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언 몬스터’ 류현진(27, LA 다저스)이 모처럼 홈 팬들 앞에서 멋진 투구내용을 선보이며 시즌 5승째를 따냈다. 류현진의 홈경기 승리는 올 시즌 처음이자 지난해 8월 31일(이하 한국시간) 샌디에고전 이후 무려 268일 만이었다.
류현진은 27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7.1이닝 3피안타 3실점 7탈삼진의 호투를 펼쳐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타석에서도 타점과 득점을 하나씩 기록하며 팀 승리에 공헌했다.
하지만 숫자로 드러나는 결과로는 이 경기에서 드러난 류현진의 대단함을 설명할 수 없다. 류현진이 7회까지 상대 타자들을 단 한 명도 출루시키지 않는 ‘퍼펙트 피칭’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7회까지 7개의 삼진을 곁들여 82구로 신시내티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하지만 8회 첫 타자 토드 프레이저에게 2루타를 허용하면서 대기록이 무산되고 말았다.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에 펼쳐진 이 경기에서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퍼펙트게임의 꿈이 날아가버리고 만 것.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관중들과 한국에서 TV를 시청하던 팬들의 탄식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류현진은 7회 말 1사 2,3루 찬스에서 타석에 등장해 평범한 땅볼 타구를 때렸으나, 상대 유격수의 실책 덕에 1루로 살아 나갔다. 3루 주자 터너가 홈을 밟아 타점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이어진 고든의 땅볼 타구 때 3루 주자 아루에바레나가 홈에서 아웃되면서 2사 주자 1,2루 상황이 됐다. 그리고 후속타자 칼 크로포드가 2루타를 날려 2루 주자 류현진과 1루 주자 고든이 모두 홈을 밟았다.
결국 류현진은 타격을 하고, 1루로 출루해 홈까지 달린 다음 8회 초 마운드에 섰다. 그리고 프레이저를 시작으로 안타 3개를 맞고 1실점한 후 마운드를 내려갔고, 후속투수 브라이언 윌슨이 남아 있던 주자의 득점을 허용하면서 자책점은 3점으로 늘어났다.
스포츠에서 ‘만약’이란 가정 속에 다른 결과를 추측하는 건 부질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단순한 결과론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아쉬운 상황에서는 그런 가정을 안 해볼 수가 없다.
류현진의 호투에 가리고 말았지만, 신시내티 선발 자니 쿠에토는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인 올 시즌 최고의 선발투수 중 한 명이다. 그리고 다저스 타선은 6회까지 쿠에토를 상대로 단 1점밖에 얻지 못했다. 그것도 상대 실책에 덕에 얻은 점수였다.
만약 1-0의 아슬아슬한 리드가 아니었다면, 류현진이 7회 말 타석에서 굳이 방망이를 휘두를 필요가 없었다.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투수라면 그 상황에서 멀뚱히 서서 삼진을 당해도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3점 정도의 여유만 있었더라면 류현진은 굳이 체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었고, 그랬다면 퍼펙트가 그리 쉽게 무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류현진이 타석에 등장하기 직전에 펼쳐진 상황도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1사 1루 상황에서 8번 타자 아루에바레나가 날린 큼지막한 타구는 바운드 된 후 곧바로 담장을 넘어가면서 ‘인정 2루타’가 됐다. 그냥 펜스에 맞고 튕겼더라면 1루 주자가 얼마든지 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이 된 상황에서 1사 주자 2루였다면, 류현진의 임무는 단순한 희생번트였을 것이다. 이 상황 역시 다저스 입장에서나, 류현진 입장에서나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류현진이 타석에 들어선 상황에서 스코어는 1-0이었고, 주자는 2,3루에 있었다. 상대 내야수들이 전진수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번트를 댈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류현진은 방망이를 휘둘렀고, 이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상대 실책으로 연결되면서 류현진은 타점을 기록한 후 1루 주자가 되어야 했다.
주루 플레이를 펼치고 크로포드의 2루타 때 홈까지 달려온 류현진은 숨을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스코어는 4-0으로 벌어져 여유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정작 류현진의 체력에는 여유가 없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8회 초 마운드에 올랐고, 결국 안타를 내줬다. 지켜보던 팬들의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한가지 아쉬운 건 후속 투수 윌슨의 피칭이다. 시즌 초 류현진의 승리를 날린 적이 있는 윌슨은 이날 경기에서도 아웃 카운트 하나 잡는 동안 볼넷 2개와 안타 1개를 내줬고, 그 결과 류현진이 남겨둔 두 명의 주자가 모두 홈을 밟았다. 7회를 마친 시점에서 2.60까지 내려갔던 류현진의 평균자책점은 3.10이 됐다.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음에도 시즌 평균자책점이 종전 3.00에서 더 올라가고 만 것.
윌슨의 뒤를 이어 2사 1,3루 상황에서 등판한 마무리 켄리 젠슨은 브랜든 필립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불을 껐다. 윌슨의 부진 때문에 류현진의 자책점은 3점으로 늘어났는데, 젠슨이 잘 막아준 덕분에 윌슨은 기록상으로 실점 없이 홀드까지 챙겼다. 이 또한 야구 기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가정도 가능하다. 만약 류현진이 안타를 일찍 맞았더라면 어땠을까? 차라리 류현진이 7회 이전에 안타를 하나 내줬었더라면, 이날 류현진의 기록은 ‘7이닝 무실점 승리’가 될 수도 있었다. 퍼펙트라는 대기록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8회 말 타석에 들어선 것일 뿐, 정황만 놓고 보면 대타가 기용되었어야 할 장면이기 때문이다.
류현진의 이번 신시내티 전은 수많은 팬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줬지만, 동시에 커다란 아쉬움도 함께 남겼다. 류현진이 대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고,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게다가 후속 투수의 불안한 피칭 덕에 자책점만 늘어났다.
그래도 시즌 5승 달성에 성공하며 팀의 연승을 이어간 것은 분명 반가운 일.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대기록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팬들은 자부심을 느낀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 : MLB.com 메인, ESPN 메인, Yahoo Sp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