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 WBC 돌아보기] 지난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가장 큰 이변을 일으켰던 네덜란드가 이번 제3회 WBC에서도 첫 경기에 ‘대어’를 잡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우리나라라는 점. 2회 대회 당시 도미니카 공화국을 두 번이나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던 네덜란드가 이번에는 한국을 재물 삼아 또 한 번의 돌풍을 준비하고 있다.
▲ [한국 0 : 5 네덜란드] 기가 막힌 패배, 아무리 공이 둥글다지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이어 WBC까지 우승을 차지해 ‘그랜드슬램’을 차지하겠다던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패했다. 그것도 ‘축구 강호’ 네덜란드에게, 15년 전 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이 졌던 것과 똑같은 점수로. 수고한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 사람의 팬 입장에선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승부란 언제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기든 지든 둘 중 하나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졌다 하더라도, 무조건 대표팀을 비난하기 보단 상대방을 칭찬해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번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제 실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졌다는 것보다 납득할만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 더 치명적이다.
강팀이 되기 위한 조건은 간단하다. 강호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약체를 상대할 때 빈틈을 보여주지 않으면 된다. 그런 면에서 네덜란드는 강팀이 되기 위해 전진하고 있었고, 우리는 자격이 없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위라는 우리나라를 상대로 네덜란드 선수들은 전혀 기 죽지 않고 최선의 플레이를 펼쳤지만, 우리나라는 1회 초부터 실책을 남발하며 허점을 노출했다.
어쩌면 1회 말 수비에서 강정호와 정근우가 연속으로 송구 실책을 범했을 때부터 우리나라의 패배는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와의 경기에 부담을 느꼈을 네덜란드 선수들은 우리 선수들의 거듭되는 실수를 통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대표팀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 티를 역력히 드러내며 공-수에 걸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밀한 분석이나 리뷰 따위가 필요 없는 경기였다. 10개의 안타를 때린 네덜란드는 5점을 냈고, 4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자멸한 우리나라는 4안타 무득점의 빈타에 허덕였다. 무섭게 성장한 네덜란드는 2011년 마지막 야구월드컵 우승팀답게 공수에 걸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2009년 이후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 4연승이란 기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 경기가 있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이전 두 번의 WBC에서 12승 4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일본(4승 4패)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선 8번 모두 이겼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가 WBC에서 일본 외의 다른 팀에게 패할 줄 알았지만, 설마 그 상대가 네덜란드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봉패를 당할 줄은 더더욱.
어쨌든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남은 조별리그 2경기를 모두 이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호주와 대만을 전부 꺾는다 해도 2라운드 진출을 100%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그런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 이전에 일단 남은 경기를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황이니 벼랑 끝에서 악바리처럼 기어오르는 근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덧1. 인터넷 댓글 등을 보니 1회의 실책 2개를 모두 이대호가 저지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둘 다 명백히 강정호와 정근우의 잘못이었다. 이대호가 강정호와 정근우의 실수를 만회할 만큼 ‘센스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비난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두 번 다 송구가 나빴다.
덧2. 결과론일 뿐이지만, 대표팀이 자랑하는 ‘1+1 선발 작전’도 상황에 따라 적용 시점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민을 교체할 때 손승락 등 경험 많은 구원투수를 먼저 등판시켜서 불을 끈 후 6회부터 노경은이 올라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경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덧3. 류중일 감독은 이제 겨우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이유야 어쨌든 그는 지난 2년 동안 한국 최고의 팀을 지휘한 감독이고, 남들이 꺼려하는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첫 경기부터 너무 실망스런 결과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판단은 최종 결과가 나온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호주 1 : 4 대만] 왕첸밍, 빅리그 에이스 출신은 과연 다르더라!
‘왕첸밍에 의한, 왕첸밍을 위한, 왕첸밍의’ 경기였다. 왕첸밍은 6회까지 61구로 호주 타선을 4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시속 150km에 이르는 위력적인 싱커를 주무기로 메이저리그에서 2년 연속 19승을 따냈던 왕첸밍은 왕년의 스피드를 잃은 상황 속에서도 인상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몇 수 아래의 타선쯤은 완급조절을 통해 맞춰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왕첸밍, 그가 한때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였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길 수 있는 피칭이었다. 다행스런 점은 우리나라는 왕첸밍을 만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경기에 등판한 왕첸밍은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하면 첫 경기에 등판할 것이고, 1라운드 결과가 어떻게 되건 우리나라와 대만은 2라운드 첫 경기서 만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대만 타선의 힘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안타는 10개나 때려냈지만 연타가 잘 나오지 않아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왕첸밍이 마운드를 든든히 지켜주지 않았다면, 훨씬 어려운 경기를 했을 것이다.
호주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는 수비 불안이었다. 야구에서 가장 수준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타력이나 투수력이 아닌 수비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호주 역시 아직까지는 그런 면에서 세계 일류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이 경기에서 드러내고 말았다. 1패를 먼저 당한 우리의 다음 상대가 호주라는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덧1. 대만과 우리나라가 속한 1라운드 B조의 경기는 대만에서 열리고, 대만은 실질적인 홈팀이나 다름없다. 이 경기 1회 초에 나온 메이저리그 심판(Lance Barksdale)의 편파적인 1루 아웃 판정은 이후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도 같은 장면이 나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우선은 네덜란드가 대만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는지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일본 5 : 3 브라질] 혼쭐난 일본, 이겼어도 체면은 구겼다.
우리나라보다 1시간 반 먼저 브라질과의 경기를 시작한 일본도 하마터면 ‘개망신’을 당할 뻔했다. 1회부터 브라질에 선취점을 내줬고, 역전에 성공한 후에도 그 점수를 지키지 못하고 재차 역전당하는 모습은 평소의 일본답지 않았다. 7회까지 일본 타선은 고작 3안타에 그쳤다. 다행히 8회 초 공격에서 단숨에 4안타를 집중시키며 3점을 얻어 역전승을 거뒀지만, 이미 체면은 구겨진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브라질의 경기력은 돋보였다. 일본같이 경험 많은 팀을 상대로 팽팽한 승부 끝에 1점 차 승리를 지켜내는 힘은 부족했지만, 7회까지 리드를 잡았다는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 배리 라킨 감독 부임 후 예선에서 파나마를 두 번이나 꺾으며 돌풍을 일으켰던 브라질, 만약 4회 대회 때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정이 어쨌건 일본은 이겼다. 비슷한 경기양상을 보이다 그대로 무너지며 0-5로 패한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 진땀승이건 뭐건 간에 일단 1승을 거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일본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은 3일 저녁 중국과의 2번째 경기를 치를 예정이고, 이 경기에서 이기면 2라운드 진출이 사실상 결정된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iSportsKorea, 제공된 사진은 스포츠코리아와 정식계약을 통해 사용 중이며, 무단 전재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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