 이승엽과 오카다 감독의 인연도 처음에는 악연으로 출발했다. 이승엽은 과거 오카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한신과의 경기에서 유난히 극적인 홈런을 자주 때리는 등 강한 모습을 보였고, 2007년에는 경기도중 상대 선수가 이승엽에 가한 비신사적인 플레이 때문에 난투극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오카다 감독은 오릭스에서 새롭게 인연을 맺은 이승엽에게는 전폭적인 신뢰로 일관했다. 이승엽이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도 타순에서 제외하지 않고 꾸준히 기회를 주며자신감 있게 하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이승엽의 국내 복귀가 확정된 상태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에서 부진했을 때도이 경기가 이승엽의 일본에서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차마 뺄 수 없었다.”며 이방인 제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승엽은 일본시절 가장 큰 은혜를 안겨준 인물로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과 함께 오카다 감독을 거론한다.

 

한편 오카다 감독은 또 다른 한국인 선수였던 박찬호와는 상대적으로 소원했다. 박찬호의 오릭스 입단 초기만 하더라도 팀의 1선발 후보로 거론하는 등 높은 기대와 신뢰를 보였으나, 박찬호가 시즌 초반 다소 저조한 모습을 보이자 공개적인 비판 모드로 돌아섰다. 시즌 중반에는 박찬호를 2군에 내린 뒤 부상과 엔트리 등의 문제로 다시 부르지 않았고, 가장 먼저 방출을 결정했다.

 

다음 시즌부터 일본무대에게 뛰게 된 이대호에게도 오카다 감독과의 궁합은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오카다 감독은 굉장히 직선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다음 시즌 우승을 노리는 오릭스에게 있어서 4번 타자로 낙점된 이대호의 활약은 가장 큰 변수다. 공교롭게도 오카다 감독은 한신 시절부터 외국인 선수 복이 별로 없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다. 지난해 큰 기대를 모으며 영입했던 이승엽과 박찬호의 활약도 기대에 못 미친 것이 사실이다.

 

일본무대에 첫발을 내딛는 이대호로서는 엄청난 몸값이나 기대치를 감안할 때 출전기회를 걱정할 이유는 없지만, 순탄한 리그 적응을 위해서 오카다 감독의 신뢰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오카다 감독은 <스포츠닛폰>과의 인터뷰에서외국인 선수에게 그 동안 여러 번 속아도 봤지만, 이대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며 남다른 신뢰를 표시하기도 했다. 과연 이대호는 이러한 신뢰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오릭스 버팔로즈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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