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가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허락했다. 물론, 선수와 구단이 합의한 조건이 충족될 때의 이야기지만, 일단 출발선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제 류현진은 조만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하게 된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올 시즌 내내 빅리그 스카우트들이 류현진에게 관심을 보여왔던 만큼 과거의 사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관건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포스팅 액수가 한화 구단과 류현진을 모두 납득시킬 수 있느냐다.
류현진의 포스팅 액수는 전문가와 기자는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는 주요 사안이다. 과거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던 임창용과 진필중, 이상훈 등은 모두 100만 달러도 되지 않는 입찰액 때문에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있다. 류현진의 경우 벌써부터 포스팅 금액만 1,000만 달러 이상일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섣부른 낙관론은 금물이다.
일단 흘러가는 정황 자체가 나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올 시즌 메이저리그의 흐름이 그랬고, 그런 만큼 류현진 역시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힘을 실어주는 3가지 요소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 올 시즌 빅리그 동양인 투수들의 맹활약
올 시즌 메이저리그는 유독 일본 프로야구 출신 투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마쓰자카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면서 일본 투수들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걷혔지만, 다르빗슈 유(텍사스)라는 걸출한 스타가 탄생하면서 메이저리그에는 다시금 동양인 투수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오프시즌 동안 텍사스 레인저스는 다르빗슈를 얻기 위해 약 5,170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을 니혼햄 구단에 지불한 후 다르빗슈와 6년간 5,6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합쳐서 1억 달러가 훨씬 넘어가는 놀라운 투자였다. 그리고 다르빗슈는 올해 16승 9패 평균자책점 3.90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아메리칸리그(AL) 다승 6위, 탈삼진(221개) 5위, 평균자책점 19위의 뛰어난 성적이다.
평균자책점에 비해 승운이 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르빗슈가 몸 담고 있는 텍사스의 알링턴 볼파크는 악명 높은 쿠어스필드(해발 1,600m의 고지대에 위치한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다음으로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다. 알링텅 볼파크가 개장한 1994년 이후 15승, 200탈삼진, 3점대 이하의 평균자책점 기록을 동시에 달성한 투수는 지난해의 C.J. 윌슨(현 LA 에인절스)이 처음이었고, 올해의 다르빗슈가 2번째다.
작년까지 일본에서 활약하다가 올해 FA가 되어 볼티모어와 3년간 1,139만 달러에 계약한 대만인 투수 천웨인 역시 데뷔 첫해 준수한 성적(12승 11패 4.02)을 거두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견인했다. 또한 2008년에 빅리그에 진출해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쳐오던 구로다 히로키는 올 시즌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16승 11패 평균자책점 3.32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또 한 번의 FA 대박을 노리고 있다. 빅리그 진출 당시 3년간 3,530만 달러에 계약했던 구로다는 작년에는 1,200만 달러, 올해는 1,00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아 현재 활약하고 있는 일본 출신 투수 가운데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와 같은 동양권 출신 투수들의 선전은 류현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가 일본 리그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동양인 투수는 ‘코리언특급’ 박찬호였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2009년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평가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끝난 후 미국의 유망주 전문 사이트인 <베이스볼 아메리카(이하 BA)>는 ‘비(非) 메이저리그 선수 랭킹’을 발표한 바 있다. BA는 FA 선수들의 공식적인 등급을 매기는 등 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매체이며, 유망주의 스카우트나 신인 드래프트 등의 주요 자료로 활용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1위로 평가받은 선수는 다르빗슈였고, 2위는 쿠바 출신의 파이어볼러 아롤디스 채프먼(신시네티), 3위 이와쿠마 하사시(시애틀), 4위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 그리고 5위가 류현진이었다. 채프먼은 쿠바에서 망명하여 신시네티와 6년간 3,025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고, 올 시즌 팀의 주전 마무리로 활약하며 1.51의 평균자책점으로 38세이브를 기록, 내셔널리그(NL) 구원부문 공동 3위에 올랐다.
이와쿠마의 경우 지난해 1,910만 달러에 포스팅 입찰되었으나, 오클랜드와의 연봉협상에서 난항을 겪어 계약이 불발된 바 있다. 1년 후 FA가 되어 비교적 헐값(1년 150만불)에 시애틀과 계약을 맺고 빅리그에 진출, 올 시즌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9승 5패 평균자책점 3.16의 좋은 성적을 거둬 내년 시즌 연봉 대박을 예고했다.
또한, 이 랭킹에서 6위에 올랐던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역시 쿠바를 벗어나 올 초 오클랜드와 4년간 3,6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체결했고, 올 시즌 23홈런 82타점 타율 .292의 준수한 성적으로 데뷔 시즌을 장식했다. 7위인 아오키 노리치카는 올해 밀워키가 250만 달러에 포스팅 입찰 후, 2년간 250만 달러라는 비교적 헐값에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이치로와 마쓰이 이후에 빅리그에 뛰어든 일본 출신 타자들이 부진에 시달렸던 탓이 크다.
이처럼 상위 7명의 선수 가운데 류현진과 다나카를 제외한 5명의 선수가 빅리그에 진출해 있고, 그들 대부분이 올 시즌 아주 좋은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몸값을 드높였다. 가장 저평가 받았던 아오키조차 .288의 준수한 타율과 10홈런 30도루를 기록하며 터무니 없이 낮았던 몸값에 대한 분풀이를 확실히 했을 정도.
BA의 유망주 평가는 원래부터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데, 그 중에서도 이 랭킹은 유난히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류현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세스페데스가 있던 쿠바를 꺾고 승리투수가 된 투수다. 이와쿠마의 2년 전 포스팅 금액과 세스페데스의 계약 수준은 류현진 몸값(포스팅 금액 + 연봉)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최고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
류현진의 에이전트는 ‘스캇 보라스’다. 보라스는 마쓰자카의 초대형 계약(포스팅 5,111만, 연봉 6년간 5200만)을 성사시킨 주역이며,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슈퍼스타들과 손을 잡고 있는 최고의 에이전트다. 그의 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류현진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
보라스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협상력’이고, 또 다른 하나는 ‘광고’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당시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FA 당시 보라스가 작성한 박찬호의 가치에 대한 문서에 대해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류현진이란 이름 석자를 메이저리그 각 구단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이가 바로 보라스다.
류현진이 국내 리그와 각종 국제 대회에서 보여준 성적, 그리고 BA의 랭킹 등을 종합하여 류현진이란 선수를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보라스 사단이 할 것이다. 구단 입장에선 더 없이 부담스런 상대지만, 선수의 입장에선 그만큼 의지가 되는 이도 없다. 류현진을 앞서 포스팅 입찰에 임했던 선배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최고의 파트너’에게 있다.
1987년생인 류현진은 내년에 만 26세가 된다. 86년생인 다르빗슈가 올해 26살이었고, 2007년의 마쓰자카보다 1살 어리다. 최소 4년 이상의 다년 계약이 가능하다는 점은 류현진의 포스팅 금액을 높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아직 젊은데다 실적과 경험이 있는 좌완 투수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군침을 흘릴 만하다. 현재 류현진을 향한 평가가 ‘에이스급’은 아니다. ‘10승이 가능한 3~4선발’ 정도가 현실적인 평가다. 하지만 그 정도만 되더라도 FA가 되면 연봉 1,000만 달러를 받는 것이 요즘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몸값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선은 희망적인 전망을 하게 되는 이유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사진제공=iSportsKorea, 제공된 사진은 스포츠코리아와 정식계약을 통해 사용 중이며, 무단 전재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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