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미첼 보고서’로 인해 아쉬움으로 남게 된 2007년이지만, 시즌 중에는 역경을 딛고 인간승리의 표본을 보여준 감동의 스토리도 있었다.
림프종(암의 일종)을 극복하고 그라운드로 돌아온 보스턴의 신인 투수 존 레스터를 비롯해, 악몽과도 같았던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으로 인해 타자로 전향한 릭 엔키엘과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나 다시금 방망이를 잡은 조쉬 해밀턴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엔키엘과 해밀턴은 과거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특급 유망주였던 선수들로서 그들의 빅리그 복귀는 많은 팬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2008년 이 두 선수는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다. 둘 모두 팀의 주전 중견수 겸 4번 타자라는 것, 그리고 이들의 성적에 따라 팀의 앞날이 결정된다는 점도 매우 비슷하다.
▷ 8년의 세월을 보상받아야 하는 엔키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니 라루사 감독은 지난해 47경기에서 11홈런 39타점의 좋은 타격을 선보인 릭 엔키엘(29)을 4번 타자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만큼 카디널스의 타선이 예년만 못하다는 것이지만, 엔키엘이 푸홀스의 뒤를 받쳐줄 수 있을 만한 선수로 기대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엔키엘은 시범경기에서 그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타율 .380(50타수 19안타)에 3홈런 9타점, 장타율도 6할에 이른다. 정규시즌에서도 이러한 성적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일견 답답해 보이는 카디널스 타선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전망이다.
투수로서 화려하게 데뷔한 2000년 당시만 하더라도, 향후 팀의 확실한 에이스 카드로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받았던 엔키엘. 아픔을 겪고 8년이란 세월이 지나 이제는 같은 팀의 4번 타자가 되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세월의 아픔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2008년은 반드시 그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엔키엘은 올해 30홈런 100타점 시즌을 보낼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꽤나 높아 보인다.
▷ 잊혀졌던 그 이름, 조쉬 해밀턴
전미 아마추어 최고의 타자였으며, 투수로서도 라이벌 조쉬 베켓에 비해 크게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조쉬 해밀턴(27)은 99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베켓을 제치고 18살의 나이로 전체 1순위로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고교 재학당시 5할이 넘는 타율에 98마일의 패스트 볼을 구사했던 해밀턴은 고교생의 신분으로 이미 전국에 알려진 슈퍼스타였다.
타자로서만 집중하기로 결정한 후 거액의 계약금(396만불)을 받고 템파베이에 입단한 해밀턴에게 주어진 시간은 충분했고, 그는 느긋하게 메이저리거가 될 준비를 해나갔다. 하지만 2001년 교통사고로 인해 허리 부상을 당했고, 이후 재활과정이 순조롭지 않으면서 해밀턴은 약물과 술로 아픔을 달래기 시작, 이때부터 해밀턴의 야구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비록 먼 길을 돌아왔을지언정 해밀턴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예전의 아픔 기억들은 모두 잊고 지난해 신시네티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내딛으며 90경기에서 19홈런을 쏘아 올리는 좋은 타격을 선보인 것이다. 오프 시즌 중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 된 그는 이제 팀의 4번 타자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현재 해밀턴은 시범경기 최고의 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경기에 출장한 그는 20개의 안타(타율 .556)를 쳤고, 그 가운데 9개가 장타다. 장타율도 9할(.972)을 훨씬 상회하고 13타점은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라 있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된 후 날개를 활짝 펴고 멀리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듯하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길을 걸어온 이 두 명의 선수를 ‘라이벌’이라고 명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때 최고의 기대주였다는 점, 아픔을 딛고 새로이 그라운드에 복귀했다는 점,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빛날 수 있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 두 선수의 행보는 올해 많은 주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은 각각의 팀에서 두 선수의 활약은 팀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엔키엘과 해밀턴이 모두 웃으며 시즌을 마칠 수 있을지에,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의 관심이 모아진다.